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과 개방 사이···동덕여대 학생 투쟁이 말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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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측 남녀 공학 추진 반발…‘여대란 무엇인가’ 질문 던져

젠더 갈등·폭력 시위 프레임에 “사태의 본질 봐야” 지적도

지난 11월 19일 서울시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건물에 학생들이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혜리 기자

지난 11월 19일 서울시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건물에 학생들이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혜리 기자

동덕여대 학생들이 학교 측의 남녀 공학 전환 추진에 반대하며 투쟁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건물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고, 수업을 거부하며, 캠퍼스 곳곳에 대자보를 붙였다. 지난 11월 20일엔 전체 재학생의 약 3분의 1인 1973명이 모여 학생총회를 열고 남녀 공학 전환 반대를 의결했다. 학생들은 이 구호를 내세운다.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정체성을 포기한다면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다며, 여대 존속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구호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조롱과 비난도 함께 받고 있다. 반여성주의 단체와 일부 누리꾼들은 온라인상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을 ‘폭도’로 규정해 공격하고 혐오 발언을 일삼고 있다. 언론은 ‘젠더 갈등’과 ‘폭력 시위’ 프레임을 앞세운 보도를 하고 있다. 정작 동덕여대 학생들이 ‘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여자대학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자대학은 자주 긴장과 갈등 속에 놓여왔다. ‘여대=페미’라는 낙인, 성차별이 사라졌다는 신화,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조정 등 복잡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여대는 계속해서 그 존재 의미를 입증하라고 요구받는다. 동덕여대 사태는 모든 여대, 사회 전체가 마주한 문제다. 소멸인가 개방인가, 아니면 또 다른 대안인가. 동덕여대 학생들은 ‘여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 “비민주적 운영에 분노 쌓인 것”

동덕여대의 남녀 공학 전환 검토 사실은 지난 11월 7일 처음 알려졌다. 학생들은 반대 서명, 대자보 붙이기에 이어 11월 11일부터 수업 거부, 본관 점거 시위에 돌입했다. 학교는 11월 12일 낸 입장문에서 “우리 대학이 처해 있는 내·외부 환경의 위협을 극복하고 혁신을 이루고자 출범한 대학비전혁신추진단 회의에서 두 개 단과대학 공학 전환 사안이 포함돼 있었다”며 “모든 구성원과의 의견수렴 절차를 계획 중이었다”고 밝혔다. 학교는 “공학 전환은 학교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도 없으며 구성원들의 의견수렴과 소통은 필요한 절차”라며 “아직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학생들의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고 했다.

학생들은 우선 학교가 학생들 모르게 공학 전환을 검토한 게 비민주적이라고 주장한다. 최현아 총학생회장은 지난 11월 20일 학생총회에서 “어떤 학생은 교수님께 공학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넌지시 듣게 됐고, 또 다른 학생은 학교 커뮤니티에서 이 사실을 접하게 됐다”며 “여대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공학 전환을 학교가 아닌 입에서 입으로, 글로 접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이 학교의 핵심 구성원으로서 학교 운영에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는데 학교가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남학생 6명이 한국어문화전공학과 학부생으로 재학하게 된 과정이나 2015년 여성학 전공 폐지 과정에서도 학생들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총장 선출 절차에 학생 의견을 반영하는 총장 직선제도 11월 20일 총회에서 의결했다.

지난 11월 19일 동덕여대 캠퍼스에서 기자와 만난 한 학생(24)은 “개인적으로 이번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는 공학 전환 자체보다는 학교의 비민주적인 절차에 있다”며 “학교가 교내 사망사고와 안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고, 이미 남학생이 입학한 것도 신뢰가 깨지는 문제였다”고 했다. 그는 “동덕여대는 현재 재정적으로 안정된 상태이며 적립금은 사립대학 상위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라며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를 확립한 후에 공학 전환 논의가 진행되는 게 맞다고 본다”고 했다.

