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촌 여성들 강제 수용한 동두천시 성병관리소
역사 보존 아닌 철거 시도에 시민들이 50일 넘게 농성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8번지.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소요산역에서 불과 400m 떨어진 이곳엔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라고 불리는 2층짜리 건물이 있다. 수풀로 뒤덮이고 팻말도 없어 멀리서는 이 건물이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그런 곳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동두천시에 성병관리소 건물이 남아 있다.
성병관리소는 1960~1990년대 한국 정부가 미군과 기지촌 여성들의 성매매를 조장·방조하면서 성병 치료 명목으로 여성들을 강제 수용하던 장소다. 한국전쟁 이후의 남북 분단, 가난 속에서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과 국가안보를 앞세워 여성들을 착취했다. 2022년 9월 대법원은 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에게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처음 인정하고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성병관리소 건물은 지금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동두천시는 ‘흉물을 없애고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설명한다. 시민들은 “국가 폭력으로 여성 인권이 침해된 역사적·상징적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며 철거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50일 넘게 천막 농성을 하고, 건물을 부수러 온 굴착기를 몸으로 막으며 싸우고 있다. 지난 10월 13~14일 현장을 찾아 시민들을 만났다.
한·미 동맹 위해 희생된 여성들
동두천시 성병관리소는 1973년부터 1996년까지 운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 이후 30년 가까이 방치됐다가 지난해 2월 동두천시가 성병관리소 건물·부지를 매입해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철거 논란이 불거졌다.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경관을 저해하고 흉물로 방치돼온 폐건물에 대한 주민 민원을 해소하고, 관광객들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소요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이 지난해 4월 철거 반대를 표명했고, 이어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만들어졌다. 공대위 시민들은 토론회를 열고 동두천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지난 8월 25일부터는 시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24시간 농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동두천시는 철거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시의회는 철거를 위한 추경예산을 의결했다. 공대위는 지난 9월 18일부터 성병관리소 바로 앞 길목에 천막과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다. 철거를 막기 위해 밤낮으로 순번을 정해 자리를 지킨다.
왜 성병관리소를 보존해야 할까. 최희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활동가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와서 만들어진 이 동네에서 한국의 여성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하고 역사적인 장소”라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한 동두천, 의정부, 파주 등지에는 미군을 상대로 한 상업지구, 이른바 ‘기지촌’이 형성됐다. 한국 정부는 법적으로는 성매매를 금지했지만 실제로는 허용·조장·관리했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유엔군사령부가 서울로 이전할 무렵인 1957년 한국 정부는 전국에 미군 위안시설을 지정해 위안부들을 집결시키며 성병을 관리하기로 했다.
정부는 1961년 윤락행위방지법을 만들어 성매매를 강하게 금지하면서도, 이듬해 성매매 영업이 가능한 ‘특정지역’을 설치·관리했다. 박정미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논문을 보면 1963년 전국의 특정지역에 등록된 위안부는 1만3947명이나 됐다. 이중 75%인 1만1044명이 경기도 거주자였다.
공무원들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며 위안부들을 치켜세우는 한편, 성병 관리라는 명분으로 강제 연행했다. 경찰과 보건소, 미군이 합동 단속을 벌여 검진증 없는 여성을 잡아가는 ‘토벌’, 성병에 걸린 미군이 자신과 성매매한 여성을 지목하는 ‘컨택(추적조사)’과 같이 폭력적인 방식이 행해졌다. 그렇게 여성들이 끌려간 곳이 바로 성병관리소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도 없었지만 여성들은 곧바로 격리됐고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
이런 정책은 ‘한·미동맹’, ‘국가안보’, ‘외화벌이’ 때문이었다. 법원 판결 내용이다. “위법한 성병 치료가 행해진 데에는 (정부가) 원고(위안부)들을 국가안보나 외화 획득에 활용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즉 외국군들이 성매매 과정에서 성병에 걸려 건강이나 사기가 저하되면 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안보 또는 성매매 활성화를 통한 외화 획득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위안부들의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이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등한시한 채 성병 근절과 감소에만 치중했다.”
굴착기 진입 시도 시민들이 저지
공대위는 국가가 참혹하게 여성을 착취한 현장인 성병관리소를 보존해 문화·교육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상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를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리즘’의 일환이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 미국의 그라운드 제로가 다크 투어리즘의 예로 꼽힌다. 한국에선 일제가 독립투사를 가둔 감옥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있다. 아픈 역사지만 옥사 원형과 투사들의 자료를 전시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 최 활동가는 “동두천시가 오랜 시간 군사도시로 있으면서 서로를 갈라놓고, 가부장적인 정서가 많다”며 “성병관리소를 잘 보존하고 가꾸면 평화·치유·위로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동두천시가 철거를 강행하면서 굴착기와 이를 막는 공대위 간 충돌이 벌어졌다. 지난 10월 8일 굴착기가 농성장 쪽으로 진입하면서 공대위 시민들과 대치했다. 일요일인 지난 10월 13일엔 오전 4시쯤 농성장의 반대쪽으로 굴착기가 진입을 시도했다. 공대위 시민들이 급하게 현장으로 달려갔고, 온몸으로 굴착기를 막으며 옥신각신하다 겨우 세웠다. 이날 기자와 만난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일요일 새벽에 포클레인(굴착기)이 들어올 줄은 전혀 몰랐다”며 “역사적 아픔인 성병관리소를 보존해야 다음 세대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무릅쓰고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성병관리소 건물은 군데군데가 낡고 부서졌지만, 위안부 여성들이 수용됐던 2층 창문의 쇠창살은 여전히 단단한 모습이었다. 진료실, 식당이 있는 1층은 홑창이지만 2층은 겹창으로 돼 있었다. 여성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든 장치다. 이곳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옥상에서 떨어져 다치는 여성도 있었다고 한다. 쇠창살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여성을 표현한 듯 성병관리소는 ‘몽키하우스’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방 7개에 20명씩 총 140명이 수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0월 13일 오후 6시 넘어 농성장에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굿을 한 만신 이지녀씨와 임진강 풍물패의 문화제가 열렸다.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씨는 성병관리소에서 희생된 여성들을 추모하는 치성을 올렸다. 시민들이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렸다. 이씨가 읊었다. “국가 폭력으로 한이 맺히고, 원이 맺혀서 가신 영혼이여. 오늘 다 모여서 한 풀고, 원 풀고 가시오. (…) 저 여성들, 남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족이요, 이웃이요, 언니요, 할머니요.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한 것이지. 미군의 성 노리개로, 달러벌이로. 외화벌이하는 게 민족을 위해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저들의 속엔 아직도 반성이 없습니다. 이 역사의 현장에 우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분들의 한을 풀고, 원을 풀어야 우리도 편하게 살지 않겠어요.”
