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캔자스, 네브래스카, 아이오와. 덴버를 떠나 이틀 동안 4개 주, 1600㎞를 달려 5대호의 관문이자 미시간호에 접해 있는 위스콘신주에 도착했다. 위스콘신을 찾은 것은 위스콘신이 ‘정반대’의 두 정치인을 낳았기 때문이다. 한 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정치인’이고, 다른 한 명은 너무도 유명한 사람이다. 무명인사는 미국 역사상 ‘진보 후보’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로버트 라폴레트(1855~1925)다. 유명인은 매카시즘이란 말이 생기게 한 ‘극우 정치인’ 조지프 매카시(1908~1957)다.

빨갱이 사냥을 주장하는 조지프 매카시 / 손호철 제공
승자 독식 선거제도에 진보정당 존재 못 해
위스콘신주 주도인 매디슨은 작은 여러 호숫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도시다. 호숫가를 지나 조용한 부촌으로 들어서 조금 가자, 붉은 벽돌의 이층집이 나타났다. 벽에는 역사적 의미가 커서 ‘미국 역사 랜드마크’로 등록된 ‘라폴레트 생가’라는 동판이 붙어 있었다. 변호사 출신인 라폴레트는 남부 농장주의 골수 보수정당이었던 민주당과 달리 북부 산업자본에 기초해 노예 해방을 지지한 링컨의 당이었던 공화당 소속으로 상·하원의원을 지냈고, 주지사로도 활약했다.
1900년대 들어 거대독점자본이 급성장해 중소상공인, 농민 등을 위협했지만 공화당은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분노한 그는 탈당해 1924년 대선에서 사회당, 노동조합, 농민단체 등 진보진영의 지원을 받아 제3당인 진보당(Progressive Party)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시급한 것이 “국민의 정치·경제생활을 위협하는 사적 독점의 힘을 깨는 것”이라며 전기·철도의 국유화, 아동노동 금지, 노동조합 보호, 농민 저금리금융 지원, 시민적 자유 확대 등을 공약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제3후보, 진보 후보로 가장 높은 16.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미국 예외주의.’ 유럽 등과 달리 사회당, 공산당과 같은 ‘노동자정당’,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미국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한국 예외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 예외주의가 주로 한국전쟁과 분단 상황 때문이라면, 미국이 유럽과 달리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고 민주당, 공화당 같은 ‘보수정당’들만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은 유럽과 달리 봉건적 계급의 잔재가 존재하지 않는 데다 다양한 인종이 섞인 이민 사회이고, 나아가 ‘아메리칸 드림’이라 부르는 신분 상승의 기회 때문에 유럽처럼 노동자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뭉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신세계이면서 이민 사회였던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유럽과 비슷한 노동당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원인도 중요하다. 그것은 ‘승자 독식’이라는 미국의 반민주적인 선거제도다.
미국은 비례대표가 없다. 따라서 유럽과 달리, 지역구에서 1등을 하지 않으면 의회에서 1석도 차지하지 못한다. 미국사회당(ASP)은 1912년 선거에서 358명의 후보를 내 전국적으로 6%의 표를 얻었고, 12명의 후보는 20% 이상을 득표했다. 미국 하원의원 수가 435명이니 비례대표가 발달한 독일이라면 6%에 해당하는 27명이 당선됐을 텐데 1석도 얻지 못했다. 사회당 등 제3당에 던진 표는 계속 사표가 됐고, 사표를 두려워한 지지자들은 제3당 지지를 포기했다.
대통령선거도 직선이 아니라 선거인단제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그 주에서 승리한 사람이 주 선거인단 전원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체제 때문에 제3당은 성장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제3당 후보가 캘리포니아주에서 20%를 얻어도 선거인단의 20%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1명도 가져가지 못하는 반민주적인 제도다.

매카시 묘지가 있는 세인트 메리 묘역 / 손호철 제공
트럼프 탓에 21세기에 부활한 매카시즘
‘조지프 매카시, 미국 상원의원.’ 라폴레트의 생가를 떠나 북쪽으로 2시간 달려 애플튼시의 세인트 메리 묘역 언덕 위에 올라가자 회색 대리석 묘비가 나타났다. 대학에 들어가 진보적 생각을 하기 시작한 뒤 평생 ‘가장 증오해온 인물’을 드디어 대면한 것이다.
“국무성에 빨갱이들이 침투해 있습니다. 내 손에 공산당원이면서도 미국의 주요 외교정책을 만들고 있는 205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판사 출신인 조지프 매카시는 상원의원 초년생이던 1950년 초 폭탄선언을 했다. 그가 “침대 밑의 빨갱이”, “우리 안의 적”이라고 부른 ‘빨갱이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국무성뿐 아니라 중앙정보부(CIA), 군, 백악관 등 민주당 트루먼 정부의 주요 부서에서 ‘빨갱이’들을 색출한다고 마녀사냥을 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전후 유럽을 부활시킨 마셜플랜의 주인공인 조지 마셜 장군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려 하자, 그 때문에 중국이 공산화됐다며 그까지 빨갱이로 몰았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얼마 전 영화로 만들어진 로버트 오펜하이머도 평화운동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매카시즘의 광기 속에 비밀 취급허가를 거부당하고 비참한 말로를 보내야 했다. 매카시즘은 할리우드까지 휩쓸어 전쟁과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영화 홍보차 영국에 갔다가 미국 입국이 금지돼 영원히 미국을 떠나야 했다.

매카시즘이란 용어를 만든 극우 선동가 조지프 매카시의 묘지 / 손호철
매카시는 동성애자도 미국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며 정부 안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색출해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 선배정치인인 라폴레트가 제2차 세계전쟁 당시 46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안 나갔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최대 후원자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였고, 그 인연으로 그가 상원조사위원회에 27세의 로버트 케네디를 차석 변호사로 고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빨갱이를 색출한다며 권한을 남용하다가 결국 1954년 상원에서 징계를 받아 ‘정치적 파문’을 당했고, 3년 뒤 4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라폴레트와 미국의 진보세력을 좌절시켜온 비민주적 선거제도와 ‘미국 예외주의’는 변함없는 반면,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으로 알고 있었던 매카시즘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또 한 명의 매카시입니다.” 한 미국정치학자의 지적처럼 ‘21세기의 매카시’ 트럼프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매카시가 미국 정부에 침투한 빨갱이를 색출한다고 난리를 피운 것처럼 최근 한 극우단체는 이민자들에게 미국 국경을 열어놓아 미국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이민재판 판사 등 ‘반미국 관료’ 명단 10명을 공개했다.
수많은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파멸시킨 그가 폭스강을 내려다보는 평화로운 곳에서 평안히 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분노가 치밀어 갑자기 그의 묘에 오줌발을 날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잠시 고민을 하다 망자에게 오줌 세례를 주기는 뭐해서, 묘지를 향해 주먹으로 감자바위를 먹이는 것으로 분을 삭이고 애플턴을 떠났다.

매카시즘이란 용어를 만든 극우 선동가 조지프 매카시의 묘지 / 손호철 제공

로버트 라폴레트의 묘지가 있는 묘역 / 손호철 제공

로버트 라폴레트의 생가 벽에는 미국 역사유적이라는 정부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손호철 제공

미국 역사상 진보 대통령 후보로 최다득표를 한 로버트 라폴레트의 생가 / 손호철 제공

로버트 라폴레트가 거대자본에 의한 민생파탄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모습 / 손호철 제공

미국 정치의 특징인 진보정당의 부재를 다룬 <미국 예외주의> 표지 / 손호철 제공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