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한 것이 기정사실로 되면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얼마 전,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상황에 따라 소규모 병력을 군사참관단의 형태로 우크라이나 진영에 보낼 수 있고, 규정에 따라 국회의 동의는 필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과 법률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파병을 허용하지 않으나, 국방부가 자체 제정한 훈령에는 군사참관단 등 ‘개인 단위 파병’은 장관의 결심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상위규범인 헌법에 반한다는 점에서 국방부의 파병 훈령이나 김 장관의 발상은 그 자체로 위헌적이다.
규모와 관계없이 한국의 파병은 북한의 의도를 100% 완성해주는 일이다. 북한이 만든 위험한 판에 함부로 발을 들이는 일, 그 중차대한 일을 정권의 몇 안 되는 이들이 함부로 결정해서 되겠는가?
파병 결정권을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의 동의 영역에 두는 이유는 분명하다. 타국에 대한 군사 개입이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물자를 지원하며 침략 전쟁을 규탄하는 것과 우크라이나 진영에 군인을 파견해 전쟁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전제부터 다른 문제다. 소위 군사참관단이 구성된다면 이들은 무엇을 하러 가는 존재인가? 북한군의 동태를 살피러 가는 것인가? 혹은 러시아와 북한의 합동 작전을 정탐하러 가는 것인가? 아니면 과연 현대전 양상을 연구하러 가는 것인가? 아마 정부에는 다양한 명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만에 하나 전장에 간 참관단이 불의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면 전사인가, 순직인가? 전투 중에 사망한 것인가, 일반 직무 수행 중에 사망한 것인가? 전사자로 예우하면 우리 군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 참전한 것이 된다. 반면 전장에서 숨진 군인을 순직자로 분류하면 그걸 이해해줄 유족과 국민 역시 없을 것이다. 하여 사상자 예우 문제는 군사참관단의 지위와 성격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된다.
윤석열 정부가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할 준비가 돼 있는 상태로 ‘소규모 파병’을 입에 올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군인이 전장에 가는 건 ‘참전’이다. 러시아와 북한은 올해 6월, 군사동맹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북한과 우크라이나가 적성국가 관계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이 러시아에 군대를 보낸 순간 북한은 우크라이나의 적이 됐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물자를 지원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참관단을 보내면 사정이 달라진다. 러-북과 한-우는 분명한 적대관계에 접어든다.
모든 관계에는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다. 이 적대관계의 주도자는 명백하게 북한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으로 파병하는 게 아니다. 그랬다면 일찌감치 파병했을 것이다. 대신 손이 아쉬울 때를 기다렸다가 러시아를 상대로 채권자가 될 기회를 얻었다. 고립된 북한은 자국민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동북아 구도의 완벽한 블록화, 선택의 여지 없는 뒷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규모와 관계없이 한국의 파병은 북한의 의도를 100% 완성해주는 일이다. 북한이 만든 위험한 판에 함부로 발을 들이는 일, 그 중차대한 일을 정권의 몇 안 되는 이들이 함부로 결정해서 되겠는가?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