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막판 법사위 소위 통과…이달 말 본회의서 최종 결론 주목
상속권 상실선고제도로 합의…시행 2026년 1월 1일로 변경 논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는 자녀의 재산을 상속할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이 국회의 첫 관문을 넘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는 지난 5월 7일 이런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상속권을 제한하는 방식을 두고 의견이 대립하면서 논의가 지체되다가 21대 국회 종료(5월 29일)를 앞두고 여야가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할지 주목된다.
이번 합의안의 핵심은 부모의 상속권 상실 여부를 법원의 판결로 결정하는 것이다. 또 상속권 상실 소송을 거치기 전에는 조정 절차를 밟도록 했다. 피상속인이 부모를 용서하면 상속권을 유지토록 하는 내용, 상속권이 상실되면 대습상속도 불가능케 하는 방안 등은 빠졌다. 법 미비로 불합리한 일을 이미 겪은 당사자들은 “이제라도 통과돼 다행”이라면서도 법원 판단을 거치도록 하는 방식을 두고는 “아쉽다”고 밝혔다. 법안의 시행 시기를 2026년 1월 1일로 설정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상실선고제도로 합의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가 지난 5월 7일 의결한 민법 개정안은 그간 발의된 법안 11개를 종합 심사해 조정한 수정안이다. 21대 국회 초반부터 여야 의원은 물론 정부도 부양의무 위반자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잇달아 내놓았다. 앞서 20대 국회에서도 논의가 이뤄졌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수정안은 우선 상속권 상실 여부를 가정법원의 소송을 통해 결정키로 했다. 피상속인이 유언에서 부양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 상실 의사를 표하면, 사망 후 유언집행자가 법원에 상속권 상실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만약 고인이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면, 상속인이 다른 상속인의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다. 모든 법정 상속인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정인의 상속권이 박탈됨에 따라서 상속에 직접 영향을 받는 공동상속인이나 후순위 상속인만 가능하다. 소송은 상속권 상실 사유가 있는 사람이 상속인이 됐다는 사실을 인지한 때부터 6개월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피상속인 생전에는 상속권 상실 청구를 할 수 없다.
상속권 상실의 요건은 미성년 자녀를 상대로 한 부모의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으로 한정했다. 자녀의 부양의무 위반 등 다른 유형도 거론됐지만, 불필요한 분쟁과 악용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 범위를 좁혔다. 또 고인이나 그 배우자와 자녀를 상대로 한 ‘중대한 범죄행위’, ‘심히 부당한 대우’도 상속권 상실 사유에 해당한다. 부양의무 위반의 형태가 다양하고 개념이 모호한 요건도 있어서, 향후 법원의 판례가 축적돼야 어느 정도 구체적인 기준이 정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속권 상실 소송에 조정전치주의를 적용키로 했다. 소송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조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조정이 무산되면 소송 절차를 진행한다. 재판 과정에서 다시 조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 논의 테이블에 올랐던 용서 제도는 제외됐다. 이는 피상속인이 용서하면 부양의무를 위반했더라도 상속권을 유지토록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미성년자가 용서하도록 압박을 받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만 고인이 유서 등에 용서의 뜻을 표한다면 법원이 상속권 상실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참작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속권이 상실되면 대습상속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제외키로 했다. 대습상속은 상속인이 상속권을 잃거나 사망했을 때 그의 배우자나 자녀가 상속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피상속인의 자녀가 사망했을 때 상속재산을 손주에게 물려주는 식이다. 그러나 피상속인이 상속권 상실자의 자녀 등에게는 상속할 의사가 있을 수 있고, 대습상속까지 제한하는 건 과하다는 견해가 나왔다.
앞서 논의 과정에서 이번에 합의한 상속권 상실을 무조건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방안과 기존의 상속결격 사유에 부양의무 위반을 추가하는 방안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현재 결격사유는 다른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유언을 방해 및 강요한 행위 등이다. 여기에 부양의무 위반을 신설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송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부양의무 위반이 발생하면 즉시 상속자격은 무효가 된다. 이는 구하라법의 취지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유효한 수단으로 일반적인 법 감정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결격사유제도를 시행하더라도 부양의무 위반이라는 행위는 결국 제3자,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반론이 나왔다. 결격자로 지목된 상속인이 부양의무 위반 등을 인정하지 않으면 소송을 통해 사안을 정리해야 한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제시됐다. 어차피 법원이 판단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소위 내 공식적인 논의 자리에서 두 방안을 두고 결론이 나지 않자, 지난해 말부터 여야 의원과 법무부, 법원행정처 등은 물밑에서 여러 차례 협의를 이어갔다. 그 결과 이번 수정안이 도출됐다.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실의 관계자는 “법무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법원의 상실 선고 방안을 우선 시행한 뒤, 사각지대 등 문제점이 발생하면 결격사유제도를 다시 논의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사자 측 “다행이지만 아쉽다”
결격사유제도 도입을 기대했던 당사자들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고 구하라씨의 유족을 대리했던 노종언 변호사(법무법인 존재)는 통화에서 “그간 지지부진했던 입법에 박차를 가했다는 점은 환영한다”라며 “다만 이번에 합의된 상속권 상실제도보다는 부모가 자녀를 유기한 시점에 상속권이 박탈되는 상속결격제도가 보편적 상식과 원칙에 부합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향후 궁극적으로는 상속결격제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순직한 강한얼 소방관의 유족 강화현씨도 기자와 통화에서 “지난 4년여 동안 구하라법의 필요성과 방향을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거쳐 논의하고, 피해 유족 당사자들과 국민의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며 “섭섭한 마음이 너무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녀를 돌보지 않은 부모는 상속결격이어야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잘못을) 인식하고 부끄러운 줄 알 것”이라고 했다. 강씨의 사례에서는 30년 만에 등장한 모친이 사망보상금 등을 주장했다.
