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남 쓰레기 풍선(추정)을 부양 중에 있음. 낙하물에 주의하시고, 발견 시 접촉하지 마시고 군부대나 경찰서로 신고 바랍니다.”
수도권 주민들은 올해 10월 들어서만 7번(10월 24일 기준) 이 같은 내용의 안전안내문자를 받았다. 북한의 오물 풍선 부양은 시도 때도 없이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요란하게 울렸다. 10월 11일에는 자정에, 10월 7일과 8일에는 새벽 5시에 안전안내문자가 발송됐다. 지난 5월 북에서부터 남한 전역으로 퍼지면서 시민들이 처음 목격한 하얀 오물 풍선은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일깨웠다. “그만 보내라”고 말려도 소용없는 상대가 지척에 있고 그들이 우리의 일상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도 재확인했다. 그러나 적잖은 이들은 이내 충격을 잊었고, 그 빈자리는 밤잠을 방해하는 안전문자에 대한 짜증이 대신했다. 이미 지난 9월에만 9차례, 5~8월 사이에는 10여차례 같은 문자가 발송됐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시민은 그렇게 충격과 불안에 무뎌진 듯 보였다.
여전히 불안과 고통 속에 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북한 땅을 마주 보고 사는 접경지역 주민들이다. 북한은 지난 7월 말부터 접경지역에서 대남 확성기 방송(이하 대남방송)을 시작했다. 우리 군이 오물풍선에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하자 북한도 바로 맞대응했다. 북한의 이번 대남방송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북한은 체제를 선전하고 남한 지도자를 비방하는 말이나 노래가 아니라 굉음을 퍼뜨렸다. 어떤 날은 사이렌 소리가, 어떤 날은 늑대 울음소리가 마을 구석구석을 울렸다. 오랜 시간 북한과 살을 맞대고 살면서 북한의 위협이 삶의 일부가 된 접경지역 주민들도 “이렇게 힘든 건 처음 겪어본다”며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다. 24시간 내내 귓가를 맴도는 소음에 한반도 어딘가에서는 일상의 평화가 깨졌다.
귀신이 우는 소리? 접경 지역에서 들리는 북한의 대남방송
접경지역 주민들을 더욱 암담하게 하는 것은 이 소음 공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소음 공격을 하는 북한을 상대로 “쫓아가서 모가지를 자를 수도 없고(강화군 당산리 80대 주민)”, “데모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파주시 대성동마을 주민)”, “우리 대통령이 와서 하지 말란다고 들을 것도 아니(당산리 60대 주민)”라는 것을 알고 있다. 주민들이 기대할 것은 한국 정부의 조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한 심리전을 지속할 뜻을 분명히 밝혔고, 북한은 심리전이 지속하는 한 보복 대응 수위를 높여갈 것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체제와 사회 발전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결국면에서는 거울처럼 행동하는 남북 정권으로 인해 접경지역 주민들은 불안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와 경기 파주시 장단면 대성동마을 주민들을 만나봤다. 이들이 직면한 현실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국가안보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가. 과연 한반도는 평화 상태인가. 이들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강남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도 이럴 건가요”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 사는 안미희씨(37)는 밤마다 수면제를 먹고 있다. 지난 7월 말부터 마을 안팎에 울리기 시작한 북한발 괴소음에 수면장애가 생겼다. 날마다 소리가 달라지니 괴소음이라 할 수밖에 없다. 어떤 날은 전투기가 추락하는 듯한 굉음이, 어떤 날은 쇠를 깎는 듯한 금속성이 난다. 어떤 때는 납량특집으로 유명했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깔릴 법한 음산한 소음이나 까마귀 우는 소리, 귀곡성이 들린다. 이 소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짧게는 20시간, 길게는 24시간 내내 울린다. 그렇게 3개월, 안씨는 수면장애와 두통을 앓게 됐다. 안씨는 “예전에도 대남방송이 들렸지만 지금 같은 적은 없었어요. 지금처럼 24시간 잠 못 자게 하지 않았고 그래도 오후 6시가 되면 껐어요. 내용이야 대한민국 비판하는 거지만 그래도 사람 말소리가 나고 노래가 나왔어요. 이런 건 처음이에요”라고 했다.
더 괴로운 건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이다. 안씨는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새벽에 소음에 깨서 저희 방에 와요. 달래서 재워보려고 해도 뒤척이고. 계속 피곤해하더니 구내염이 엄청나게 크게 났어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은 새벽 3~4시까지 못 잤다고 하는 날도 있어요. 아이들이 너무 괴로워하는데 부모가 아무것도 못 하고 바라만 봐야 해요”라고 했다.
말과 달리 그는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다 했다. 고령층이 대부분인 마을 주민들을 대신해 강화군과 인천시에 마을의 소음피해를 알렸고, 대통령실과 통일부, 국민 신문고를 통해 민원도 제기했다. 10·16 강화군수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이 강화도를 방문할 때마다 직장을 쉬고 유세현장을 찾아갔다. 안씨는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어요. 정치하시는 분들이 왔을 때 ‘강남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도 이렇게 할 거냐’고 ‘시골이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데니까 이러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어요. 3개월 넘게 개선되는 건 하나도 없고 기다리라는 말뿐이에요”라고 했다.
