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주연배우 구설수에 오스카 레이스서 천당과 지옥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에 출연한 트랜스젠더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처럼 열렬한 찬사와 냉담한 혹평 사이를 오간 영화가 또 있을까. 지난 3월 12일 개봉한 <에밀리아 페레즈>가 걸어온 그간의 경로는 장미꽃길과 가시밭길을 동시에 밟는 여정이다. 지난해 제77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출연 배우 4명 공동 수상)을 시작으로 산뜻한 출항을 시작한 <에밀리아 페레즈>의 영광은 내내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타이틀롤인 에밀리아 페레즈를 연기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트랜스젠더 배우로서는 최초로 칸의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수상 직후 그는 현재진행형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세상의 모든 트랜스젠더에게 수상의 영광을 바쳤다. 이후 온라인에서 쏟아질 논란과 증오를 담담히 예상하면서도 “우리 모두에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기회가 있다”고 마무리한 수상 소감은 아름다운 피날레였다.
온라인 혐오성 발언으로 ‘변화의 동력’ 잃어
문제는 온라인에 그가 남긴 혐오성 발언이 서서히 드러나면서부터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시작된 <에밀리아 페레즈>의 본격적인 오스카 레이스 와중에 파헤쳐진 과거 행적을 통해서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소셜 미디어에 무슬림 혐오를 거침없이 드러냈으며, 경찰의 잔혹한 강압 행위의 희생자인 조지 플로이드를 ‘마약 중독자 사기꾼’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아카데미시상식 자체를 겨냥했던 발언 역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노매드랜드>, <미나리>,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등이 주요 부문에서 거론됐던 2021년 시상식을 두고 “아프로-코리안 페스티벌을 보는 건지,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를 보는 건지, 8M(2018년 국제 여성의 날에 일어난 페미니스트 운동)을 보는 건지 알 수 없다”라고 남긴 발언은 오스카 레이스의 대표 주자로서는 한층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숨기지 않는 시점임을 생각할 때 어쩌면 이 영화는 문화적 저항의 작은 구심점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도 존재만으로 무조건적 혐오의 대상이었음을 고백한 배우가 다른 집단, 혹은 다른 개인을 향한 부정적 프레임을 씌운 순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기회”는 힘을 잃는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공식 사과하고 영화를 알리는 모든 홍보의 전면에서 한발 뒤로 밀려나는 동안, 아카데미시상식 총 1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던 <에밀리아 페레즈>는 최우수 주제가상과 여우조연상(조 샐다나 분) 트로피를 챙기는 것으로 오스카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애초 배우 개인의 사연과 말끔한 분리가 어려운 영화다. 트랜스젠더 배우인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당사자성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멕시코 갱단 보스 마티나스는 이전의 삶을 지우기 위해 죽음을 가장한 뒤 여성으로 성전환을 원한다. 젊은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 분)가 비밀리에 이 모든 과정을 돕고, 마티나스는 에밀리아 페레즈라는 이름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 여성이 된 이후 그의 삶은 전에 없이 과감해진다. 마티나스의 먼 사촌으로 위장한 채 전 아내 제시(셀레나 고메즈 분)와 아이들을 자신의 곁으로 다시 불러들이는가 하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저지른 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유해를 찾는 자선단체를 설립하는 행보를 보인다.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려는 존재. 그렇게 영화는 에밀리아를 통해 속죄와 구원을 향한 몇 가지 질문이 되어 달려 나간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인가. 가능하다면 그 자격은 무엇인가. 에밀리아 페레즈의 영혼은 진정으로 변화했는가.
파격적인 캐릭터 설정은 소설에서 비롯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보리스 라존의 2018년 소설<에쿠트>(Écoute)에서 이 설정을 가져왔다. 소설 중반부에 등장하는 마약상 캐릭터는 여성으로 성전환을 원한다. 책에서는 그 이상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캐릭터지만,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여기에서부터 가지를 뻗어나갔다. 극도로 폭력적이고 남성적인 세계로부터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 <에밀리아 페레즈>의 출발점이 된 아이디어다. 여기에 특별한 색을 더한 것이 뮤지컬이다. 범죄 누아르부터 서부극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 감독답게,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에밀리아 페레즈>를 화려하게 가공된 무대 위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인물들의 비극성에 기초한 서사에서는 오페라의 화법도 강하게 감지되는데, 실제로 감독은 기획 초반 단계에서 오페라 형태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숙명처럼 떠안은 역설
인물의 성별이 변화하는 순간은 극의 분위기와 구조가 강렬하게 뒤바뀌는 신호탄이다. 마약 카르텔이 중심에 놓인 범죄 스릴러의 긴장감은 분위기를 바꾸어 텔레노벨라(중남미 국가에서 제작하는 일일연속극)의 통속적인 재미를 선사하다가, 다시금 비극적 멜로드라마로 치환된다. 과감하고 흥미로운 장면들 가운데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엘 말(El Mal)’ 시퀀스는 더없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멕시코의 정경유착, 범죄에 신음하는 이들의 현실을 풍자하는 대목이다. 극 전체에서 느껴지는 대담하고 에너지 넘치는 연출 덕분에 영화가 선택한 소재와 배경의 구체성이 짐짓 가려지는 듯한 인상은 있다. 구체적이고 섬세한 접근의 트랜스젠더 담론은 기대하기 어렵고, 멕시코를 부정부패와 범죄의 온상으로 묘사한 점도 납작한 스테레오식 접근에 가깝다. 다만 뮤지컬의 장르적 허용 안에서 만들어낸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리듬이 이 영화만의 과감한 개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은 분명하다.
인생의 두 번째 기회, 삶을 다른 모습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영화 세계를 가로지르는 오래된 질문이다. <에밀리아 페레즈>에 이르러 감독은 그 대가를 이야기한다. 에밀리아는 자기모순에 빠진 사람이다. ‘진짜 나의 인생’을 찾아 필사의 변화를 감행했지만, 결국 그가 토로하는 것은 ‘반반의 삶’을 살게 된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과거에 저질렀던 폭력을 전혀 반대의 방식으로 회개하려 하지만, 결국 과거의 그림자를 온전히 벗지 못한 과오로 파멸을 향해 간다. 온전하게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구원 역시 절반에 머문다. 인물을 향한 사랑과 냉정한 성찰이 동시 존재하는 풍경 안에서, 관객은 속죄와 구원에 대한 각자의 사유를 마무리할 틈새를 얻는다. 과거를 속죄하고 새로운 구원을 얻는 것. 그것이 영화 바깥에서 캐릭터를 연기한 실제 배우와 강하게 공명하는 숙제로 남겨진다는 점은 <에밀리아 페레즈>가 결코 의도하지 않았으나, 어느덧 숙명처럼 떠안아버린 역설이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