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결한 경험이 쌓이면 농촌은 버틸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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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농가에서 농기계 하나 장만하려면 큰 결심이 필요하다. 싼 건 수백만원, 웬만한 건 수천만원, 대형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건 ‘억’ 소리가 난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농업기술센터에선 다양한 농기계를 구비해 싸게 빌려준다. 경기 북부의 한 농업기술센터에선 48마력 트랙터 하루 대여료가 3만5500원이다. 소형 굴착기 3만원, 들깨탈곡기도 3만원, 관리기는 8500원···. 수익은 적고 빚은 쌓여가는 농민에게 이보다 고마운 사업도 없다.

지난달, 한국의 농민 십수 명이 유럽 농촌을 찾았다. 대산농촌재단이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이란 주제로 마련한 15박17일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주간경향도 동행했다. 프랑스에선 농민들이 ‘큐마(CUMA)’라 불리는 농기계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조합이 기계를 구매하고 농가는 필요할 때 빌려 쓰는 방식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랑스도 별거 없네. 이건 우리가 더 낫지’ 싶었다.

프랑스 농민에게 한국의 농기계 임대사업에 관해 설명하자 그가 말했다. “우리는 그런 제도를 원하지 않아요. 농부는 자기 농사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하니까요. 우리 큐마에서는 어떤 농기계가 필요한지, 어떤 성능의 기계를 살지 조합원인 농부들이 직접 결정해요. 수확 철처럼 모두가 기계를 써야 할 땐 일정을 조율합니다. 조합원이 기계를 쓸 땐 다들 가서 도와주기도 해요.”

그의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우리의 농기계 임대 사업은 임대료는 싸지만, 빌리고 싶을 때 못 빌리고, 필요한 농기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농기계 임대사업에도 불구하고 많은 농민이 빚을 내 농기계를 구입한다. 그런데 프랑스의 가족농들은 이걸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큐마의 경험은 또 다른 공동체 조직으로 확장된다. 프랑스 가족농들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공동경영농장(가엑·GAEC)을 만들어 규모를 키우고 수익도 나눈다. 농민 여럿이 농산물을 공동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농업과 농촌이 어려운 건 프랑스나 우리나 마찬가지지만, 그들의 말에 농부로서 자부심과 자존감이 느껴지는 건 협력하며 자구책을 마련한 ‘성공의 경험’ 덕분 아닐까. “힘이 드니까 ‘이제 그만하자’ 그러다가도 ‘이렇게 만나서 같이 도모해보는 거 좋지 않니? 좀더 해보자’ 이러면서 계속하고 있어요.”

함께 겪고, 함께 해결한 경험이 쌓이면 농촌은 버틸 힘을 갖는다.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같이 간 농민들도 저마다 프로젝트를 품고 돌아왔다. 벌써 그들이 만들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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