150가구가 사는 당산리는 서해 최접경지다. 북한 땅과 가장 가까운 곳은 그 거리가 1.7㎞에 불과하다. 지난 7월 한국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하자 북한은 휴전선 일대 전 지역에서 대남방송을 재개했다. 당산리는 유독 피해가 심한 지역 중 하나였다. 남북 사이에 산지 등 장애물이 없어 소리가 그대로 마을로 쏟아졌다. 강화군에 따르면 인천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지난 10월 16일부터 이튿날까지 12시간 동안 소음을 측정했을 때, 당산리의 소음 수준은 80데시벨(㏈)로 나타났다. 철로 변이나 지하철 차내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80㏈ 정도로 본다. 환경보건종합정보시스템의 소음 기준을 보면 50㏈부터 일상생활에 영향이 발생한다. 80㏈부터는 청력 장애가 시작될 수 있다.
지난 10월 16일 취재를 위해 당산리에 도착하자마자 소음이 귓전을 울렸다. 이날 소음은 사이렌 소리에 ‘웅웅’ 소리가 더해진 것이었는데 당산리에 머무는 6시간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소음이 멈춰 안도하는 것도 잠시,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80대 여성 이모씨는 북한의 대남방송이 시작된 이후 집안의 창문을 두꺼운 유리창으로 바꿨다. 그런데도 소음은 여전하고 잠 못 이루는 나날도 계속되고 있다. 이씨는 “초저녁에나 좀 자고 그다음엔 잠을 못 자. 소리 들려서 깨면 엎어졌다, 앉았다 난리를 피워. 통 못 자서 몸이 축나니까 며칠 전에는 병원 가서 수액도 맞고 왔어”라고 했다. 주민 박혜숙씨(75)는 “여기서 못산다는 소리가 나와요. 전부 야단인데 동네에서 사슴 새끼 1마리, 염소 새끼 2마리가 사산됐어요. 오죽하면 개가 자기 집에서 안 나와서 비쩍 말랐어요”라고 했다.
이날 집 앞마당에서 화문석을 만드는 데 쓸 왕골을 말리고 있던 70대 A씨는 정부의 대처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A씨의 집은 오래된 주택으로 창호지를 바른 전통 창을 쓴다. 집안에서 창을 다 닫고 있어도 소음이 크게 들리자 A씨 부부는 한동안 두께 100㎜ 스티로폼을 창틀에 붙인 채 생활하기도 했다. A씨는 “북한이 언제 그만할지는 모르는 거지만, 대한민국 사람이 풍선 보내는 건 (정부가) 말릴 수 있는 거 아니냐. 정부 사람들이 여기 와서 하루라도 살아봐야 한다. 이걸 귀담아들어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냐. 이주를 시켜 주든지, 북한하고 담판을 짓든지 해야지 정부가 뒷짐만 지고… 참 이상한 정부”라고 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이 정부에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먼저 멈추는 것”이다. 지난 5월 10일 탈북단체가 강화도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자 북한은 5월 28일부터 오물과 휴짓조각, 분뇨 등이 담긴 오물풍선을 남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직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우리가 저들이 늘쌍 하던 일을 좀 해보았는데 왜 불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야단을 떠는지 모를 일”이라며 “한국 것들이 우리에게 살포하는 오물량의 몇십 배로 건당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군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 7월 대북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소음을 틀기 시작했다.
북한이 대북전단을 소음 공격의 명분으로 삼으니 ‘대북전단 살포를 일시적으로라도 멈춰 보자’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당산리 이장 안효철씨(65)는 “북한에 대고 파업해서 해결할 수 있으면 파업이라도 하겠다. 그게 안 되지 않나. 짧은 소견이지만 한 달이라도 좋으니 우리가 먼저 방송하지 말고, 삐라 뿌리지 말아 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계속가는 건 ‘(접경) 사는 사람 몇 명 안 되는데 희생해라’라는 말밖에 안 된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시 주민들의 바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주에는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쪽에 조성된 마을이 세 곳 있다. 장단면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군내면 통일촌, 진동면 해마루촌이다. 이완배 통일촌 이장은 지난 10월 18일 임진각 내 민방위대피소에서 열린 파주시청 주민간담회에서 “탈북자 단체에서 대북전단을 배포하면서 남북한 대결 구도가 격화되고 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본다. 잠을 못 자고 생활해야 한다. 나라가 왜 있냐.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나라인데.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북한으로 전단지 뿌린다면 우리 주민들이 가서 몸으로 막을 거다”라고 했다. 또 다른 주민도 이날 간담회에서 “지금도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며 “우리 쪽에서도 자제하고 북한에서도 자제하면 살기 좋을 텐데, 자꾸 ‘강 대 강’만 되는 게 아쉽다”고 했다.
