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큘레이트-수녀가 잉태한 건 재림예수? 적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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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걸리는 건 과학도였다가 종교에 귀의한 테데스키 신부의 ‘재림예수 프로젝트’다. 한없이 자애로운 듯한 태도를 보이던 테데스키 신부의 태세 전환도 설명 부족이지만, 영화는 전형적인 B급 수녀 공포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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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시각. 코를 골며 자는 원장 수녀 방에 잠입한 한 수녀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나온다. 열쇠를 갖고 달려가는 곳은 수녀원 지하의 비밀스러운 방이 아닌 정문이다. 탈출 시도다. 어슴푸레 나타난 다른 4명의 수녀를 피해 간신히 문을 열고 나지만, 철문 사이로 다리를 잡히고 만다. 가차 없이 다리를 분지르는 수녀들. 도망치던 수녀는 깨어나 보니 땅 밑 관 속에 갇혀 있다. 살려 달라고 애원해봐야 소용없다. 여기부터 의문이 생긴다. 이 수녀는 관 속에서 성냥불을 댕겨보고 난 뒤 관 속에 갇힌 걸 알게 된다. 성냥은 어디에서 났을까. 수녀들이 일상으로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일까.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밀을 간직한 수녀원

앞으로 수녀원에서 벌어질 어떤 사건을 요약해 보여주는 암시다. 이어지는 스토리는 이 수녀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미국에서 수녀가 되기 위해 막 건너온 세실리아 이야기다. 세실리아는 어렸을 때 언 물에 빠져 임사체험을 한 적이 있다. 약 7분간 의식불명 상태였다. 자신이 살게 된 것에 신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수녀원에는 성물(聖物)이 있다.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 사용한 못이다. 못을 만진 세실리아는 실신한다. 자신이 못에 찔리는 악몽을 꾼 후 구토한다. 태기다. 성모 마리아가 그랬듯 세실리아는 동정녀로 회임한 것이다.

영화 제목 <이매큘레이트>(Immaculate)는 사전적 의미로 ‘오류가 없는’, ‘흠결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종교학적으로는 ‘무원죄 잉태설’이란 명사로도 쓰인다. 흔히 마리아가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한 순간, 태초에 이브가 지었던 원죄(뱀으로 둔갑한 사탄의 꼬임에 넘어간)가 사해졌다, 정도로 해석하지만 종교학적 논의는 조금 복잡하다. 다른 기독교 종파들, 특히 개신교에서는 배척하지만 로마가톨릭에서는 ‘무염시태(無染始胎)’라는 논리로 마리아 자신이 어머니 안나의 배 속에 들어섰을 때부터 ‘원죄 없는 잉태(Immaculata conceptio)’를 한 것으로 본다. 그러기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예수의 양부인 성 요셉과 더불어 마리아를 공동 수호성인으로 내세운다. 영화를 본 후 외국에서는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찾아봤더니, 당장 ‘이매큘레이트’ 개념은 예수 잉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 자신의 잉태를 일컫는 것인데 혼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화는 여러모로 미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오멘: 저주의 시작>(2024)과 비교된다. 미국 출신의 소녀가 수녀가 되기 위해 이탈리아로 왔는데 알고 보니 그 수도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은밀한 교의(敎義)를 추종하고 있었고, 이 순진한 소녀가 주 타깃이 된다는 설정까지 거의 유사하다. 주인공을 유혹하는, 조금은 타락한 듯한 단짝 예비 수녀가 나온다는 점도. <오멘: 저주의 시작>의 경우 ‘알고 보니’ 단짝 예비 수녀까지 거대한 음모의 결탁자라는 설정이었고, 이 영화 속 예비 수녀 친구 그웬은 수태한 세실리아를 떠받드는 이상한 분위기에 공개적으로 항의하다 중세 고문 도구에 혀가 잘린 뒤 어디론가 사라진다(영화를 보면서 ‘감독은 종적을 감춘 그웬 캐릭터를 신경 쓰고 있는 걸까’ 살짝 걱정했는데 영화의 절정부에서 그웬의 ‘최후’가 서비스라도 하듯 한 컷으로 등장한다).

