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땅이 보내는 경고, 노후 인프라와 싱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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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1일 일본 사이타마현 야시오시에서 발생한 싱크홀에서 트럭 운전자를 구조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31일 일본 사이타마현 야시오시에서 발생한 싱크홀에서 트럭 운전자를 구조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도쿄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20㎞ 떨어진 야시오시는 인구 9만명의 소도시다. 서민 주택과 중소기업 공장이 밀집한 수도권 위성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월 28일 야시오시 중심부의 한 교차로에서 갑자기 땅이 꺼지며 직경 5m, 깊이 10m의 싱크홀이 생겼다. 지나가던 트럭 한 대가 함께 추락했고, 트럭에 타고 있던 70대 남성 운전사는 실종됐다.

사고 다음 날인 1월 29일, 구조 작업 도중 추가 붕괴가 발생했다. 새로운 싱크홀이 전날 발생한 싱크홀과 합쳐지면서 직경 40m, 깊이 15m까지 커졌다. 하마터면 복구 및 구조 인력이 사고에 휘말릴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인근 음식점의 간판과 전봇대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며, 이 사고는 전 세계 뉴스와 소셜 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애초 단순한 지반 침하 사고로 보였지만, 싱크홀이 점점 확장되면서 수습이 끝나지 않고 있다. 일본 당국은 도로 아래를 지나는 하수도관이 파손되면서 싱크홀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파손된 하수도관에서 오수가 계속 유출되며, 추가적인 지반 붕괴 가능성도 있어 복구 일정이 불투명하다. 특히 지름 4.75m의 대형 하수도관에서 흘러나오는 오수와 황화수소로 인한 악취 탓에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하수도관을 완전히 복구하는 데 최소 2~3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9월 21일, 부산 사상구 학장동의 도시철도 사상~하단선 공사 현장 인근에서 싱크홀이 발생해 안전센터의 배수 지원차와 5t 트럭이 깊이 8m 아래로 추락했다. 당시 배수 지원차는 인근에 발생한 싱크홀에 고인 물을 빼내기 위해 작업 중이었으며, 다행히 소방대원이 차량에 탑승해 침착하게 대응한 덕분에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해당 공사 구간에서는 지난해에만 8차례나 싱크홀이 발생해 지반 안정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도시를 위협하는 싱크홀

싱크홀이 일상의 위협이 되고 있다. 싱크홀은 땅 표면이 여러 가지 이유로 내려앉아 구멍이 나거나 커다란 웅덩이가 생기는 현상을 의미한다. 싱크홀은 기본적으로 지하수의 압력 등 지반환경 변화로 발생하지만, 노후화된 상하수도의 누수 같은 ‘인공 지하수’에 의한 지반환경 변화로 발생하기도 한다. 깊이 약 2m 이내에 묻혀 있는 노후된 상하수관로의 누수로 인한 토사 유실로 얕은 깊이에 공동(空洞)이 발생할 수 있다. 지하 터파기 공사나 터널 공사 시 차수와 보강이 미흡할 경우, 공사장 인근의 지하수가 유출돼 깊은 하부의 대규모 공동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지표면에 싱크홀이 발생한다.

또한 기후위기는 싱크홀 발생을 촉진하도록 환경 변화를 일으킨다. 극한 가뭄이 지속되면 지하수 남용과 호수 수위 저하로 인해 지반의 지지력이 약해져 싱크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집중호우로 지하수 흐름이 변하고 토사가 유실되면서 싱크홀이 형성될 수도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6~8월 집중호우 시기 싱크홀 신고가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기록적인 여름 강수량(1037㎜)을 기록했던 2020년에는 싱크홀이 급증했다. 또 시베리아와 캐나다에서는 지구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아 지반이 유실되거나 가스가 유출되며 싱크홀이 발생하고 있다. 노후화된 상하수관과 더불어 기후위기가 싱크홀 형성을 촉진하는 주요 요인임을 보여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면적 1㎡ 이상 또는 깊이 1m 이상의 지반침하로 인해 사망·실종 또는 부상자가 발생한 국내 싱크홀 사고를 분석한 결과, 2018년 338건, 2019년 192건, 2020년 284건, 2021년 136건, 2022년 177건이 발생했다. 이는 이틀에 한 번꼴로 싱크홀이 발생한 셈이다. 서울, 부산 같은 국내 대도시의 경우 상하수관로의 손상과 부적절한 지하 굴착으로 지하 공동이 형성됐고, 여름철 집중호우로 공동 주변의 토사가 휩쓸려 가면서 지표면이 무너지는 사례가 많았다.

지난해 9월 21일 부산 사상구 한 도로에서 싱크홀이 발생해 트럭 두 대가 빠졌다. 부산소방본부 제공

지난해 9월 21일 부산 사상구 한 도로에서 싱크홀이 발생해 트럭 두 대가 빠졌다. 부산소방본부 제공

노후 상하수도관의 경고

상하수도관 같은 인프라는 건설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대적인 수리나 교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적 부담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정부의 경우, 과거 고도 성장기에 조성된 사회간접자본(SOC)이 1992년 84조엔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점차 감소하며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30년이 되면 설치된 지 50년이 넘는 하수도관이 전체의 1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노후화로 인해 싱크홀 등 사고 발생이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도 노후 시설로 인한 싱크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간 6900억원 상당의 수돗물이 노후된 상하수도관에서 새고 있으며, 이는 지반 침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재 전국에 매설된 상하수관로 40만㎞ 중 매설 후 20년이 지난 노후관은 10만㎞에 달한다. 특히 대구광역시(68%), 서울특별시(66%), 광주광역시(60%), 대전광역시(54%) 등 대도시에서 노후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노후관을 짧은 주기로 교체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다. 관이 20년이 지났다고 해서 누수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50년, 한국의 20년처럼 단순히 매설 연도를 기준으로 노후도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예산 조정 또한 쉽지 않다. 미국 환경청(USEPA)은 상수도관의 사용 연한을 50년까지는 ‘우수’, 75년까지는 ‘양호’ 등급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상수도관 중 20%는 84년 이상 사용됐으며,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27%가 80년을 초과했다. 내가 경험한 북미의 상수도관도 매설된 지 오래된 경우가 많았지만 정기적인 누수, 수압, 수량, 수질 검사와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한 정량적 평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됐다.

싱크홀을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구멍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노후 인프라를 정기 점검하고, 정밀히 유지 관리하며, 필요한 시기에 교체해야 한다. 또한 지하수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기후변화에 대비한 도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 우리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싱크홀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의 땅은 안전하냐고.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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