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30일 경북 울진군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열린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우리는 오랫동안 원전을 에너지 안보의 핵심 카드로 인식해왔다. 1970년대 중동발 석유 위기로 국가 전력의 약 77%를 석유에 의존하던 당시, 국제정세에 따라 산업과 민생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원전은 대안으로 떠올랐다. 소량의 우라늄으로 대규모 전력 생산이 가능하고, 수입선이 석유보다 다양하다는 점에서 더 안정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렇게 우리는 원전을 에너지 자립의 열쇠로 여겨왔다.
그러나 그 당시의 판단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원전 도입은 사실상 미국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였다. 원전 설계, 핵연료 가공, 운용, 안전규제 체계까지 모두 미국 주도의 국제 원자력 질서에 편입돼 있었다. 이후 우리는 기술 자립을 목표로 원전 노형을 자체 개발하고 수출에도 나섰지만, 핵심기술과 연료 사이클의 완전한 독립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핵에너지 기술·외교 주권 미국에 의존
진정한 에너지 자립은 ‘형식적 독립’이 아니라 ‘에너지 주권’의 실질적 확보를 의미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한·미 원자력협정(123협정)의 제약 속에 있다. 이 협정은 겉으로는 상호 존중과 협력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우라늄의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하며 한국의 핵주기 전반을 미국이 통제하는 구조다. 핵연료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우리는 이를 단지 가공해 사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원전 수출조차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UAE에 수출된 바라카 원전도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핵연료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기술 자립과 수출 확대를 추진해왔지만, 결국 지난 4월 15일 한국은 미국에 의해 ‘민감국가’로 공식 지정됐고, 이에 따른 제약이 본격화됐다. 이는 핵확산 가능성이 있다고 간주해 기술 개발 및 활용이 제한되고 감시대상 국가로 분류된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원전의 독자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첨단기술 전반에 걸쳐 제한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단지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과학기술과 산업 전반에 미칠 파급 효과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18~2023년 한국이 수입한 1947t의 우라늄 중 36%는 프랑스, 34%는 러시아, 25%는 영국, 5%는 중국에서 들여왔다. 이들 국가는 모두 강대국이거나 미국과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국가들이다. 만약 이들 공급국이 미국의 요구나 자국의 전략적 이익에 따라 수출을 제한한다면, 한국의 핵연료 공급망은 급속히 붕괴할 수 있다. 연료가 없다면 원전은 가동조차 할 수 없다. 이제 민감국가 지정을 통해 원전은 ‘우리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 ‘남에게 허가받아야만 작동할 수 있는 자산’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쯤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핵에너지는 에너지 자립을 통한 에너지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인가, 아니면 지정학적 승인에 의존하는 종속 자산인가?
물론 원전은 저렴하고 장시간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장점도 있다. 한국의 최근 5년 평균 발전 정산단가는 1kWh당 원전 57.8원, 석탄 123.6원, LNG 169.2원, 태양광 129.9원이다. 하지만 국제 평균 균등화발전단가는 원전 263.9원, 석탄 171.1원, 가스 110.2원, 태양광 88.5원으로 나타난다(1달러당 1450원 기준). 한국 원전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유는 안전비용이 과소평가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안보의 핵심은 단순한 발전단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료의 안정적 확보와 운용의 자율성 확보에 있다. 연료 공급과 운용권이 외국에 종속된 구조에서는 원전의 장점도 위기상황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진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초기 기술을 수입했더라도 국산화가 충분히 가능하고, 연료나 핵심기술 수입에 따른 제약도 없다. 무엇보다 에너지원 자체가 국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자유롭다. 재생에너지는 이처럼 에너지 안보와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다.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 필요
최근에는 전력 저장기술과 스마트그리드 기술의 발전으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도 점차 해결되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1.6%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더욱 과감한 목표 설정이 요구된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 총 585GW의 92.5%가 재생에너지 설비였다. 원전은 7GW(1.2%)로 미미한 수준인데, 이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또한 분산형 전력 시스템은 중앙집중형 원전보다 위기 대응력이 뛰어나며,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효과적인 에너지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에너지 안보란 단순히 전기를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원과 기술, 운용 체계를 우리가 ‘주권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핵심 기술과 연료를 외국에 의존하고 외교 변수에 따라 외국의 힘에 좌우되는 구조라면 이는 분명한 종속 상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원전을 에너지 자립의 상징처럼 간주하며, 수출형 원전, 소형모듈원자로(SMR), 재처리 기술 개발 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민감국가’ 지정 이후 우리는 더 이상 핵에 기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어쩌면 이제 털고 나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즉 지금이야말로 원전 중심 에너지 수급구조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을 통해 국가 에너지 안보를 새롭게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확보할 수 있음에도 해외에 많은 부분을 의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동맹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상호 존중할 때 더욱 강고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생에너지 확대, 첨단기술 개발, 해외 자원 확보 등을 통해 에너지 주권을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여기에 합리성을 바탕으로 효과적이고 에너지 수요 관리와 효율 향상을 포함하는 균형 잡힌 에너지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전반적인 에너지 주권을 회복하며, 실질적인 에너지 자립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