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그림자 교향곡, 교세포와 보통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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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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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세포(膠細胞·glia)는 한때 뇌의 단순한 ‘접착제’로 여겨졌다. 19세기 신경과학자들에게 교세포란 신경세포들을 접착시키는 수동적인 연결조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세포는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하고, 뇌의 면역을 담당하며, 심지어 기억과 학습에까지 관여하는 뇌의 중심으로 재탄생했다. 이는 과학사를 넘어 우리 사회가 내포한 역설적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진정한 변화의 요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접착제’에서 시작된 오해

뇌과학의 역사는 신경세포 연구에 주로 집중돼 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뇌를 신경세포 중심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신경세포는 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종류의 조직이며, 실제로 다양한 외부환경의 정보를 취합하고 계산을 통해 해당 생명체가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동물의 뇌에는 신경세포와 동일하거나 더 많은 수의 교세포가 존재한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신경세포와 교세포 연구는 19세기 초 동시에 시작됐지만, 교세포의 생리학적 연구는 1950년대가 되기 전까지 정체돼 있었다.

19세기 중반,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는 뇌 조직에서 신경세포 사이를 채운 미스터리한 다량의 세포군을 발견하고 이를 ‘신경아교(neuroglia)’라 명명했다. ‘아교(glia)’는 그리스어로 ‘접착제’를 뜻한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 세포를 신경세포를 고정하는 수동적 구조물로만 여겼다. 뇌과학에 큰 관심이 없던 병리학자 피르호에게 교세포는 뇌염과 같은 뇌의 병리학적 변화에서 역할을 하는 정도로 생각됐다.

20세기 초 신경생물학의 근대화를 이룬 선구자, 스페인의 신경과학자 카할이 신경세포를 “뇌의 귀족”으로 격상시키며 신경학설이 확립되면서 교세포는 더더욱 뇌 속의 그림자로 밀려났다. 카할의 신경학설은 서로 다른 신경세포들이 신경돌기를 통해 서로 접촉해 교신하고, 바로 이 현상이 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는 가설로, 신경세포를 뇌에서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세포로 고착시켰다. 카할은 교세포를 “단순한 지지막”이라 폄하했고, 그의 제자 호르테가의 미세아교세포 발견에도 무관심했다.

20세기 초 많은 연구자가 교세포가 신경세포보다 수적으로 우세함을 지적했지만,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며 그런 주장을 일축했다. 교세포 연구는 과학의 ‘주변부’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과학은 끊임없는 오류 수정의 과정이다. 19세기 신경과학자들의 교세포에 대한 암묵적인 무시를, 단지 이들의 신경세포에 대한 선호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교세포는 마치 그림자처럼 분명히 존재하지만,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존재였다. 과학의 여러 분야 중 특히 생명과학은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해결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따라서 19세기 발견된 교세포의 존재는 전기생리학을 통해 강력하게 뇌의 기능을 설명해주는 신경세포 연구 이후로 미뤄진 것이다.

1950년대 전자현미경의 등장은 교세포 연구의 혁명적 전기를 마련했다. 과학자들은 교세포가 단순한 접착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카할과 골지 등에 의해 무시됐던 ‘별아교세포’는 신경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고, 혈뇌장벽을 조절하며, 신경전달물질을 흡수해 과도한 자극을 막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기능이 알려지지 않았던 미세아교세포는 뇌의 면역체계로 활동했고, 희소돌기아교세포는 신경세포의 전기적 신호를 가속화하는 미엘린을 형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1990년대에는 더 충격적 사실이 드러났다. 별아교세포가 신경세포 간 시냅스 형성과 제거를 직접 조절하며, 장기기억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제 교세포는 접착제가 아니라 “뇌의 교향악단 지휘자”로 불리게 됐다. 2010년대 알츠하이머병 연구에서는 미세아교세포의 과활성이 염증을 유발해 병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이 발견되며, 교세포는 질병 치료의 새 표적이 됐다. 침묵했던 연구의 복수는 완벽했다.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신경생물학회에서 주인공은 신경세포가 아니라 교세포로 바뀌는 중이다.

엘리트와 보통 과학자

신경세포가 빛나는 엘리트라면, 교세포는 이름 없는 보통 과학자다. 신경세포는 노벨상 수상자처럼 주목받지만, 교세포는 실험실의 기술자, 데이터를 정리하는 연구원처럼 시스템을 지탱한다. 카할이 교세포를 외면한 것은 마치 과학사가 ‘엘리트 중심 서사’만을 강조하는 것과 닮았다.

교세포 연구가 반세기 이상 미뤄진 주된 이유는 기술적 한계 때문이지만, 피르호와 카할 같은 엘리트 과학자들이 퍼뜨린 뇌에 관한 개념적 편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19세기 엘리트 신경과학자들은 신경세포의 축삭과 같은 황홀한 형태학적 아름다움에 빠져들었고, 그 축삭으로부터 아주 손쉽게 측정할 수 있는 전기적 신호에 매료됐다. 그들에게 뇌 기능의 대부분은 바로 이 아름답고 고상한 신경세포로부터 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그들이 제안한 교세포의 ‘접착제’ 개념은 대부분의 신경과학의 탐구영역에서 교세포를 제외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자연계에 원래 존재하던 교세포의 중요한 기능이 신경세포에 대한 개념적 편향 때문에 영원히 가려질 수는 없었다. 1950년대 전자현미경과 세포 내 기록 기술이 등장하며 교세포의 휴지 전위, 칼슘 파동, 신경전달물질 분비 등이 발견되고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신경세포가 화려한 전기신호를 만들어도, 교세포가 환경을 정리하지 않으면 뇌는 혼란에 빠진다.

신경세포와 교세포의 관계처럼 진정한 혁신은 협력에서 온다. 마찬가지로 과학의 발전은 아이디어를 내는 천재뿐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체계화하는 수많은 보통 과학자의 노동 위에서 이뤄진다. 교세포의 재발견은 과학계가 선택하는 연구의 대상이 얼마든지 편향돼 있을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이자, 과학계가 ‘엘리트 신화’에서 벗어나 협력적 생태계를 인정해야 함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교세포의 부상은 단순한 과학적 발견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는 관점 자체를 뒤흔든다. 뇌가 교세포 없이 기능할 수 없듯, 과학도 보통 과학자 없이 전진할 수 없다. 어린왕자의 대사처럼 사람들은 눈에 잘 보이는 것에 매료되고, 화려함에 쉽게 매혹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교세포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기리는 선언이자, 모든 존재가 연결된 시스템을 이해하는 통찰일지 모른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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