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관계의 힘으로 역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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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노무현 대통령 취임 반년이 갓 지난 시점에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개인 비리가 불거졌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국민께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당시 연설비서관이었던 나는 대통령의 말씀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나와 두 가지 점에서 달랐다. 우선, 대통령은 총무비서관 문제를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였다. 나는 실패의 원인이 총무비서관에게 있다고 본 데 반해, 대통령은 자신에게서 그것을 찾았다.

후회보다는 반성 통해 반전 기회 엿봐야

재신임을 묻는 발표문에서도 나와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대통령은 후회하지 않았다. 대신 반성했다. 총무비서관 임명을 잘못했다고 후회하지 않고 자신을 성찰했다. 그때 배웠다. 후회하기보다는 반성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반전의 기회를 엿봐야 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을 만나서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라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반색한다. 아내는 내가 처음 만난 여자가 아니다. 분명한 건 아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게 인생 역전을 가져다준 건 아내를 만난 것만이 아니다. 무려 다섯 가지나 더 있다. 그 첫 번째는 엄마의 죽음이다. 돌아보면 아홉 살에 맞은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위기는 인간을 분투하게 한다. 아널드 토인비가 말했지 않나.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인류는 외부 위협이나 내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성장하고 발전했다고. 또래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때 나는 늘 주변을 의식했다. 덕분에 나는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웠고, 남에게 양보하는 게 결국은 남는 장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깨우침은 두고두고 삶의 지침이 됐다. 불운이 행운을 만든 것이다.

두 번째는 고교 입시 낙방이다. 나는 가고자 했던 학교 시험에 떨어졌다. 뼈저린 실패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를 떨어진 사람이라는 낙인이 붙어 다녔다. 꾸역꾸역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마음에 새긴 생각이 하나 있었다. ‘대학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 내가 원하는 학교에 가거나, 그렇지 못할 바엔 가지 말자’라는. 고교 생활 내내 이 생각은 굳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나는 고교 입시에 낙방한 경험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고 확신한다.

세 번째는 기자의 꿈이 무산된 것이다. 첫 직장인 대우증권에 들어가 홍보실을 자원한 것은 기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맡겨진 일이 그 회사 20년 사사(社史)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나는 집필자가 아니었으므로 집필하는 분 심부름을 하며 언론사 시험을 준비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집필자가 다른 회사 사사를 베껴 쓰는 게 발각돼 내게 집필 업무가 주어졌고, 연령상 마지막 지원이 가능했던 그해를 20년사를 쓰는 데 보내야 했다.

책이 나왔지만, 그 바람에 기자가 되는 꿈은 물 건너갔다. 대신 나는 사내에서 글줄깨나 쓰는 사람으로 알려졌고, 덕분에 김우중 회장의 글을 쓰는 그룹 비서실로 갈 수 있었다. 나는 가끔 기자가 되는 것과 회장과 대통령의 글 쓰는 일을 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 길이었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사사를 쓰면서 망했다는 생각으로 불끈불끈 화가 나곤 했지만, 결과적으로 내겐 그 글을 썼던 게 보다 나은 선택이었다.

내게 인생 역전을 가져다준 네 번째는 대우그룹이 문 닫은 일이다. 대우에 몸담은 지 만 10년이 되는 1999년 대우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믿기지 않는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공든 탑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나는 이 일로 인해 청와대에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게 됐고, 지금의 작가로 살게 된 계기가 됐다.

다섯 번째, 쉰 살쯤 직장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것도 반전의 인생을 살게 된 계기가 됐다. 직장을 나오니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찾은 일이 글을 쓰고 강의하는 일이었다. 남들 앞에서 말하고 글 쓰는 일은 두려웠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지난 11년 동안 열두 권의 책을 쓰고, 3000번이 넘는 강의를 해오며 작가로 살고 있다.

그때 직장에서 잘리지 않았다면, 다른 곳을 찾아 조금 더 월급쟁이 생활을 이어갔다면 어찌 됐을까. 지금 누리는 삶을 알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직장을 그만뒀을 때는 ‘이젠 마트에서 사고 싶은 걸 마음대로 살 수 없겠구나’ 하는 불안감 속에, 작은 점포를 가지고 장사하는 분들을 보면 그저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 나는 지식 자영업자로 그렇게 살고 있다.

만남과 연결 통해 실패의 아픔 치유하고 성숙

실패 없는 인생은 없다. 성공할 때까지 도전한 횟수에서 1을 빼면 그것이 실패한 횟수다. 그래서 도전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실패는 무능의 척도가 아니다. 그것이 자책과 절망, 포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성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나는 실패를 통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성숙할 수 있었고, 마침내 성취했다.

이제 실패했다고 실망하지 않는다. ‘그래 실패하자. 또 실패하자. 더 낫게 실패하자’라고 벼른다. 실패에서 실패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실패에서 배우려는 자세다. 실패했다는 건 도전했다는 것이다. 실패하는 삶은 그 자체로 도전하지 않는 삶보다 낫다. 실패 없는 삶이야말로 자신의 용기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성장마인드’와 ‘고정마인드’를 구분한다. 성장마인드를 지닌 사람은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믿기에 실패 후에도 좌절하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반해 고정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것으로 보고, 실패를 자신의 무능을 확인하는 빌미로 삼는다는 것이다.

내게 성장마인드를 북돋는 힘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참고 견디는 힘이다. 나는 버티는 힘이 있다. 인정받는 건 고사하고 심한 구박을 받아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견뎌내는 힘이 있다.

두 번째, 응원군인 시간이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줬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교훈이 됐다. 뿐만 아니라 시간만 들이면 못해낼 일이 없었다. 시간을 들이면 문제가 해결됐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었다.

세 번째, 관계의 은총이다. 이는 어려움을 타개하는 가장 큰 힘이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건 나를 약하게 만들지만, 내가 실패한 순간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타인이란 존재였다. 다른 사람은 내가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그들의 지지와 응원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다른 사람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되기도 했다.

실패는 내게 당연한 것이다.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면 된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내겐 결코 진부하지 않다. 나는 실패를 반기지도 않지만 배척하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실패할 것이다. 다만 실패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실패는 성공보다 더 큰 교훈을 준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또 다른 반전을 꿈꾼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관계의 힘을 믿는다. 나는 만남과 연결을 통해 실패의 아픔을 치유하고,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어른이 돼가고 있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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