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월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딥시크 여파에 따른 우리의 AI 대응전략’ 토론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이 두 차례의 아편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증기선이었다. 증기엔진 2대와 무쇠 철갑으로 무장한 증기함 네메시스호는 중국 전함을 무력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네메시스호는 중국 목제 정크선보다 견고했고, 속도도 빨랐다. 오죽하면 중국인들이 네메시스호를 ‘악마의 배’라고 불렀을까. 수군의 현격한 기술 격차를 절감한 중국은 끝내 무릎을 꿇고 불평등 조약을 영국과 맺는 데 합의해야 했다.
탄광의 물을 길어올리기 위해 1700년대 민간에서 발명된 증기기관 기술은 이렇듯 약 100년 만에 군사기술로 전용됐다. 무기체계와 결합한 증기기관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네메시스라는 전함을 탄생시켰고, 영국의 제국주의화를 견인했다. 중국뿐 아니라 미얀마 등 동양의 식민지 정복을 뒷받침하는 핵심 동력으로 활용되기까지 했다. 당대 혁신 기술이 제국주의적 야망과 결합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을 아편전쟁은 명징하게 보여줬다. 증기선뿐 아니라 키니네, 맥심 기관총, 해저 케이블, 대서양 왕복선, 철도 등도 제국주의 팽창에 기여한 대표적 기술이다.
다시 말하지만 1800년대 중국은 ‘제국주의-기술 동맹’의 희생양이었다. 홍콩과 마카오를 영국과 포르투갈에 헌납해야 했을 만큼 제국주의-기술 동맹에 대한 상처는 깊고 컸다. 누구보다 뼈저리게 기술 열위의 아픔을 경험했던 중국은 그들 스스로를 혁신 기술로 무장하기 위해 최근 대대적인 기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AI 분야에서 이 같은 흐름이 도드라진다. 최근 보도를 보면, 2030년까지 AI 분야에만 우리돈으로 약 2000조원을 투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의 국가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보다 약 3배나 많은 금액이다.
중국은 이제 핵심 기술을 개발한 민간 기업을 통제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딥시크 개발자들의 여권을 회수하는가 하면, 이 AI를 국가 기밀로 지정해 해외 유출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 관련 직원들의 외부 접촉도 제한하고 있다.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중국 정부가 이 정도 수준의 규제를 부가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건너편 미국의 행보도 심상찮다. 오픈AI와 구글은 백악관 과학기술국이 발표할 미국 인공지능 행동 계획과 관련해 중국을 겨냥한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고 있다. 특히 오픈AI는 AI 기술의 주도권 유지를 위해 정부의 과감한 기술 도입 전략을 촉구하면서 “미국 정부는 최첨단 AI 도구를 안전하게 채택하기 위해 프로세스를 현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AI는 민간 기업의 혁신적 기술 수준을 넘어 강대국의 패권적 이해와 통합하는 중이다. 곧 무기체계와도 결합할 것이다. 경쟁은 시작됐고, 막대한 정부 자금도 투입되고 있다. 증기기관이 영국의 패권적 야망에 복무하며 제국주의를 키워온 역사적 사례처럼 AI도 조만간 그 길을 따라 걷게 될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팽창 열망을 지닌 강대국 간의 강력한 패권 쟁투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오랜 기간 제국의 지위를 누려왔던 미국, 제국주의 희생양에서 제국으로의 변모를 꿈꾸는 중국, 그들 간의 AI 기술 경쟁이 21세기판 제국주의 시대를 재현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뿐이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