한 학생은 대자보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은 젠더 갈등보다 앞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중대사를 처리한 것을 규탄 중인 것”이라며 “학교 자금으로 이사장의 개인 채무 청산, 비민주적 학과 통폐합, 위험·낙후된 시설 방치, 교수 충원 요구 거부와 같은 교내 비리에 학생들 분노가 더해져서 시위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성북구 동덕여대 정문에 남녀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혜리 기자

서울시 성북구 동덕여대 정문에 남녀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혜리 기자

물론 이번 시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남녀 공학 전환이다. 학내에 붙은 대자보들을 살펴보면 동덕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여대 폐지를 단순한 입학생 성별의 변화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여대 폐지는 성차별과 가부장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11월 13일 게시된 대자보엔 이런 내용이 있다. “대학은 경험주의와 실험주의를 바탕으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사실을 발굴하는 곳이고, 대학의 지성인들은 세상을 둘러싼 무지성과 편견을 벗긴다. 단순한 추론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자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여자대학은 세상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권위인 가부장에 반문하기 위해 존재한다. 여대는 남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태초의 인간으로서 여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여성 지성인의 공간이다. (…) 여대가 필요 없다는 사람에게 묻는다. 여대를 없애려는 이유가 여대로 하여금 가부장이 타파됐기 때문인가. 여대가 가부장을 깨부수는 것이 두려워서인가.”

성차별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여자대학의 필요성도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여자대학의 끝은 공학 전환이 아닌 자기 소멸”이라고 쓴 대자보도 있었다. 필자는 “1950년 동덕여대 개교 이래 70여 년이 지난 2024년 지금, 우리 사회에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가”라며 “진정한 성평등은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했다. 그는 “여성들이 성폭력, 몰카 걱정 없이 안전하게 교육받을 수 있으며 ‘여대생’이 아닌 ‘대학생’으로서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여자대학”이라며 “공학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누구보다 앞장서 여성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해야 할 대학본부가 학생들의 인권에 단 한 톨의 관심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다른 이는 대자보에서 “아시아 최초로 여성이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남편과의 일화가 먼저 언급되고 노벨문학상 ‘정도’는 별거 아닌 상이 돼버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며 “딥페이크 성범죄, 수많은 여성 혐오 범죄는 일상다반사라 무딘 반응이면서,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보기만 해도 벌벌 떠는 모습을 보이는 사회”라고 했다. 그는 “나는 이런 사회에서 어디서 누워 자도 안전한,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에 대해 큰 소리로 말해도 어떤 위협이 가해지지 않을 ‘여자대학교’라는 공간에서 ‘정신 교육 당하며’ 페미니즘만 배운 게 아니다”라며 “우리 사회가 어떤 논의를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다”고 했다.

동덕여대 17학번 졸업생은 대자보에서 “나는 이곳 동덕에서 많이 바뀌었다. 여성학 수업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되고, 여성을 알게 됐으며, 무엇보다 나는 나를, 평생 여자임을 거부하고 싶었던 여성으로서의 나를 알게 됐다”며 “그것은 이곳 동덕이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성에게 열린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한 동덕여대 학생(21)은 기자와 만나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논의하고 교육청이 성평등 도서를 폐기하는 상황에서 여성학 교수가 있고, 여성학에 대해 학문적 논의를 하고, 여성이 주체적으로 이 사회에 설 수 있는 지식을 배우는 곳은 오직 여대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적어도 여대에서는 여성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표출할 수 있다. 전혀 눈치 볼 게 없다”며 “한국에서 여대가 없어지면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여성으로서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여대는 여성 인권의 마지노선”이라고 했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위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젠더 격차 지수는 전체 146개 국가 중 하위권인 105위였다.