법안의 시행 시점을 애초 공포 후 6개월에서 2026년 1월 1일로 변경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25일 민법의 유류분제도 일부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5년 12월 말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국회에 요청한 점이 고려됐다. 다만 유류분 조항이 빨리 개정이 되면, 이에 맞춰 구하라법의 시행 시기도 앞당기기로 합의했다. 법원에서 상속권 상실 소송과 관련한 내부 규정이나 시스템 등을 정비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법안 시행 시기를 공포 후 6개월로 수정 의결해야 한다”며 조속한 시행을 촉구했다. 고 김종안씨의 누나 김종선씨도 통화에서 “구하라법 논의로만 4년이 지났는데,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될 때까지 또 1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2021년 1월 종안씨가 어선을 타다 바다에서 사망하자 50여 년 만에 나타난 모친이 사망보상금 등을 받아 갔다.
이번 민법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확정된다. 법이 시행되면 부동산, 현금 등 모든 상속재산에 적용된다. 앞서 다른 영역의 구하라법은 이미 시행 중이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른바 ‘공무원 구하라법’(공무원연금법·공무원재해보상법)은 2021년 6월부터, ‘군인 구하라법’(군인연금법·군인재해보상법)은 올해 5월부터 시행됐다. 이들 법의 핵심은 양육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부모에게는 유족급여의 지급을 제한하는 것이다. 유족급여는 상속재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사망보상금 등을 지급할 때 부양의무 여부를 판단토록 한 ‘선원 구하라법’(어선원재해보험법·선원법)도 오는 7월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유류분 상실 사유 없어 헌법불합치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25일 민법에 있는 일부 유류분 조항에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류분이란 상속인에게 할당해야 하는 최소한의 상속 몫이다. 고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보장된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대가족을 이루며 살던 시절에 가족 구성원이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한 대가를 일정 부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유류분은 상속권을 전제로 한다. 상속권 자체가 없으면 유류분을 주장할 수 없다.
관계에 따라 유류분의 비율은 다르다. 배우자와 자녀는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이다. 부모와 형제자매는 법정 상속분의 3분의 1이다. 유류분을 침해당한 상속인은 그만큼의 상속재산을 받은 상속인을 상대로 유류분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소송은 보통 유언이나 생전 증여를 통해 특정인에게만 재산을 물려줄 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미혼인 자녀가 유언에서 부친에게 모든 상속재산을 주겠다고 했으면 민법상 부모가 상속인이 되고, 상속재산은 공동상속인이 2분의 1씩 나눠야 한다. 그러면 모친의 유류분은 2분의 1(법정 상속분)의, 3분의 1이다. 즉 유언에서 부친에게 전 재산을 넘긴다고 밝혔더라도, 유류분에 따라 전체의 6분의 1(16.7%)은 모친의 몫이 되는 것이다.
고 구하라씨의 사례는 모친이 20년 만에 나타나 상속재산을 주장해 논란이 됐다. 엄밀히 말하면 상속권 자체의 문제로 유류분과는 결이 다르다. 구씨는 재산처분과 관련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모친은 법정 상속분인 절반을 요구할 수 있었다.
헌재는 형제자매의 유류분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핵가족이 보편화하고 1인 가구가 증가해 가족의 의미와 형태에 많은 변화가 이뤄진 점을 언급하며 “형제자매는 재산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다른 관계의 유류분은 합헌 판단했다.
헌재는 유류분의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그러면서 2025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밝혔다. 헌재는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의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반한다”고 했다. 유류분에 관한 판단이지만, 상속권의 상실 사유에 부양의무 위반이 없는 점도 에둘러 지적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헌재는 유류분을 계산할 때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는 부분도 헌법불합치 판단했다. 특정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간호 등 특별한 기여가 인정되면 기여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상속재산을 분배할 때 이 기여분은 전체 상속재산에서 제외한다. 기여분을 인정받은 쪽은 더 많은 재산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유류분을 산정할 때는 전체 상속재산에 기여분도 포함한다. 헌재는 “기여 상속인이 기여의 대가로 증여받은 재산도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삽입됨으로써 비기여 상속인에게 반환해야 하는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