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유독 트럼프에 환호하는 베트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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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트럼프 그룹의 15억달러(약 2조1000억원) 흥옌성 투자 서명식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트럼프 월드 투자사 낀박시티 홈페이지

지난 9월 트럼프 그룹의 15억달러(약 2조1000억원) 흥옌성 투자 서명식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트럼프 월드 투자사 낀박시티 홈페이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베트남 커뮤니티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들(베트남계 미국인)을 사랑합니다” 지난 8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미국 버지니아주의 베트남계 미국인들이 자주 찾는 쇼핑센터에서 한 말이다. 트럼프 본인조차 유달리 베트남계가 왜 자신을 지지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아시아계 미국인 법률교육재단(Asian American Legal Defense and Education Fund)’의 여론조사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중 18%만이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베트남계는 32%가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2020년 대선에서도 베트남계의 트럼프 지지 비율은 아시아계 미국인 중에서 가장 높았다. 2020년 5월 발표된 ‘아시아계 미국인 유권자 조사(Asian American Voter Survey 2020)’에 따르면 베트남계 미국인 중 48%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아시아계 미국인 전체 평균은 30%에 불과했다. 2023년 5월 퓨 리서치 센터의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미국에서의 삶’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계 등록 유권자 51%가 공화당을 지지한 반면 민주당은 42%에 불과했다. 이 조사의 아시아계 미국인 평균은 공화당 34%, 민주당 62%였다. 다만 최근 젊은 베트남계 미국인들은 다른 아시아계와 비슷한 수준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왜 1세대 베트남계 미국인들은 트럼프와 공화당을 적극 지지하는 것일까.

트럼프 ‘반중 의지’로 베트남계 지지받아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된 이후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힘들게 정착한 베트남 이민 1세대는 공산당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이 때문에 공화당의 강경한 반공 성향을 선호한다는 분석이 있다. 베트남계인 린다 보(Linda Vo) 캘리포니아대학 ‘아시아계 미국인 학과’ 교수는 2020년 10월 미국 디지털 미디어 복스(VOX)와의 인터뷰에서 “반공 의식이 강한 베트남 이민 1세대는 공화당이 보수적이고 반공주의적일 것으로 생각해서 지지한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트럼프의 ‘반중 의지’가 베트남계의 지지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코로나19 유행 당시 이를 ‘중국 바이러스’, ‘쿵플루(쿵후와 플루의 합성)’라고 부르며 인종 차별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자 아시아계들은 당시 공포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베트남계 이민 1세대는 트럼프를 적극 옹호했다. 이를 두고 린다 보 교수는 ‘반중국’은 베트남인의 ‘정체성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린다 보 교수가 지적한 ‘베트남인의 반중국 정체성에 의한 트럼프 지지 현상’은 베트남 본국에서도 벌어졌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 (42) 유독 트럼프에 환호하는 베트남 사람들

2020년 11월 한국 매체 아시아투데이의 정리나 베트남 특파원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트럼프를 애통해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을 보도했다. 보수성이 짙은 하노이에서 대학생과 직장인은 물론이고, 고위공무원 집안의 중앙부처 공무원마저 트럼프 패배를 아쉬워하는 글들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2024년 11월 트럼프의 재선이 확정되자 페이스북에 축하 글을 게재하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호찌민 시민이 많았다. 호찌민 거주 25년차인 한국인 전모씨는 “출근하자마자 베트남 직원들이 트럼프 당선 기념으로 음료수를 사달라고 해서 영문도 모른 채 지갑부터 꺼냈다”며 “인생의 절반 이상을 베트남에서 살고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왜 트럼프의 당선을 기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전 세계가 우려하는 와중에 상당수 베트남인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트럼프의 ‘강경한 반중국 정책’ 때문이다. 정리나 특파원의 보도로는 하노이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트럼프의 강경한 반중국 정책은 베트남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공무원은 “우리 당과 정부는 중국을 의식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라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강경한 반중 정책에 베트남 국민이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는 베트남 동해(남중국해)에서 중국 해경에 대응하라며 2000억원이 넘는 해안경비정과 24대의 고속정을 지원했다. 이에 더해 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 항공모함이 베트남에 입항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 시절인 2018년이다. 중국이 베트남을 자극하면 미국과 손잡고 중국에 맞서겠다는 강경한 의지였다. 베트남이 경제적으로 큰 수혜를 본 것도 트럼프의 거칠고 강력한 반중국 정책 때문이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높은 관세를 피하고자 글로벌 기업들이 옮겨 온 곳이 베트남이다. 이제는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들마저 베트남으로 제조 시설을 이전해 높은 관세를 피하고 있다. 그 덕분에 베트남 수출은 대폭 늘어나고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가 이익 최대화 ‘명품 외교’ 이어질지 주목

베트남 정부는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원만한 관계를 자신하며 트럼프 2기 체제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지난 9월 25일 트럼프 대통령 일가 소유의 기업인 트럼프 그룹(The Trump Organization)이 베트남에 15억달러(약 2조1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베트남 북부 흥옌성이 그 대상으로 골프장과 리조트 및 주거단지 개발이 주목적이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이루어진 투자 협정식에 트럼프의 차남이자 해당 기업의 부사장인 에릭 트럼프가 직접 서명했다. 게다가 당시 선거 막바지에 정신없을 트럼프가 서명식에 참석해 찍은 사진이 전 세계에서 보도됐다. 흥옌성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와 북부 최대 항구 도시인 하이퐁의 중간에 위치해 배후 도시로서 큰 성장이 기대되는 지역이다. 무엇보다 흥옌성은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또 럼 공산당 총비서와 베트남 공안부 장관, 법무부 장관의 고향이다. 미국 최고 지도자의 가족과 최측근 실세 중의 실세 모두 베트남에 투자하니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를 걱정할 필요 없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트럼프 2기 체제를 철저히 준비해야만 한다. 베트남은 중국, 멕시코에 이은 3대 대미 흑자국이다. 2023년 기준 1040억달러(약 146조원) 흑자인데 그 규모가 2019년(550억달러)에 비해 2배 가까이 성장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멕시코와 캐나다에 관세 25% 부과를 예고하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멕시코는 즉각 중국산 밀수 제품들을 단속하며 트럼프의 반중 정책에 협조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베트남 정부는 2023년 8월 미국 상무부가 베트남을 거쳐 원산지를 속여 고율의 관세를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물론 수출 중심의 베트남은 중국에서 주요 부품과 원자재가 수급되지 못하면 공장이 돌아가지 못해 마냥 미국의 반중 노선에 발맞출 수도 없다. ‘대나무 외교’라 불리며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국가의 이익을 최대화했던 베트남 ‘명품 외교’가 이번에도 이어질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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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