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골프 대역전 우승…‘희망’이란 단어 강력하게 입증

J.J. 스펀이 6월 16일(현지시간) 오크몬트 컨트리클럽 18번 그린 위에서 US오픈 골프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버디퍼트를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AFP
스포트라이트는 결코 그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유명한 후원사도, 유년 시절부터 주목받은 이력도 없었다. 그런 그가 동화 같은 우승 스토리를 썼다. J.J. 스펀(34·미국)은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125회 US오픈 골프대회 마지막 18번 홀 그린 위에서 65피트(약 19.8m)짜리 버디 퍼트를 홀컵에 넣었다. 그의 골프 인생 전체를 바꿔놓는 순간이었다. 퍼트가 홀컵에 떨어지는 순간, 스펀은 눈물을 글썽이며 “꿈만 같다. 이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방식으로 마무리한 것은 말 그대로 꿈이 현실이 된 것”이라며 “US오픈에서 내 인생 최고 순간을 만들어낸 게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라고 덧붙였다.
스펀의 본명은 존 마이클 스펀 주니어다. 그는 1990년 8월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 마이클 스펀 시니어는 유럽계 미국인이며, 어머니 돌리는 필리핀·멕시코 혼혈이다. 2022년 아버지는 병원 관리자로, 어머니는 사무소 매니저로 일했다. 어머니는 임신 8개월까지 골프를 칠 정도로 열정적인 골퍼였다. 스펀은 세 살 때 플라스틱 골프채 세트를 받고, 아버지가 차고에 설치한 네트로 공을 치며 연습했다. 공식 레슨은 받지 않았다. 스펀은 명문 골프 유망주로 자란 선수가 아니다. 2008년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골프부에 ‘워크-온(walk-on)’으로 들어갔다. 운동 장학생이 아닌 일반 학생 신분으로 팀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당시 그는 어떤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실력만으로 선발됐다. 그는 사회과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통산 5승을 기록했다. 스펀은 “계속 떨어지더라도 한발 더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골프 접으려다 영화 <위대한 쇼맨> 보고 재도전
2013년 프로 전향 후 스펀은 PGA 하부 투어를 전전했다. 가끔 성적을 내며 투어 카드를 유지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는 2022년 발레로 텍사스오픈에서 처음으로 PGA 투어 우승을 일궈냈다. 그 또한 일시적 성과에 그쳤다. 2023~2024년에는 컷 탈락과 부진이 반복됐고, 일부 대회에서는 아예 초청받지 못했다. 지난해엔 페덱스컵 랭킹이 90위권으로 떨어졌다. 그는 당시 가족에게 “이제 골프를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절망에 빠졌다. 당시 스펀은 골프를 잠시 내려놓고 영화관에 갔다. 거기에서 골프 영화가 아닌 <위대한 쇼맨>을 보고 다시 용기를 얻었다. <위대한 쇼맨>은 가난한 청년이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세계 최초 쇼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로, 다양성과 포용, 꿈을 향한 도전 정신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골프뿐이었고, 다시 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회고했다.
2025 US오픈은 단연코 ‘스펀의 대회’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것은 ‘압도적 우승’이 아니라 ‘극복의 연속’이었다. 세계 최정상 선수들조차 괴로워한 오크몬트 코스에서 그는 최종라운드 전반 9홀에서만 5개 보기를 적어내며 무너졌다. 대회 당일 우천으로 경기가 한때 중단됐고, 이 시간은 오히려 스펀에게 집중력을 회복하는 기회가 됐다. 후반 들어 하나둘씩 흐름을 되찾은 스펀은 17번 홀 버디에 이어, 마지막 18번 홀에서 대회 최장거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최종합계 1언더파로 2타차 우승을 확정했다. 순간 주변에서 “USA, USA”라는 환호가 울렸다. 모든 종목에서 미국 국적 선수들이 우승할 때마다 자주 연출되는 풍경이다. 필리핀·멕시코계 혼혈 출신인 스펀이 그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 울림이 특별했다. 이번 우승으로 스펀은 상금 430만달러(약 58억원)를 챙겼고, 향후 5년간 PGA 투어 풀시드, 10년간 US오픈 자동 출전권, 라이더컵 미국 대표 선발 자격을 얻었다. 미국 언론은 “그의 승리는 북미 내 소수계 커뮤니티에 상징적 의미로 다가오고 있으며, 필리핀과 멕시코계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스펀처럼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J.J. 스펀이 6월 15일(현지시간) US오픈 골프대회 우승 트로피를 아내, 두 딸과 함께 만져보고 있다. AP
‘골프는 버티는 자의 스포츠’ 본질 보여줘
스펀은 키 173㎝, 체중 84㎏에 불과하다. 장타형 골프가 결코 아니다.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투어 중간 수준이며, 퍼팅과 어프로치 정확도에 강점을 가진 정밀한 유형이다. 스펀은 대회 직후 인터뷰에서 “지난해 6월엔 정말 골프를 그만둘 뻔했다. 아이가 아프고, 아내는 밤을 새웠고, 내 경기는 제자리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며 울먹였다. 또한 그는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할 때 US오픈을 우승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며 “전반에 힘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 샷에 몰입하려고 했다. 그건 내가 평생 해온 방식”이라고 말했다. 스펀은 “경기가 중단됐을 때 코치와 캐디, 우리 팀 모두가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며 “재개하며 모든 루틴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리셋’하고 싶었고, 그래서 옷도 갈아입었다”고 전했다. 그가 버티는 데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말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거기서 그냥 버티고만 있어도 된다. US오픈에선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우즈의 말을 건네 들었다”며 “그 말을 기억했다”고 덧붙였다. 2019년 결혼한 아내 멜로디 민스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언더독이었다”며 “그런데 이제 드디어 자신이 그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했다”고 말했다. 멜로디는 US오픈이 열린 아버지의 날에 딸이 아픈 상황에서도 경기장을 찾았다. 그는 “어려운 아침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여기 무대에 있어 너무 행복했다”며 웃었다. 첫 딸은 에머슨(2020), 둘째 딸은 바이올렛(2023)이다.
스펀은 이번 시즌에 앞서 16개 대회에서 준우승 2회, 3위 1회 등으로 재도약했다. 지난 3월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때 낙뢰로 4시간 중단됐다가 재개된 최종 라운드에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동타를 이룬 뒤 다음 날 치른 연장전 끝에 패한 것은 특히 좋은 약이 됐다. 스펀은 더 이상 무명 선수도, 언더독도 아니다. 그는 ‘골프는 버티는 자의 스포츠’라는 본질을 보여준 챔피언인 동시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강력하게 입증한 스포츠 스타가 됐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