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 코딩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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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채팅만으로 원하는 앱을 만들 수 있는 AI 커서(Cursor) 화면 캡처 / getcoai.com

AI와 채팅만으로 원하는 앱을 만들 수 있는 AI 커서(Cursor) 화면 캡처 / getcoai.com

유행어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뜨겁다. AI와 채팅만으로 원하는 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바이브라고 하면 분위기, 느낌을 타는 일일 터. 바이브를 타듯 코딩이 된단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닌 그 누구라도 AI와 채팅만 하면 앱이 뚝딱 만들어진다니, 이것이야말로 게임 체인저라며 너도나도 열광할 법도 하다.

제품으로는 커서(Cursor)나 윈드서프(WindSurf) 같은 유료 편집 에디터가 유명하며, 레플릿(Replit)이라고 브라우저에서 바로 짜고 실행할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무료라서 인기인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도 최근 업데이트되면서 에이전트 모드가 강화되고 있으니, 바이브 코딩 시장은 맹렬하게 팽창 중이다.

그 배후에는 당연히 LLM, 그러니까 클라우드 위의 생성형 AI가 있다. 초반에는 안스로픽의 클로드 버전 3.7이 용하다고 알려졌으나, 이제는 챗GPT 4.1, 제미나이 2.5 등 코딩 실력은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엔 온갖 꿈같은 무용담이 난무한다. 하루 만에 이러저러한 엄청난 것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혼자서도 ‘유니콘’(1조원 가치 기업)을 만들 수 있는 시대라며 들뜨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확실한 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적잖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 풍경을 다 지브리 그림으로 만들어버리던 최근의 유행에 일러스트레이터가 느꼈을 감정과 아마 흡사할 터다. 바이브에 몸을 맡기다 보면, 99%의 확률로 내 코드보다 아름답고 탄탄한 코드가 눈 앞에 펼쳐진다. 1%의 인재라면 안 그럴 수도 있지만, 시정의 기술자들은 그동안 내가 고생하며 해왔던 일은 무엇인가라는 상념에 빠진다.

이런 기분에 유용한 전략이 있다. 이길 수 없다면 친구로 만들기다. 챗봇에게 소스 코드를 일일이 붙여넣을 필요 없이, 현재의 작업 폴더의 구성을 자기가 알아서 가져가 대화의 맥락으로 활용하니 협업의 폭이 넓어지고 함께 모니터를 보는 느낌이다.

선배와 함께하던 코드 리뷰, 동료와 짝을 이뤄서 하던 페어 프로그래밍 모두 이제 솔로로 기계와 함께할 수 있다. 막막하거나 귀찮아 손대지 않았던 프로젝트도 친구와 함께 용기를 내 재도전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리팩토링(코드의 구조 개선)의 효율이 급상승한다. 이제 콘솔 앞 조종석엔 나 홀로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코파일럿’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실 그 옆엔 기술자가 타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관심 없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앉을 기세다. 코드 한 줄 몰라도 입심만 좋으면 함께 조종간을 쥔 AI가 어디로든 데리고 간다. 오늘 일진이 좋으면 정말 엄청난 앱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데모와 현실은 언제나 다르다. 새로운 개념이나 제품이 나올 때마다 끝내준다며 흥분하지만, 막상 내가 해보려고 하면 좀처럼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은 AI 시대에 더 잘 반복된다. 이번에도 결국 잘하는 사람이 마무리해주지 않으면 출시는커녕 실행조차 여의찮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기술자는 AI가 쏟아 놓은 결과물을 테스트해보는, 중요하지만 부수적인 잡무로 격하된 셈이니 두 번째 자괴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드 한 줄 모르지만 AI를 만난 망상가, 그리고 약간 우울하지만 잔뼈 굵은 엔지니어, 이 둘만으로 유니콘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은 확실히 와버렸다. 오늘 운수가 꽤 좋아야 하겠지만.

<김국현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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