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덴버, 미국판 역사바로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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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 예술의 거리 한 주차장에 그려진 아프리카계 좌파활동가 앤절라 데이비스 교수의 초상 / 손호철 제공

덴버 예술의 거리 한 주차장에 그려진 아프리카계 좌파활동가 앤절라 데이비스 교수의 초상 / 손호철 제공

2000년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 젊은이들이 한 동상을 밧줄로 묶어 쓰러뜨렸다. 충성 혈서까지 써서 만주국 일본군관학교에 입학해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친일파 박정희를 단죄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전두환·노태우를 잡아넣으며 시작한 ‘역사바로세우기’ 투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정확히 어디였지?” 나는 운디드니를 떠나 1000㎞를 달려 콜로라도 덴버에 도착하자마자 시청 앞 광장을 찾았다. 그곳이 ‘미국판 역사바로세우기’ 현장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주로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극우 독재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미국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콜럼버스를 주된 공격대상으로 하고 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콜럼버스의 동상 흔적이었다.

덴버시는 미 대륙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고, 미국이란 나라가 세워지게 해준 콜럼버스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1972년 이 광장에 콜럼버스 동상을 세웠다. 하지만 원주민 등은 이를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2020년 아프리카계 청년이 경찰에 부당하게 살해되면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인종주의 민권시위대가 이를 부숴버렸다. 시는 동상을 다시 세우지 않기로 결정하고, 동상이 세워져 있던 단까지 철거했다. 단까지 사라져 동상이 있었던 정확한 지점을 찾을 수 없어 구글지도를 들고 한참을 헤맸다.

1800년대 서부 개척 당시 덴버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한 킷 칼슨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사냥꾼이자 오지 여행자였던 그는 서부 개척의 전설적 인물로 말을 탄 동상(일명 ‘개척자 기념비’)이 중심가 분수대 옆에 세워져 있다. 시위대가 그를 ‘원주민 학살자’라며 동상을 쓰러뜨려 이제는 밑의 단만 남아 있다.

이는 오히려 때늦었다고 할 수 있다. 콜럼버스는 원주민들과 공존하고 이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학살하고 노예로 팔아버리는가 하면 잔인하게 고문했다. 오죽했으면 스페인이 그를 소환해 투옥하기까지 했겠는가? <아메리칸 홀로코스트>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20년 동안 아이티 등 카리브해에서 800만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의 투옥에도 불구하고 스페인과 유럽, 그리고 백인의 원주민 학살과 착취는 계속됐다는 점이다.

덴버 예술의 거리 한 주차장에 그려진 아프리카계 좌파활동가 앤절라 데이비스 교수의 초상 / 손호철 제공

덴버 예술의 거리 한 주차장에 그려진 아프리카계 좌파활동가 앤절라 데이비스 교수의 초상 / 손호철 제공

어떤 ‘개척’도 콜럼버스의 학살 정당화 못 해

동상만이 아니다. 덴버시는 1971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한 10월 11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지정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10월 두 번째 월요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지정해 기념해왔다. 덴버시는 민권단체들의 압력에 의해 이날을 ‘원주민의 날’로 이름을 바꿨다. 많은 도시가 덴버시와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이날은 서구가 저지른 학살 때문에 1억명에 이르던 원주민이 300만명으로 줄어든, 인류역사상 최대의 인종 학살이 시작된 날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주역으로 한때 ‘21세기 사회주의 모델’로 주목을 받은 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지정했다. 2019년 발표한 체계적인 연구에 따르면, 유럽이 1492년에서 1660년 사이에 죽인 원주민은 5500만명이다.