헌재 결정 뒤에 숨은 정부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통일부가 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에 위헌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해당 법 조항이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입법 취지는 정당하다고 봤다. 그러나 법 위반 시 최후수단인 형벌을 동원한 점, 제한되는 표현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점 등을 들어 위헌 결정을 내리고 전단살포의 사전 신고, 경찰의 직접 제지 등을 담은 입법 보완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보완 입법을 하지 않았고, 이는 정부가 헌재 결정 뒤에 숨어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에 뒷짐만 지고 있는 게 아니다. 실상은 대북전단 살포를 격려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은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대’를 강조한다.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단체는 정부로부터 국고보조금도 지원받고 있다. 김영호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에 접근하고 외부 세계를 알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대북전단 살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평화보다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북한 내부붕괴론’에 입각한 자유 통일에 정부 정책의 방점이 찍혀 있는 셈이다.
상황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북한은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 10월 15일 경의선·동해선 도로를 폭파했다. 접경지역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폭파 당일 도라산전망대 등 민통성 안쪽의 안보관광지가 폐쇄됐다. 파주 문산읍 마정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윤설현씨(57)는 10월 15일 “오늘만 해도 대만에서 한 가족이 입실하기로 했는데 아침에 도라산전망대 가는 여행코스가 취소되면서 숙소 예약도 취소했다. 생계도 생계지만 이제는 생존 문제 같다. 긴장이 고조되니까 밤에 전술 차량 이동하는 소리가 들리면 ‘뭔 일 났나’ 싶다”고 했다. 민통선 안쪽에서 농사를 짓는 박해연씨(65)도 북한의 폭파 당일 일시적인 출입 통제를 받았다. 박씨는 “접경지역 주민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이나, 자영업자들이나 다 영향받는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하면서 올랐던 땅값 다 떨어졌다. 마을 식당에 군에 있는 젊은 친구들이 와서 얘기 나눴는데 전방에는 완전 무장하고 준비하고 있었다더라. (정부는) 왜 (대북전단) 뿌리게 놔두는 거냐. 왜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냐”고 했다.
정부의 뒷배는 무관심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2018)은 낡은 트럭을 모는 청년 종수가 사는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와 포르셰를 타는 청년 벤이 사는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종수의 집인 만우리에서는 때때로 대남방송이 들린다. 벤은 종수의 집을 찾았다가 들려오는 대남방송 소리에 “아, 재밌네”라고 말한다.
다수 시민이 접경지역 주민들만큼 불안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점이 어쩌면 우리가 당면한 더 큰 문제일지 모른다. 정부가 접경지역 주민들의 고통에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파주 장단면 대성동마을에 사는 유점순씨(69)는 지난 10월 18일 파주시장과의 간담회에서 그간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사람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 민통선 안쪽의 대성동마을은 논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기정동과 마주 보고 있는데, 마을 제일 앞줄의 집들은 북한 땅과의 거리가 채 500m도 되지 않는다. 북한은 7월부터 소음 방송을 하더니, 지난 9월 28일부터는 소음을 더 높여 대성동마을 쪽을 향하는 방송을 시작했다. 마을의 일부 지점에서는 한국군이 대북방송으로 송출하는 K팝과 대남방송의 소음이 뒤섞이기도 한다. 비공식 측정에서는 70~100㏈이 나왔다고 마을 주민들은 전했다. 유씨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다, 귀마개를 끼기 시작했는데 20일이 넘어가자 귀에 염증이 생겼다. 유씨는 “제가 진짜 몸이 아파요. 머리에서 계속 그 소리가 나요. 사람이 일하고 저녁에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을 못 자니까 어서 날 밝기만 바라고 있어요. 저녁이 오는 게 무섭습니다. 잠잘 곳만이라도 만들어 주세요”라고 했다.
유씨는 요즘 간담회에서 했던 말들을 후회하고 있다. 그의 발언을 다룬 기사에 달린 수백건의 댓글 때문이다. ‘귀 며칠 막았다고 염증 생기나, X소리’, ‘돈 달라는 소리 뻔하네’, ‘김정은이 틀었으니 김정은한테 따져라’, ‘누가 거기 살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 ‘2번 찍었으니 자업자득’ 등 가시 돋친 말들이 태반이었다. 이념과 정치색, 뿌리 깊은 안보 불안에서 비롯된 안보 불감증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피해 호소마저 왜곡한다.
유씨는 “제가 50년 동안 (대남방송을) 들었어도 이 소리는 너무 아프다고, 내가 죽겠어서 살려달라고 한 거였는데 그게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가요? 북한이 정상적이면 거기 대고 얘기했겠죠. 대화도 통하지 않는 사람한테 뭘 어쩌고저쩌고 하겠어요. 그러면 저희는 어디다 대고 뭘 얘기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도 우릴 버리진 않겠지, 좋아지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