지난 11월 19일 서울시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동덕여대 졸업생이 남녀 공학 전환에 반대하며 쓴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혜리 기자

지난 11월 19일 서울시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동덕여대 졸업생이 남녀 공학 전환에 반대하며 쓴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혜리 기자

지난 11월 20일 서울시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남녀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혜리 기자

지난 11월 20일 서울시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남녀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혜리 기자

젠더 갈등·폭력 시위 프레임에 본질 사라져

지난 11월 19~20일 기자가 방문한 동덕여대는 대자보로 캠퍼스 전체가 뒤덮여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상당수 학생은 기자와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학생들은 “개별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말이 잘못 나갈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저항이 알려진 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혐오가 들끓고 ‘폭력 시위’라는 프레임이 언론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여성주의 단체인 신남성연대는 “동덕 폭도”라는 단어를 쓰며 학생들 신상을 특정하겠다고 나섰다. 일부 누리꾼은 “취업길 막혔다”, “페미대는 회사에서 안 뽑는다” 등의 혐오 댓글을 쓰고, 칼부림 예고 글을 올리는 등 동덕여대 학생들을 겨냥한 조롱, 비난, 공격을 이어갔다. 여기엔 ‘한국은 이미 성평등한 사회다’, ‘남성이 역차별 당한다’는 논리와, ‘입결(입시 결과)’을 기준으로 한 대학 줄 세우기가 뒤따른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덕여대 시위를 가리켜 “그저 비문명일 뿐”이라는 글을 올려 불을 지폈다. 학교 측이 폭력 사태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히면서 언론엔 ‘폭력 시위’를 앞세운 기사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지난 11월 20일 성명을 내고 “의사결정 구조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학생들의 분노와 표출된 의사 표현을 두고 폭력 세력으로 낙인찍는 태도는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라며 “개혁신당은 여대에 대한 훈수를 멈추라”고 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반응은 ‘페미니즘 리부트(재부흥)’에 대한 ‘백래시(반격)’와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6년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 살인 사건, 2018년 미투 운동 등을 거치며 젠더와 여성 인권 신장이 사회이슈로 부각된 반면 페미니스트 낙인찍기, SNS 댓글 테러 등의 백래시도 나타났다. 남녀 공학 대학에선 ‘총여학생회 폐지’가 백래시로 나타났는데, 동덕여대 사태를 기화로 ‘여대 무용론’으로 강화됐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필진 송유진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의 경쟁력 확보, 페미니즘을 향한 백래시, 여대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에 대한 무지가 더해져 지금의 상황이 발생한 것 같다”며 “폭력 시위 프레임이 붙고, 페미니스트 여자들을 혼내주기 위해 그들의 공간을 침범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아직도 여성 혐오가 팽배한 사회라는 것, 여대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지난 11월 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여성 혐오와 여자대학, 그 변화의 시작’ 토론회에서도 권김현영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은 “여성 혐오와 페미니스트 혐오라는 백래시가 같이 만난 게 요즘의 여대 혐오의 특징”이라며 “‘여대에 안 가겠다’는 말이 예전에는 남녀 공학에서 더 많은 기회를 쌓고 싶다는 소망이었다면, 요즘에는 ‘여대 낙인’에 대한 우려로 드러난다”고 했다.

지난 11월 20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이 모여 학생총회를 열고 남녀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 11월 20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이 모여 학생총회를 열고 남녀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 11월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 앞에 남녀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의미의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 11월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 앞에 남녀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의미의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성동훈 기자

