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로 말라 죽어가는 미국의 옥수수밭. 실리콘밸리는 기후위기 등에 얼마나 답을 주고 있는가? / 손호철 제공
“아이고, 또 틀렸네!” 1980년 나는 동양통신(현 연합뉴스) 기자로 근무하다가 “5·18을 ‘폭동’이라고 보도하라”는 신군부의 지침에 저항해 통신사를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 했다. 미국 대학교수들은 과목당 매주 300쪽 이상의 원서를 읽고 비판적 글을 두 장 정도 써오라고 했다. 한 학기에 세 과목을 들으니 900쪽 이상을 읽고 영어로 비평문을 쓰는 것은 고문이었다. 더 큰 문제는 타자였다. 치다가 오자가 생기면 그 페이지를 전부 다시 쳐야 했다. 이렇게 타자를 반복하다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호철, 이거 한 번 써봐.” 어느 날 미국인 대학원 동료가 나를 연구실로 불러 무언가를 보여줬다. 애플이 만든 매킨토시 PC(퍼스널 컴퓨터)였다. PC를 구입하면서 오자가 생기면 그 페이지를 전부 다시 쳐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영어로 글쓰기 속도가 붙었다. 애플 덕에 박사학위 논문을 끝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남쪽 동네를 우리는 세계 첨단산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라고 부른다. 마리포사의 금·광물 박물관을 떠나 3시간을 달리자 실리콘밸리의 심장인 산호세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애플 본사(애플파크)가 가까워지자 문득 40년 전 처음 매킨토시를 접하고 느꼈던 전율이 생각났다. 이 동네에서 일하고 있는 서강대 제자 권새봄과 박선우도 생각났다.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처럼 인문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감각 그리고 자연과학적 테크놀로지를 모두 갖춘 다빈치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아트앤테크놀로지와 지식융합부를 만들려고 하니 손 교수가 신생학부 학장을 맡아 기틀을 잡아주십시오.” 그때 뽑은 제자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어 저녁을 같이하기로 했다.

애플 본사의 방문센터에서 애플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들 / 손호철 제공

산호세에 있는 애플 본사의 방문센터 / 손호철 제공
애플의 혜택 뒤편엔 노동자의 눈물
애플파크에 도착해 방문센터로 가자 애플 제품을 사기 위한 애플 팬이 넘쳐났다. 옆방에는 이미 전설이 된 애플의 거대한 원형사옥 모형 앞에 많은 방문객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원형사옥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없기에 모형이라도 보려는 사람들이다. 옥상으로 올라가자 길 건너 나무 사이로 원형사옥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서 가까운 팔로알토의 한 작은 집 주차장에는 특이한 팻말이 설치돼 있다. ‘실리콘밸리 발상지’, ‘현대의 금광’이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는 골드러시 100년 후인 1939년 이 지역에 있는 스탠퍼드대학 졸업생으로 나중에 휴렛팩커드(HP) 컴퓨터회사를 만든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자기 집 주차장에 전자회사를 설립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 지역은 스탠퍼드대학, UC버클리 등 세계적 명문대학이 자리 잡고 있어 산학협력에 유리해 전자산업 등 첨단기업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등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실험적 연구와 투자, 창업에 유리했다.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도 샌프란시스코 출신이다.
애플이 우리에게 준 혜택은 말할 수 없이 많다. 내가 박사학위를 따게 해줬고, 최영미 시인이 그의 대표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섹스만 해줄 수 있다면 완벽한 동반자”라고 극찬한 PC에서부터 이제 모두가 ‘없이는 살 수 없는’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그 예는 많다. 사실 길 안내부터 필요할 때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이번 미국답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면에 불과하다.

길 건너 나무 사이로 원형의 애플 본사 건물이 보인다. / 손호철 제공
“우리가 죄수냐?” 2022년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정문으로 진격했다. 코로나19로 많은 직원이 그만두자 고임금을 약속해 노동자들을 새로 고용하고도 낮은 임금을 준 데다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외출도 금지하는 등 사실상 감옥 같은 생활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시총 3조달러의 세계 최고 기업이고, 아이폰 덕으로 삼성전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50% 이상이 법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는 파견노동자로 강제 초과근무가 일상화돼 ‘착취공장’이라는 비판을 듣는 폭스콘에서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다.

독특한 원형 디자인으로 유명한 애플 본사 모형 앞에서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손호철 제공
세계는 불타는데 실리콘밸리는 비파만 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잉여가치론을 통해 이윤에 눈이 멀어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착취와 파괴를 생생하게 분석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본주의는 ‘완만한 학살’에 다름 아니다. 반면에 주류경제학은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한다. 특히 최근 주류경제학에서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다. 그는 자본주의를 ‘창조적 파괴’라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내부로부터 경제구조를 부단히 낡은 것을 파괴하고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부단히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산업변화의 과정”이다. 애플, 그리고 실리콘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창조적 파괴’다. 이를 통해 아이폰, 인공지능(AI) 등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기술과 제품들이 만들어지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산호세에 있는 애플 본사의 방문센터 / 손호철 제공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파괴되는 것들의 고통은 어떠한가? 파괴과정 속에 쓸모없는 것이 되어 도태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의 삶은 어떠한가? 아니 최근 들어서는 창조적 파괴에 의해 발전하고 있는 AI 혁명으로 인류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어디 인간뿐일까? 진짜 문제는 기후위기, 생태위기다. 미국 여행 내내 목격한 옥수수밭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곳곳에서 끝없이 이어진 옥수수가 누렇게 죽어가고 있다.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 자체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는 생태파괴의 시대에 생태적 파괴를 최소화하는 ‘생태기술’이나 ‘적정기술’이 아니라 지속적인 창조적 파괴, 이에 따른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제품이 바람직한가? 여러 지구적 위기가 중첩된 ‘복합위기의 시대’에 창조적 파괴와 실리콘밸리는 인류에게 축복인가? 저주인가?
1960년대 말, 전후 풍요를 누리던 서구 자본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반전 운동, 68혁명 등 다양한 대중운동도 폭발했다. 하지만 정치학자들은 가치 중립적인 ‘과학적 정치학’이라는 이름 아래 침묵하며 통계 연구 등에 몰입하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며 한 정치사상가가 일갈했다. “로마는 불타고 있는데 네로는 비파만 켜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 아니 세계 자본주의의 최첨단인 실리콘밸리를 바라보며 나 역시 그처럼 일갈하고 싶어졌다. “세계는 불타고 있는데 실리콘밸리는 비파만 켜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