미국 내 기념물들을 조사하는 메뉴멘트랩에 따르면, 2019년 현재 기념물은 링컨 193개, 콜럼버스 188개, 워싱턴 171개로 콜럼버스가 2위였다. 2020년 시위로 39개가 제거됐지만 2021년 현재, 콜럼버스기념물은 149개나 남아 있다. 주목할 것은 콜럼버스가 이탈리아 출신이기 때문에 이탈리아계가 철거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의 맨해튼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은 뉴욕시 이탈리아계의 힘을 의식한 시 정치인들이 “뉴욕시에 대한 이탈리아계 공헌의 상징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필라델피아도 2000년 민권시위 과정에서 콜럼버스 동상을 철거하기로 했지만, 이탈리아계가 연방법원에 소송했다. 법원은 시가 철거 결정 전 90일간 시민 의견 청취 의무를 다하지 않아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미국판 역사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덴버는 원래 아메리카대륙 중부의 대평원에 살던 원주민들이 사냥터를 가로질러 다니던 고대부족의 길이었다. 골드러쉬 때는 로키산맥을 넘어 서부로 넘어가던 개척자 길이었다. ‘원주민의 시각’과 ‘개척자의 시각’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개척’도 콜럼버스와 그의 후예들이 저지른 학살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콜로라도의 주 수도인 덴버는 로키산맥 입구에 있는 교통 요지다. 미국 주요 도시 중 가장 높은 해발 1600m의 고지에 있어 ‘마일하이시티(Mile High City)’로 불린다. 덴버에 가면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곳이 RiNo(강북아트지구의 약자) 지역이다. 쇠락한 공장지대의 창고와 공장을 예술지구로 되살린 이 지역은 거리의 벽화를 보는 것만으로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미국 서부와 동부를 잇는 교통요지로서의 덴버를 상징하는 유니언역 / 손호철 제공

미국 서부와 동부를 잇는 교통요지로서의 덴버를 상징하는 유니언역 / 손호철 제공

급진적 운동가 데이비스 초상화 보니 반가워

“어디서 많이 본 여자인데 누구지?” RiNo 한 주차장 벽에 그려진 커다란 아프리카계 여인의 초상화가 너무 멋있어 발을 멈췄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민중에게 권력을”, “권력과 평등”. 얼굴 사진 옆에 쓰여 있는 심상치 않은 글을 보자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앤절라 데이비스(1944~ ) 아닌가? 휴대전화에서 앤절라 데이비스 이미지를 찾아보니 맞았다. 그가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1970년대 이후 소식을 몰랐는데, 그의 얼굴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데이비스는 대학 졸업 후 독일에 유학해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69년 UCLA 교수로 임명됐다. 이사회는 그가 미국 공산당(CPUSA) 당원이라는 것을 뒤늦게 인지하고 해고했다. 그는 법원에 고소했고, 법원은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대학은 그가 저속한 욕을 했다며 다시 해고했다. 다음 해 그의 소유로 돼 있는 총이 4명의 사상자를 낸 아프리카계 급진단체 블랙팬더의 법원 점거 투쟁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져 난리가 났다. 그는 살인음모 등으로 기소돼 1년 이상 옥살이를 했지만, 무죄로 풀려났다.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1980년대에 그는 공산당 부통령 후보로 두 번이나 출마했고, 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하자 1991년 탈당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위한 소통위원회(CCDS)’를 만들고 UC 산타크루즈대학 페미니즘학과 교수가 됐다. 이후에도 다양한 급진적 운동을 벌여 2020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고 한다. 덴버에 와서 잊고 있었던 앤절라 데이비스를 만나다니, 기대하지 않은 의외의 성과였다.

덴버 등 미 서구 개척의 아버지라 불리는 킷 카슨의 동상도 철거되고, 그 밑의 단만 남아 있다. 손호철 제공

덴버 등 미 서구 개척의 아버지라 불리는 킷 카슨의 동상도 철거되고, 그 밑의 단만 남아 있다. 손호철 제공

덴버 시청광장에 세웠던 콜럼버스 동상이 사라져 지금은 원래 위치도 찾아볼 수 없다. 손호철 제공

덴버 시청광장에 세웠던 콜럼버스 동상이 사라져 지금은 원래 위치도 찾아볼 수 없다. 손호철 제공

2020년 민권시위대가 철거하기 전에 덴버시 시청광장에 세워져 있었던 콜럼버스 동상 / 위키커먼스

2020년 민권시위대가 철거하기 전에 덴버시 시청광장에 세워져 있었던 콜럼버스 동상 / 위키커먼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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