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코알라의 죽음이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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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있는 코알라 / 픽사베이

잠자고 있는 코알라 / 픽사베이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학회에 참석하고 인근 대학에서 한동안 연구하며 지낼 수 있는 기회였다. 호주 방문은 내게 오래 기다려온 여행지였다. 붉은 사막, 끝없이 펼쳐진 초원 그리고 남반구 호주에서만 살아가는 이국적인 야생동물들, 그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동물은 단연 ‘코알라’였다. 주변 코알라 보호구역의 나무 위에서 졸고 있는 회색 털 뭉치들을 찾았다. 생각보다 훨씬 작고 귀여웠다. 두툼한 앞발로 나무를 끌어안은 모습은 마치 세상 모든 걱정을 내려놓은 듯 평온했고, 가끔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에 코를 찡그리며 몸을 움츠리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깜찍한 잠버릇 같았다. 하루 스무 시간을 자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시간은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멈춰 섰다. 호주를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졸고 있는 코알라의 모습은 지금까지 인상 깊게 남았다.

최근 코알라와의 평온한 기억이 흩뜨려졌다. 호주 빅토리아주 정부가 야생 코알라 약 700마리를 헬기에서 총으로 사살한 사건 때문이다. 올해 3월 빅토리아주 부즈빔 국립공원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약 2200㏊의 산림이 소실됐다. 주 정부는 코알라의 주요 먹이인 유칼립투스 군락지도 대부분 파괴돼 먹이를 잃고 고통 속에 방치된 코알라들을 ‘인도적 안락사’라는 명목으로 살처분했다고 설명했다. 사슴, 돼지 같은 외래 침입종을 통제하기 위한 공중 사살은 일상적으로 이용되는 방법이지만, 동물 복지를 이유로 실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극단적인 조치는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빅토리아주 정부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호주 산불, 기후변화가 만든 불타는 재앙

호주는 여름만 되면 고온에 강풍이 겹쳐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입는다. 2019∼2020년에는 6개월 넘게 산불이 이어지며 약 19만㎢가 불에 탔고 33명이 사망하는 등 ‘블랙 서머(Black Summer)’라 불리는 최악의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작년 2월에도 빅토리아주에 산불이 확산하면서 주민 약 3만 명에게 대피령이 내렸고, 100여개 학교와 유아시설, 노인시설 및 교도소 등이 폐쇄됐다. 당시 기온은 40도를 넘었고, 시속 80㎞에 달하는 돌풍과 마른번개까지 겹치면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산불의 주요 원인은 극심한 가뭄과 자연발화다. 호주는 세계에서 자연발화가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국가다. 장기간 이어지는 극심한 가뭄은 연간 강수량을 최저 수준으로 낮추고, 빈번한 폭염은 매년 크고 작은 산불로 이어진다. 최근 코알라 살처분으로 논란이 된 부즈빔 국립공원의 대형 산불 역시 국립공원 내 발생한 낙뢰로 인한 자연발화였다.

호주 산불이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연구도 있다. 2021년 국제학술지 ‘환경연구레터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정수종 서울대학교 교수 연구팀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인도양 해수면 온도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초여름과 늦가을 사이 인도양 열대 해역의 수온 변화가 동부에는 작고, 서부에는 높음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인도양 서쪽의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강수량을 증가시켰고, 인도양 동쪽의 호주에는 강수량을 감소시켰다. 연구는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할수록 호주의 고온 건조한 기후가 더욱 강화되고, 이는 남동부 지역의 산불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호주의 산불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길 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대재앙이다. ‘블랙 서머’ 당시 산불로 피해를 입은 야생동물은 약 30억 마리에 달한다. 그중 코알라는 약 6만 마리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뉴사우스웨일스(NSW) 북부 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전체 코알라 개체군의 71%가 사라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당시 산불 현장에서, 검게 그을린 코알라 한 마리가 구조대원이 건넨 물을 받아 마시는 장면은 전 세계 언론에 널리 보도됐다.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코알라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불거진 ‘헬기 공중 안락사’ 사건은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화상과 부상으로 고통받고, 굶주림 속에서 점점 상태가 악화되는 코알라들에게 안락사는 고통을 줄이는 마지막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겪는 참혹한 재앙의 근본 원인은 결국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비롯한 지구 환경 훼손의 결과가 아닌가?

2019년 9월 호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6개월간 지속했다. 사진은 2020년 1월 31일 호주 산불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AP연합뉴스

2019년 9월 호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6개월간 지속했다. 사진은 2020년 1월 31일 호주 산불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AP연합뉴스

기후변화가 부르는 여섯 번째 대멸종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인류는 물론 지구 전체 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는 단순한 날씨 변화에 그치지 않고, 생물종의 멸종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로 지구 역사에는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급격한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온실가스 배출 등 인간 활동이 유발한 기후변화가 여섯 번째 ‘대멸종’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최근 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논문이 발표됐다.

작년 12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기후변화멸종’ 논문에서, 마크 어반 미국 코네티컷대학 교수는 기존 485건의 연구와 500만건 이상의 예측 자료를 종합해 2100년까지 기후변화 시나리오(SSP)에 따라 생물 종 멸종 위험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억제될 경우 전체 생물 종의 1.8%가 멸종위기에 처하지만, 상승폭이 5도 이상일 경우 약 3분의 1에 달하는 종이 멸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기후변화멸종’은 지리적으로는 호주·뉴질랜드, 남아메리카, 북아프리카 등에서, 생물 분류상으로는 특히 양서류에게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이미 현실에서 진행 중이다. 급격한 기온 상승으로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북극곰 등 서식지를 잃는 동물이 늘고 있다. 식물도 생장과 번식에 필요한 영양분 부족과 꽃 피는 시기의 변화로 약해지고 있으며, 곤충과의 생태적 균형도 무너지고 있다. 해양에서는 플랑크톤 감소와 산호 백화 현상이 나타나 해양 생태계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

검게 그을린 코알라 털에 묻은 것은 재가 아니라 인간의 무책임이다. 불길을 피해 살아남은 코알라들은 결국 인간의 손에 총살당했다. 헬기에서 떨어진 ‘인도적’ 총알엔 인류가 초래한 기후재앙의 무게가 실려 있다. 기후변화의 현실을 외면할수록 총구는 점점 우리를 향한다.

<정봉석 JBS 수환경 R&amp;C 대표·부산대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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