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들은 왜 ‘불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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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의 감정 캐릭터 ‘불안이’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의 감정 캐릭터 ‘불안이’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 기사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시열씨(27)는 지난 6월 말 공인회계사시험을 마친 후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봤다. 영화를 보며 ‘나는 불안이 생각보다 높은 편이었구나’라고 생각한 그는 “‘불안이’가 미래를 준비하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수험생 입장에선 시험장까지 가는 실력을 꾸준히 키우는 건 불안이가 맞겠다. 그런데 불안이는 실수를 하기도 하므로 정작 실력 발휘를 해주는 건 ‘기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수험생들은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기쁨이가 (감정 본부의) 컨트롤러(제어판)를 잡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30대가 되어 점점 책임감이 커지면서 불안이가 기쁨이를 잡아먹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난 6월 12일 개봉한 미국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가 지난 7월 25일 기준 관객 813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전편 <인사이드 아웃>은 11세 라일리의 머릿속 감정 본부를 지키는 다섯 감정(기쁨·슬픔·버럭·까칠·소심)을 의인화했는데 속편에선 13세 사춘기를 맞은 라일리의 감정 본부에 ‘불안’, ‘당황’, ‘따분’, ‘부럽’ 등 새로운 감정들이 찾아와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라일리가 친구관계나 하키 경기 결과에 골몰하면서 감정 본부의 제어판을 통제하는 감정이 ‘기쁨이’에서 ‘불안이’로 넘어간다. 라일리는 낯선 감정들의 영향을 받아 낯선 행동을 한다. 그 행동의 결과가 다시 라일리 감정 본부의 소동을 키운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편에 나오는 감정 4가지는 사춘기 이후에 등장하면서 조금 더 고차원적인 감정들이라 10대 때의 이야기들, 그리고 성인이라도 지금 본인이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투사할 수 있어서 관객들이 영화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하 교수는 “영화가 좋았던 점은 불안을 ‘빌런(악당)’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 결국 나쁜 감정이라는 건 없고 각 감정이 나름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뤘다는 점”이라며 “살면서 불안을 느끼고 힘들어하지만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 적절한 수준으로 반응하고 작동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해했다면 상당한 위안을 줬을 것”이라고 했다.

■청년세대, 미래 준비 ‘불안’에 공감

사춘기를 겪는 10대부터 청년,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불안을 안고 산다. <인사이드 아웃 2>를 상영하는 극장 CGV의 연령별 예매율을 보면 40대(28.6%)가 가장 높고 20대(26.9%), 30대(26.1%), 50대(10.2%), 10대(8.3%) 등의 순이다. 물론 20대와 30대는 상대적으로 ‘영화를 자주 보는 세대’일 수 있겠으나, 이 영화의 예매율 기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청년세대는 ‘불안이’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회사원 정경원씨(29)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청소년기에 겪는 감정으로 나오는데, 오히려 그 감정이 어쩌면 사회초년생이 더 겪을 만한 감정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제 성격이 그런 면도 있지만, 불안이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은 상황들을 대비하느라 늘 분주하잖아요. 특히 일하면서 ‘잘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들이 있고, 계속 대비책들을 마련해 놓으려 하다 보니 내가 나를 점점 번아웃(소진)으로 몰아넣은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소방관으로 일하는 김현석씨(27)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기쁨이가 오히려 약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느낌이고, 불안이한테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제가 약간 쓸데없는 것에 괜히 걱정하고 잘하려고 하고 ‘걱정을 사서 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일을 하다 보니까 굳이 안 그래도 된다고 느꼈거든요.”

송민경씨(25)는 ‘사춘기 시절의 자신’을 많이 생각했다고 했다. “불안이도 라일리가 잘되게 하려고 생긴 감정이고, 미래를 예측해 대비할 수 있게 해주잖아요. 그런데 저는 사춘기 때부터 불안을 느끼면서 한 번도 잘된 적이 없고, 항상 불안해한 것에 비해 실패했고요. 그래서 불필요한 감정 같다, 이런 걸 느꼈어요.”

최근에 취업했다는 송씨는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저는 요즘 너무 행복한데요. 행복이 깨질까봐 많이 두려워요. 혹시나 나중에 제가 이직을 할 수도 있잖아요. 취업준비생의 불안을 또 느껴야 하잖아요. 친구들과 비교도 많이 하게 되고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그 결과를 부모와 친구들에게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고…. 많이 불안했죠.”

