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와 쪽방 주민은 악어와 악어새…공생이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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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살 자격 있냐” 건물주 질문에 맞선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반박

사업 발표 후 인심 사나워져 아쉬움…“올해는 더 적극적으로 나설 터”

오세훈 서울시장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24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을 방문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골목에서 공공주택사업 시행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가원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24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을 방문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골목에서 공공주택사업 시행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가원 제공

4년 전 정부가 발표한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이하 공공주택사업)’은 쪽방 주민에게 기대를 품게 했다. 쪽방 주민 차재설씨는 여름에 10분 넘게 샤워를 하고, 국수를 삶아서 불기 전에 물에 헹구는 삶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쪽방의 공동 화장실에서는 수도꼭지 쟁탈전이 벌어졌고, 늘 쫓겼다. 또 다른 주민 최갑일씨는 18㎡(5.44평)의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면 친구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며칠 살더라도 인간답게”라고 했다.

4년이 지나도록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는 공공주택사업은 이제는 주민들에게 ‘희망고문’이자 괴로움이다. 쪽방 주민 김호태씨는 “2021년도에 공공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나서 쪽방 주민들이 엄청 괴로워요. 결과적으로 주민들 못살게 한 거밖에 안 돼요”라고 했다.

지난 4년 쪽방 주민들은 알게 모르게 ‘그럴 가치와 쓸모가 있느냐’는 질문에 맞닥뜨려야 했다.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토지·건물주들의 주장에는 공통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서울역은 금싸라기 땅이다, 수도권 외곽에는 비어 있는 임대주택이 많다, 쪽방 주민들은 이미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고, 이중 다수가 자활이 어렵다 등의 이야기다. 이 지역의 한 건물주는 “이런 좋은 데에 쪽방 임대아파트를 만드는 게 낫겠나, 젊은 신혼부부를 살 수 있게 하는 게 낫겠나”라고 했다. 쪽방 주민들에게 이 금싸라기 땅에 굳이 살아야 하는지, 살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느슨해 보이지만 끈끈한 최후의 공동체

최갑일씨는 “금싸라기 땅이라는 건 이해가 간다. 몇억원 갖고 있다고 해서 다달이 이자가 1200만원씩 벌어지나. 돈 조금 들여서 이렇게 많이 수확하는 땅이면 금싸라기지”라고 했다. 최씨는 어릴 때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사이에서 자랐다. 곧 외갓집에 보내졌는데 외할아버지는 불 피울 때 빼고는 쓸모가 없다며 최씨를 ‘검불’이라고 불렀다. 서울로 가출한 최씨는 60여 년 생애 중 50년가량을 용산구 동자동과 인근의 중구 양동 쪽방촌에서 보냈다. 50대 때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며 동자동을 떠났다. 그러나 임대아파트에 살 때도 동자동으로 나들이를 나왔고,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도 않고 다시 동자동에 방을 얻었다. “나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야. 거기 사람들이 다 알더라고. 우리를 반가워하질 않아. 입이 밥만 먹으라고 있나. 말할 사람도 없어. 외로운 거지. 못살아도 부대끼며 살면 생명 연장되잖아.”

“(가난한 사람들은) 모여야 사는 거야. (…) 가난한 사람일수록 모여 살면 상담소도 생기고 사랑방도 생기고 해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조문영 교수와 학생들이 2022년 한 학기 동안 동자동 공공주택개발 과정을 들여다보고 펴낸 책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에서 한 여인숙 운영자는 이렇게 말한다.

