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6명이 숨진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는 2022년 1월 11일에 발생했다. 3년 전 이맘때였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건물 한 개 동의 외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잔해에 깔렸다. 오랜 시간 수색이 이어졌고, 사고 발생 29일 만에 시신이 모두 수습됐다.
사고 현장으로 파견 취재를 간 건 수습 딱지를 떼고 3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유가족들이 모인 천막은 취재진의 출입이 제한됐다. 유가족 대표만 나와서 간혹 공식 입장을 밝힐 뿐이었다.
어리바리한 막내 기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천막 밖을 서성였다. 자정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다. 한파에 떨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천막을 지키던 유가족 대표가 “아무도 없으니 들어오라”고 했다. 난롯가에 앉자마자 구석에 자리한 화이트보드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곳엔 “웃음, 경솔한 행동 삼가”라고 적혀 있었다.
시신이 모두 수습된 뒤 그를 다시 만나 인터뷰하면서 자세한 사정을 물을 수 있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유가족들이 2차 피해를 당하고 슬픔마저 ‘나쁜 것’이 돼버리는 것을 너무 많이 봤어요. 한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재난 현장이 우리를 학습시킨 겁니다.”
참사 공화국의 유가족들은 충분히 슬픔에 잠길 시간이 없다. 가늠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서둘러 비장한 각오를 꺼내 든다. 머지않아 침입해 올 ‘적군’에 대비해 결의를 다지듯이. 그 적군은 유가족을 향한 조롱과 혐오,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 같은 것들이다. 아무리 슬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긴장과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영영 끝나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이 이들의 말과 말 사이에 스며 있다.
탑승객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2024년 12월 29일에 발생했다. 황망한 세밑 참사였다.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하루 만인 12월 30일 오전 유가족협의회가 빠르게 꾸려졌다. 언론 보도를 보면, 유가족 임시 대표를 맡은 박한신씨는 “세월호 때도 그렇고 우리는 겪어봤다. 우리가 흩어지면 그들의 힘은 강해진다. 우리가 모여있으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직접 다른 유가족의 연락처를 모으고 정부와 제주항공 관계자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불신과 신중은 참사 유가족들의 생존방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참사(2014년·304명 사망)는 이태원 참사(2022년·159명 사망)에, 이태원 참사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이토록 잔인한 경험칙을 남겼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도 희생자의 신원 확인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등 유가족들의 권리가 뒷전으로 밀리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온라인 게시글도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지난해 참사 10주기를 맞았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새해 첫날 목포신항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고 무안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이들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세상을 더 바꿨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강은 매거진L팀 기자 ee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