송씨의 말은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지난 7월 24일자 경향신문에 게재한 칼럼 ‘불안과 격변’의 내용과 겹친다. 안 전문의는 “불안한 것이 오히려 덜 불안”하고 “불안하지 않은 것이 어색”하다고 말한 한 출판사 편집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젊은 세대의 만성적인 수행 불안의 괴로움이 생생하게 와닿았”다고 썼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한국 사람들이 더 불안하다고 생각할까. 이시열씨는 “아무래도 우리 세대가 더 불안한 게 맞는 것 같다”며 “예를 들어 직업을 가지면 그 직업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는 잣대도 다양해지고 눈치 볼 것도 많아지고 집이나 결혼 문제라든가 한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선택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우리는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나 남한테 좀 잘 보여야 하고 못 하면 괜히 욕먹을 것 같고 눈치를 많이 보는 분위기가 있어서 불안을 더 느끼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정씨는 “한국사회는 좀더 성과 중심, 결과가 되게 중요하고 속도도 빨라야 하는 압박감이 상대적으로 좀 있어서, 불안을 더 느낄 만한 부분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청년, 경쟁·불평등·공정 불안 높아

한국사회 안에서 보면 ‘누가 더 불안한가’는 사실 의미가 큰 질문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보건복지포럼’ 올해 7월호에서 ‘한국의 사회불안 인식과 사회보장의 과제’를 다뤘다. 청년·중년·노년세대별로 사회불안을 분석한 4개의 보고서가 실렸다. 그중 ‘청년의 사회불안과 공정성 불안 인식’ 보고서를 보면 한국 청년의 사회적 불안 수준은 ‘보통 이상’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16일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 취업 서적들이 진열돼 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이 졸업 후 첫 취업까지의 기간이 평균 11.5개월로, 200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가장 긴 기간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지난 7월 16일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 취업 서적들이 진열돼 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이 졸업 후 첫 취업까지의 기간이 평균 11.5개월로, 200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가장 긴 기간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이 보고서는 2020년 보사연이 수행한 ‘한국의 사회적 불안과 사회보장의 과제-청·중년의 사회적 불안’ 연구 보고서 자료에서 만 19~34세 청년 1793명의 응답만 따로 분석했다. 5점 척도에서 전체 청년의 불안 수준은 3.68점이었다. 사회적 불안 요인 5개 영역으로 보면 경쟁·불평등 불안(4.14점), 공정성 불안(3.92점), 정부 신뢰 불안(3.54점), 안전 불안(3.48점), 적응·도태 불안(3.33점) 순으로 높았다. 경쟁·불평등, 공정 불안은 청년 전기에서 중기,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갈수록 더 높아졌다.

이 보고서는 제목에 나왔듯 ‘공정 불안’에 주목했다. 공정성 불안 수준에 따른 차이를 살펴봤더니, 공정성 불안이 높은 집단은 부·재산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이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다고 봤다. 그런데 공정성 불안이 낮은 집단에서도 부·재산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공정성 불안이 높은 집단은 세대 내, 세대 간 사회이동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사회이동성에 대한 인식은 “기회의 평등 여부”에 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곽윤경 보사연 빈곤불평등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지난 7월 24일 전화 인터뷰에서 “철학서나 대학 교양강의에서 나오던 ‘공정’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누구나 쓰는 용어가 됐고 청년들과 공정을 연관 짓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며 “청년들이 공정에 민감한 것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불평등이 심화하면서 계층이동 사다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년들이 이제 의지하고 믿을 것은 대학 입시나 공무원 시험과 같은 제도로, 이를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곽 부연구위원이 참여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Ⅹ)-공정성과 갈등 인식’ 연구(보사연·2023. 12)에서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청년세대는 ‘대학 입시가 공정하다’고 인식한 비율이 77.09%로, 중장년(69.98%)·노년(74.66%)세대보다 높았다.

“청년들 입장에서는 초·중·고 시절부터 취업, 그리고 직장에서도 무수한 시험을 통한 경쟁에 익숙하고, 이러한 경쟁을 통해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적 기회와 보상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죠. 만약 이런 보상과 자원이 다른 방식으로 배분된다면, 이는 과연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다들 던지게 되는 거죠.”

‘사회적 불안’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라 할 수 있다. 보사연의 2020년 연구는 5년 장기 과제로, 최종적으로 지난해 말 ‘한국의 사회적 불안과 사회보장의 과제 -한국인의 사회적 불안 분석 종합과 정책적 함의’란 보고서가 나왔다. 이 연구를 토대로 정리한 보사연 ‘보건복지포럼’ 7월호의 또 다른 보고서 ‘사회 불안과 인식의 코호트 간 비교’ 보고서는 ‘사회불안’을 “사회 구조와 변화 그리고 이에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는 개인의 서사가 결합된 구성물”로 풀이했다. 다만 곽 부연구위원은 이 연구가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수행됐다는 점에서 연구 결과 해석에 대한 주의와 더불어 일상회복 후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청년세대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정부와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사회 불안과 인식의 코호트 간 보고서’는 ‘1986~2001년생’ 연령층은 취업 불황이나 연줄사회에 대한 불안이 높기 때문에 취업 지원과 함께 공정한 고용 규칙이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정부 정책이 일관성이 있게 추진되고 있는지, 정책의 결정에서 객관적인 근거를 확보했는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회적 공유와 참여가 확보됐는지 따져봐야 한다.

곽 부연구위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낮추고 격차의 축소를 위한 노력의 하나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35세가 됐다고 34세 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 정책부터 중장년 정책까지 생애주기를 고려해 정책을 종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같은 세대 안에서도 성별이나 소득 수준, 거주지에 따라서도 불안 수준이 다르다. 청년집단 내부의 불안 요인이 되는 특성을 공유하는 각 집단을 대상으로 세분된 정책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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