동자동 쪽방촌은 느슨해 보이지만 끈끈한 최후의 공동체다. 쪽방 주민들로 구성된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는 연고 없이 사망한 쪽방 주민의 장례를 치르고, 아픈 주민들과 병원에 동행하며, 신용거래가 불가능한 쪽방 주민들에게 소액 대출을 해준다. 주민 차재설씨는 “연결된 사람이 없으면 그 사람이 죽든 말든 누가 신경을 쓰냐고. 그것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떠날 때는 같이 떠나자고 하는 거지. 다른 데 가면 그런 게 어딨어. 그러니까 (다른 데로) 못 가는 거야”라고 했다. 차씨는 열네 살 때 복막염에 걸려 죽다 살아났다. 그 이후 무거운 걸 들 수 없었고, 일자리를 구해도 3년 일하면 몸이 아팠다. 그는 홈리스(노숙) 생활을 하다 2009년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왔다. 차씨는 “여기 떠나면 동네 청소하는 일자리도 없어. 하다못해 반찬 하나도 나눠 먹고. 여기는 기적이야”라고 했다.

쪽방 주민이자 동자동 사랑방 대표이기도 한 윤용주씨는 “임대아파트 신청하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면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다. 여기선 이틀만 안 보여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혼자 떨어진다는 외로움이, 쪽방에 사는 불편함보다 더 무섭다”라고 했다. 윤씨는 한국화를 그리다 결혼 후 안정된 생활을 위해 중장비 임대사업을 했다. 어음 거래를 한 건설사가 부도났고, 윤씨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IMF 외환위기였다. 가족에 빚이 전가되는 걸 막기 위해 서류상 이혼을 하고, 일자리 하나 못 구하겠나 싶어 차비만 챙겨 서울에 올라왔다. 새벽 인력시장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있었고, 운이 좋아야 일주일에 한 번 일을 나갔다. 홈리스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윤씨의 최대 고민은 이른 새벽 인력시장과 무료급식소 중 어디를 갈지 고르는 일이었다. 인력시장은 가봐야 허탕 칠 가능성이 컸고, 무료급식소에 가면 당장의 끼니는 해결되지만 벌이가 없으니 저녁 잠자리가 걱정됐다. 윤씨는 “노숙하는 분들이 게을러서 그런다고들 하지만,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어떻게라도 버텨야 한다’는 생각밖에 못 한다.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여유가 안 됐다. 아침, 점심, 저녁 급식소가 다 다른 곳에 있었는데 차비가 없으니까 밥 세 끼 먹으러 다니는 데 시간을 다 썼다”고 했다. 가족과 연은 끊겼고, 오랜 홈리스 생활에 얻은 당뇨 합병증으로 2014년 두 다리를 절단했다. 직후 동자동 쪽방에 들어왔다.

공공주택사업은 공생 보여줄 상징될 수도

윤씨는 쪽방 주민들이 과도한 복지 혜택을 받고 있다는 토지·건물주들의 주장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소유주들이 대대손손 잘 먹고 잘사는 건 쪽방에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지 혜택을 받지만, 그 돈은 소유주들에게 다 들어간다. 그들과 우리는 ‘악어와 악어새’다. 그들은 우리가 필요 없는 것 같이 말하지만, 소유주들의 건물에 있는 식당에 가고 상가에 가는 건 우리”라고 했다. 잘 정돈된 그의 방 한쪽에는 한지와 붓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다시 한국화를 그려 전시도 하고, 이렇게 모은 돈을 기부한다. IMF 때 진 빚은 채무조정을 받아 매달 6만8000원씩 갚고 있다. 6년을 갚았고, 6년이 남았다.

쪽방 주민들은 공공주택사업 발표 후 동네의 인심이 사나워지고 각박해졌다고 느낀다. 김호태씨는 “민간개발 추진하는 주민들과도 이전에는 사이가 괜찮았는데 발표 나고 나서는 앙숙이 됐다”고 했다. 공공주택사업 발표로 동네에 파문을 몰고 온 정부의 미지근한 태도는 쪽방 주민들을 소유주들의 ‘여기에 살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에 무방비로 노출했다. 윤용주씨는 “넓게 보면 주거 취약계층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이 될 수 있다.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도 공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수 있다. 정책이 없던 것처럼 흐지부지되는 것 같은데 올해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이 사업을 정부가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한 해로 만들 계획이다”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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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