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함께가는병원’ 서비스···암 생존자에게 ‘병원 동행 매니저’ 일자리 제공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국립암센터는 지난 8월 21일 사회적경제기업 ‘박피디와황배우’와 협력해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지원을 받아 ‘함께가는병원’ 서비스를 시작했다. 병원 동행 매니저가 보호자가 없거나 돌봄이 필요한 환자의 병원 통원 및 진료·검사 등을 지원한다. 현재 각 지자체가 ‘일상돌봄서비스’ 안에서 지원하는 병원 동행 서비스와 유사하다. 다만 함께가는병원은 의료기관을 구심점으로 ‘암 생존자’가 동행 매니저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암 생존자에게는 일자리를, 암 환자에게 병원 동행 돌봄을 제공하는 ‘둘 모두에 좋은 서비스’를 지향한다.
지난 8월 27일 국립암센터 근처 한 카페에서 병원 동행 매니저로 활동을 시작한 박상기씨(52)와 이 서비스를 기획한 황서윤 박피디와황배우 대표를 만났다. 박씨는 3년 전 난소암을 진단받고 항암 치료를 포함한 투병생활을 마친 후 현재 치료 경과를 추적 관찰 중이다. 황 대표는 8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고 투병생활을 거친 암 생존자다.
■“암 생존자, 암 환자 모두에 이점”
함께가는병원 서비스는 국립암센터 공공의료사업팀이 추진하는 암 환자 및 암 생존자 대상 프로그램 중 하나다. 국립암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박씨는 암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병원 동행 매니저를 양성한다는 걸 알았을 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는 수술을 두 번 하면서 병원에 입원한 기간이 좀 길었는데 당시 간호간병통합병동이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정말 힘들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희 부모님도 병원 갈 때 형제 중 누군가 안 가면 너무 어려워하시는데,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을 동행 매니저가 도와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제가 할 수 있다면 보람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박상기씨)
‘일의 보람’은 사회 복귀의 다른 말이었다. 암 치료 특성상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암 환자는 사회와 단절되기 쉽고, 치료를 끝내고 완치 진단을 받은 후에도 일자리를 얻는 것이 어렵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박씨는 “막상 병원 생활을 할 때는 미래를 잘 생각하지 못했는데 점점 ‘내가 사회에 나가서 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황 대표는 “암 환자들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한 번, 사회로 복귀할 때 또 한 번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아직 사람들의 인식에서 암 환자였다고 하면 그 사람은 되게 약할 것이고, 일을 시키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암 생존자들은 병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병원 동선도 알고 치료 과정도 알고, 그 마음까지도 알고요. 동행 매니저로서 어떻게 보면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죠.”(황서윤 대표)
국립암센터의 병원 동행 매니저 1기는 7명이 활동을 시작했고 2기 15명은 교육을 받는 중이다. 활동 전 8시간가량 전문교육을 받는다. 국립암센터가 의사, 간호사, 의료사회복지사 등의 전문가들을 강사로 지원한다. 휠체어 등 환자 이동 기기 사용법이나 환자 낙상 예방법은 물론 환자와 심리적 거리는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는지 등도 배운다. 동행 서비스 후엔 정해진 활동비를 받는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동행한다면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도 ‘더 나은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박씨는 서비스가 시작된 첫 주 국립암센터에 입원 중인 60대 암 환자 1명을 지원했다. 박씨는 “보호자가 없는 분이었고 항암 치료를 하면서 머리카락이 빠지니 다듬고 싶은데 혼자 병원 밖으로 나가기는 어려워서 동행을 부탁해온 것이었는데, 미용실에 함께 다녀오면서 그간 살아온 이야기도 나눴다”며 “처음 만났을 때 어두웠던 표정이 다시 병실로 갈 땐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였고, 제 마음도 많이 움직이고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내가 좀 안 좋아’ 이런 말을 했을 때 무얼 도와주면 좋겠다든지, 어딘가를 긁어주면 좋은지 저는 알잖아요. 항암 치료 시작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니까 감정적인 교류도 되고요. 암 환자들은 누군가 손 한번 내밀어주면, 등 한번 토닥여주면 정말 힘이 나거든요.”(박상기씨)
“휴먼터치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건 인공지능이나 기계가 할 수 없잖아요.”(황서윤 대표)
다만 동행 매니저의 경험이 환자의 치료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주의한다. 황 대표는 “동행 매니저에게 특히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정답으로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것”이라며 “사람마다 암종도, 치료법도 다르고 극복하는 방법도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립암센터의 함께가는병원 서비스는 암센터를 이용하는 환자라면 누구라도 신청해 무료로 2회까지 받을 수 있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2024 사회환경문제 해결 지원사업’으로 운영되는데 올해 예산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한다. 9월 11일까지 국립암센터 본관 홍보데스크에서, 이후엔 박피디와황배우 홈페이지와 SNS 계정으로 신청을 받는다. 다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오는 11월 8일 이전까지로 제한된다. 국립암센터는 내년에 사업을 지속할 예산 확보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암 생존자의 사회 복귀 돕는 발판 됐으면”
이 서비스가 나온 배경엔 황 대표가 암 치료 후 사회 복귀 과정에서 겪은 ‘3만원의 경험’이 있었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던 황 대표는 생활비·병원비 마련을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하지만 경력이 없어서인지 카페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었다.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됐다는 감정이 힘들었다”는 황 대표는 2018년 서울 서대문구 암 환자 자조모임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자문료 3만원을 받았던 것이 생각의 전환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암 경험이 쓸모가 있을 수 있다’고 말이다. 황 대표는 그즈음 앞서 작품을 같이하면서 인연을 맺은, 역시 암 환자였던 박지연 PD(현 박피디와황배우 공동대표)와 팟캐스트를 시작했고, 암 환자 관련 콘텐츠·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경제기업을 키워가게 됐다.
황 대표는 “암 생존자들이 다시 사회에 나갈 용기, 발판을 만들고 싶다”며 “지금은 국립암센터에서 지원을 받아 시범사업 수준으로 하고 있지만, 암 생존자들을 위한 일자리 모델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박피디와황배우의 다음 목표는 정부·지자체 바우처 사업에서도 (함께가는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1999년 이후 암 확진을 받아 2021년까지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환자는 243만4089명이다. 국민 21명당 1명(전체인구 대비 4.7%)이 암 유병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2017~2021년에 진단받은 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2.1%였다. 2006~2010년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생존율(65.5%)보다 6.6%포인트 높아졌다.
암 경험이 늘고 생존율도 높아지면서 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는 있지만 암 환자도 일상적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발병 원인을 온전히 환자 탓으로만 돌리는 등의 고정관념은 아직 남아 있다.
“암 생존자 동행 매니저가 암 환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바꾸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암 환자 당사자의 인식은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암 환자지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잘 먹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 환자분들도 ‘치료를 잘 마치면 사회에 나가서 다시 일을 할 수 있겠다’ 이런 인생의 계획이 세워질 수도 있잖아요.”(황서윤 대표)
“제가 암 치료 후에 잘 살고 있다는 것이 환자분들에게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요.”(박상기씨)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