자신을 재미교포라고 소개한 한 여성 청년은 “한국계 미국인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지촌 여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문화제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다른 여성 청년은 “국가 폭력에 의한 상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마음 아프다”라며 “이 참상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밤이 깊어지자 시민들은 농성장의 텐트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은 거의 잘 수 없는 환경이었다. 조금만 큰소리가 들리면 ‘혹시 굴착기인가’ 싶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던 것이다. 날이 밝고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오늘 굴착기가 올 것인가, 안 올 것인가’ 토론이 이어졌는데 이날 굴착기는 오지 않았다.
동두천시는 “철거 입장 변동 없어”
미군 위안부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국가 배상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공식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미군은 여전히 한국에 주둔하고 있고, 계속되는 한·미동맹과 국가안보의 강조 속에서 미군 위안부 문제가 주목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대적·구조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돈벌이로 성매매를 했다며 여성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낙인·차별의 시선도 있다.
동두천시 성병관리소가 철거 위기인 것에 더해 동두천시 상패동에 있는 무연고 기지촌 여성들의 공동묘지도 정리 절차를 밟고 있다. 이름도, 가족도 없는 기지촌 여성들의 시신이 묻힌 비극적 역사의 공간이지만 동두천시는 여기에 ‘근린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해보니 ‘분묘 연고자는 신고하라’는 팻말만 곳곳에 꽂혀 있었다. 기지촌 여성들의 쉼터인 의정부시의 두레방은 시로부터 퇴거 통보를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는 보호·지원을 위한 법이 있어 정부가 실태조사와 역사교육을 시행하지만, 미군 위안부는 법이 없다. 19·20·21대 국회 때 법안이 발의됐지만 족족 폐기됐다.
성병관리소 철거 반대 농성을 하는 안김정애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상임대표는 “미군 위안부는 한·미동맹,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생명, 인권, 존엄성을 억압한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과 환상, 한·미동맹과 불평등이라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병관리소는 국민의 생명·존엄을 보장해야 할 국가가 그것을 내팽개치고 ‘위안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해도 좋다’는 식의 제물로 삼은 것”이라며 “최근 딥페이크 논란과 같은 폭력의 뿌리도 이런 가부장 사회, 군사주의에 있다는 점에서 성병관리소 보존은 자라나는 세대,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경기도와 국회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경기도는 2020년 5월 전국 최초로 기지촌 여성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간담회에서 “이제라도 국가기관에 의한 방조·조장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고, 피해 실상이나 객관적 실태들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공대위는 성병관리소를 경기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고 주장한다.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 정도만 철거 중단 촉구 성명을 냈다.
지난 10월 14일 오전 9시쯤 공대위 시민들은 동두천시청으로 가 박형덕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박 시장을 만나지는 못했다. 동두천시 전체면적의 40% 이상을 차지하던 미군이 평택으로 빠져나간 뒤 지역경제가 침체한 상황에서 성병관리소 문제는 시민 간 충돌로 비화하기도 한다. 이날 한 고령의 시민은 공대위를 향해 “너희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개발을 한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따졌다. 다른 시민은 “어르신들이 근대화의 역군인데, 이분들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위안부는) 득과 실이 있었다”고 했다. ‘동두천시 지역발전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성병관리소가 그렇게 좋으면 너의 별장 앞에다 보존하라”는 플래카드를 길에 내걸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개발·발전이란 무엇인지가 성병관리소 문제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공교롭게도 동두천시 성병관리소 철거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한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서 터져 나왔다. 지난 9월 2일 한 시민이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미군 위안부 기지촌에 대한 국가의 사과 촉구와 동두천시 기지촌 성병관리소 철거 반대’ 글을 올렸다. 그러자 엑스(X·구 트위터)에선 청원 동의 독려 운동이 벌어졌다. 민주당·국민의힘 등 각 정당에 철거 반대를 촉구하는 ‘문자 총공’, 굴착기 진입 상황을 언론에 알려 달라는 ‘제보 총공’이 이어졌다. 청원 글은 5만3414명 동의를 달성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회부됐다. 성병관리소는 보존될 수 있을까. 동두천시는 ‘철거 입장에 변동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