전형적인 수녀 공포물 장르 영화

영화에서 제일 걸리는 건 과학도였다가 종교에 귀의한 테데스키 신부의 ‘재림예수 프로젝트’다. 아무리 성물이라 하더라도 2000년 전에 묻은 예수의 살점과 피로부터 DNA를 추출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세실리아뿐 아니라 2000년 동안 전승되면서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갔을 텐데 뭔가 추출된 DNA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예수의 것인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한없이 자애로운 듯한 태도를 보이던 테데스키 신부의 태세 전환도 설명 부족하지만, 영화는 여러모로 플롯에 빈 구멍이 숭숭 뚫린 전형적인 B급 수녀 공포물(nunsploitation)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제목: 이매큘레이트(Immaculate)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미국, 이탈리아

상영시간: 89분

장르: 공포

감독: 마이클 모한

출연: 시드니 스위니, 알바로 모르테, 시모나 타바스코, 베네데타 포르카롤리, 조르지오 콜란젤리

개봉: 2024년 7월 17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공포 영화 하위장르로서 수녀 공포물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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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플로테이션 필름’이라는 하위장르 영화가 있다. 사전적으론 착취(exploit)하는, 그러니까 ‘쥐어 짜낸 영화’쯤 되는데, 저예산으로 양산된 특정 주제나 소재 영화들을 의미한다. 플롯의 개연성보다는 특정 아이디어나 소재에 집착하는 영화들이다. 독일 나치 시대 여성 강제 포로수용소를 다룬 <나치 일사>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스페인 감독 제스 프랑코가 만든 <일사 3-악질 간수>(ILSA, The Wicked Warden·1977)가 가장 유명하다. 나치 여성감옥 시리즈 같은 하위장르 영화들을 나치스플로테이션(Nazisploitation) 장르물이라 통칭한다.

‘수녀 공포물(nunsploitation)’도 익스플로테이션 필름으로 볼 수 있는데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장르의 기원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스웨덴에서 제작된 벤야민 크리스텐센 감독의 <마녀들>(Häxan·1922)이다. 당시 무성 공포 영화였지만, 이제는 유튜브에서 깨끗한 화질로 복원된 영화를 볼 수 있다. 수녀 공포물의 기념비적 영화는 아무래도 켄 러셀 감독의 <악령들>(The Devils·1971)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 마녀사냥으로 화형을 당한 그렌디어 신부 이야기를 다뤘는데 광기에 사로잡힌 중세시대의 마녀재판을 제대로 재현했다고 평가받았다. B급 장르영화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주디스 브라운의 책 <수녀원 스캔들>을 영화화한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Benedetta·2021)도 중세에서 르네상스 이행기 수녀원을 둘러싼 성 정치 영화로 거론할 만하다. 사탄과 적그리스도, 이단적 교의에 사로잡힌 교단과 같은 수녀 공포물의 전형적 이야기는 1970년대 저예산 공포영화들-대표적으로 <알루카르다>(Alucarda·1977·사진)-에서 그 원형이 만들어졌다(켄 러셀의 영화나 <알루카르다> 역시 유튜브에서 영어자막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들어 수녀 공포물은 대표적인 공포 하위장르로 굳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 시리즈에 등장하는 수녀 괴물이 다시 주인공으로 나오는 스핀오프 <더 넌> 시리즈다. 1편이 2018년, 2편이 2023년에 만들어졌다. <컨저링> 시리즈 전후로 <더 넌> 시리즈에서 착상한 듯한 아류작이 여럿 나왔다. 더욱 험상궂고 흉포하게 생긴 여러 ‘수녀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들이다. 비슷한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양산형 작품이 쏟아져나오는 것도 익스플로테이션 필름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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