여대 정체성과 미래 제대로 논의 시작해야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은 1886년 설립된 이화학당이다. 1910년 대학과 설립, 1946년 종합대학 인가로 지금의 이화여대가 됐다. 여성은 교육받을 필요 없는 존재로 여겨진 과거에서 벗어나 여성에게 평등한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주체적인 여성을 양성하는 게 목적이었다. 2000년대 들어 입시·취업을 중심으로 한 대학 서열화가 심해지고 양성평등이 제도화되면서 ‘여대가 경쟁력이 있느냐’, ‘여대가 왜 필요하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낮은 출생률과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 남녀 공학으로 전환(상명대)하거나, 전환을 시도했다가 학생들 반대로 철회(덕성여대·성신여대)한 사례가 나왔다. 현재 7개 여대가 남아 있다. 계속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대란 무엇인지’, ‘여대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여대에선 학생회·동아리 등 학생 자치단체 활동, 수업에 여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더 여성 친화적이고 평등한 교육환경이 조성되며, 여성들의 연대도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대 학생들이 공학 학생들보다 성차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취업하지 않는 것보다 취업하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도 있다. 권김 위원은 “남녀 공학으로 전환된 학교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살펴본 연구를 보면 모든 리더십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고, 여학생들이 교수에게 질문하는 빈도가 줄어들거나 진로 탐색 기회가 하락한 것이 나타난다”며 “여학생이 남녀 공학에서 네트워크가 확장되기보다 배제에 시달리는 점도 드러난다”고 했다. 미국엔 ‘세븐 시스터즈’로 불리는 여자대학, 흑인교육을 위해 설립된 흑인대학들이 있다.

여대들이 ‘서열 경쟁’, ‘입결(입시 결과) 경쟁’에 대한 몰두에서 벗어나 서로 연대하며 남녀 공학과 차별화되는 정체성과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존폐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도 토론회에서 나왔다. 나임윤경 연세대 인류문화학과 교수는 이화여대의 역할과 여대들의 연대를 언급했다. 나임 교수는 “이화여대가 여대라는 기표를 선점하고 있다”며 “한국사회에서 통제 불가능한 여성이라고 할 때 과연 다른 여대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느냐”고 했다. 나임 교수는 “이화여대 학생들은 다른 여대와 함께 여대라는 기표 아래 우산을 쓸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왜 여기(토론회)에 있는가”라며 “이화여대, 숙명여대는 리딩 유니버시티(선도적인 대학)로서의 역할은 없는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동덕여대 사태에 대해 이화여대의 총학생회나 단과대학 학생회 등 학생 자치단체들은 공식적으로 지지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른 여대의 수십개 자치단체가 집단으로 지지 성명을 낸 것과 대조된다.

지난 11월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남녀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구호가 쓰여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 11월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남녀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구호가 쓰여있다. 성동훈 기자

여대의 교육 대상을 ‘생물학적 여성’에 국한할 것인지는 남은 문제다. 2020년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학생이 논란 끝에 입학을 포기한 사건이 벌어졌다.

여대에 재학하거나 졸업한 22명의 트랜스젠더퀴어를 인터뷰한 김유진씨는 지난해 논문에서 “여자대학은 단지 성별이 분리된 공간이라는 협소한 방식으로 의미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원화된 성별 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여성되기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방식으로 의미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저항적이고 대안적인 공간으로서의 여자대학이 지닌 역량은 그 내부 구성원들이 모두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여성 공간 내부의 차이와 권력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오는 차별과 억압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김은실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토론회에서 “여대는 ‘누가 여자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도전을 받아왔고, 여성은 다양한 범주를 포함하는 개념이 되고 있다”며 “포용적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식의 인프라가 있어야 하고, 그 인프라에 대한 토론과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동덕여대 학생은 대자보에 이렇게 썼다.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가장 지속가능한 방법을 선택하십시오. 출산율 저하로 인한 신입생 수 급감, 그 해결책이 단순히 공학 전환입니까? 잠시 신입생 수를 늘릴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후에는요? 공학 간의 경쟁 속에서 생존을 어떻게 도모할 겁니까? 시설을 새로 짓고, 국가지원금을 받아 운영을 연명하겠지만, 미래 학생들이 신뢰할 수 없는 학교에 과연 지원할까요?” 여대, 그리고 성평등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소멸하지 않는 방법을 제대로 고민하자는 게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이라는 의미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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