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고전의 향수 불러일으키는 범죄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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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요즘 영화들이 구사하는 화려함이나 속도, 드센 감정을 욕심내지 않고 정통적인 드라마에 충실해지려 한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가 투박해 보일 수도, 다소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목: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Bogota: City of the Lost)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6분

장르: 범죄, 드라마

감독: 김성제

출연: 송중기, 이희준, 권해효, 박지환, 조현철, 김종수

개봉: 2024년 12월 31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2024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한국 영화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한 해의 막바지에 다다른 현재까지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침체를 맞은 극장가는 급격히 얼어붙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작 기획 자체가 소극적으로 변했고, 전화위복으로 성장세를 기록한 IPTV와 OTT 시장의 기형적 확장은 영화계 인력의 누수까지 가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잦아들 때쯤 소위 ‘창고 영화’라 불리는 영화들이 거론됐다. 당시 제작이 중단돼 완성이 불투명해졌거나, 악화한 시장 상황을 관망하며 개봉 시기를 조율하다가 때를 놓쳐버린 작품, 또 작품 외적인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개봉이 묘연해진 작품들을 통칭한다.

작품 제작에 소극적인 영화계 상황에서 그나마 창고 영화들이 하나둘 개봉하며 한국 영화의 숨은 간신히 이어졌다. 최근 개봉한 <1승>, <소방관> 그리고 이번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까지 개봉이 성사됨으로써 그동안 언급돼오던 목록의 끝자락에 남아 있던 작품들까지 거의 다 시장에 풀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로써 2025년의 한국 영화계를 예측하는 시선은 더욱 비관적일 수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계속된 제작 정체로 당분간은 뚜렷한 기대작이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대에 떠밀린 순수한 영혼의 타락

많은 영화가 코로나19로 손해를 봤는데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90% 이상을 콜롬비아 로케이션으로 진행한 영화라 그 피해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2020년 1월 촬영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팬데믹이 본격화되면서 다급히 촬영을 마무리하고 철수해야 했다.

1년이 지나서야 재촬영을 감행해 겨우 촬영을 마쳤는데, 참여한 인원들의 염려는 물론이거니와 제작사가 떠안은 손해가 얼마나 막심했을지는 짐작이 되고 남는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직후, 아직 여물지 않은 청년 국희(송중기 분)는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고향을 등진 아버지(김종수 분)의 손에 이끌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향한다.

이곳에서 한인 상인회의 권력자인 박 병장(권해효 분)의 눈에 든 국희는 그의 주력사업인 밀수에 발을 디디게 되고, 통관 브로커 수영(이희준 분)과도 친분을 쌓는다.

하지만 수영이 박 병장의 영향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업에 욕심내면서 두 사람 사이에 낀 국희는 난감한 상황이 된다.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는 지루하고 저열한 아귀다툼이 잦아들 무렵, 이젠 국희도 더는 과거의 순수한 청년은 아니다.

영화는 백지처럼 비어 있던 한 인성이 환경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어떤 색으로 물들어 가는지 연대기적인 흐름으로 조곤조곤 풀어낸다.

도전을 거듭하는 송중기의 열정

이국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인간군상의 범죄극이란 부분에서 앞서 공개된 <수리남>이나 <로기완> 같은 작품과 비교하는 시선도 많지만, 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한국형 누아르 영화의 기운이 좀더 짙게 느껴진다.

요즘 영화들이 구사하는 화려함이나 속도, 드센 감정을 욕심내지 않고 정통적인 드라마에 충실해지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런 나름의 분위기가 투박해 보일 수도, 다소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 영향을 끼친 유사한 작품을 다수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매우 중요한 교본이 됐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야기의 골격이나 마지막 장면의 여운은 이를 분명히 확신하게 만든다.

단순히 살아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냉혹하게 변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은 충분히 공감을 자아내고, 이는 어깨의 힘을 뺀 배우들의 편안한 연기와 앙상블을 통해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공교롭게도 <로기완>에서도 비슷한 역을 맡았던 송중기의 연기 변신 노력은 중요한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최근 출연한 작품들은 그가 가지고 있던 기존 이미지와 상반되는 비루하고 거친 인물이 주를 이룬다. 이를 바라보는 평가는 다양하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사사롭게 뒤돌아보는 2024년의 영화들

㈜영화사 진진

㈜영화사 진진

영화보다 황당하고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더해진 올해는 유독 더 빠르게 지나가 버린 듯한 기분이다. 2024년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그리고 감상의 기회를 놓친 독자들에게는 추천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인 영화감상 목록을 훑어본다. 언론과 평론계가 한목소리로 추천했던 작품들은 되도록 배제한, 매우 사적인 취향이 반영됐음을 분명히 한다.

올해는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픽사가 내놓은 <인사이드 아웃 2>,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의 <로봇 드림>(사진), 드림웍스가 3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와일드 로봇> 등은 극영화를 뛰어넘는 재미와 성취를 이뤄낸 작품이다.

할리우드 상업 영화 중에서는 정이삭 감독의 <트위스터스>, 가이 리치 감독의 <더 커버넌트>, 36년 만에 돌아온 팀 버튼 감독의 속편 <비틀쥬스 비틀쥬스>, 페드 알바레즈 감독의 <에이리언: 로물루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턴스>가 흥미로웠다.

모처럼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반추해낸 <구룡성채: 무법지대>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소위 ‘아트하우스 영화’라 언급되는 예술영화 영역에서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바튼 아카데미>(주간경향 1566호), 레이철 램버트 감독의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1594호),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오키쿠와 세계>,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의 <일 부코>, 프랑스 영화 <레드 룸스> 등을 한 번쯤 꼭 챙겨보라 권하고 싶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노르웨이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배우 안나 켄드릭의 연출 데뷔작으로 범죄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오늘의 여자 주인공>, 기상천외한 스릴러 <왓츠 인사이드>도 주옥같은 작품들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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