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 2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브리핑실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변인 뒤에 설치된 TV 화면에는 ‘멕시코만(Gulf of Mexico)’을 ‘미국만(Gulf of America)’으로 바꿔 표기한 지도 이미지가 띄워져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한 달여 동안 72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같은 기간 동안 전임 바이든 대통령이 32개, 트럼프 1기에는 12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에 비하면 현저하게 많은 숫자다. 오바마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 서명한 행정명령은 100일 동안 19개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중에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내세운 멕시코, 캐나다, 중국에 대한 관세도 포함된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발효 직전에 유예하기로 잠정 합의했지만, 중국에 대한 관세는 중국의 보복 관세를 불러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조치는 대내적으로도 갈등을 부르고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기존 법의 한도 내에서 효력이 발생한다. 법에 대한 해석은 최종적으로 연방법원의 판단에 근거한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21일(현지시간)로 최소한 연방법원의 29개 판결이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조치를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판결을 내린 연방법원의 상급법원에 개입을 요청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연방 대법원의 판결까지 갈 것이고, 이 과정은 몇 주 또는 몇 달이 소요될 것이다. 논란이 되는 몇개를 보자.
갈등·논란 키우는 트럼프 행정명령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을 종식한다’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DEI는 ‘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을 뜻하며 정치, 문화, 인종, 성별, 장애 등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의 공정한 대우를 촉진한다는 개념이다. 장애에 대한 차별이 없음을 나타내는 ‘Availability(공평한 접근성)’를 추가해 DEIA로 표기하기도 한다. 이 행정명령은 연방기관에서 DEI 활동을 수행하는 조직과 인력을 없애도록 했고, 연방기관에 대한 DEI 요건도 삭제하도록 했다. 또한 대학을 포함한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관에 대해서는 ‘형평성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이 행정명령에 대해 지난 2월 21일 연방법원은 임시 집행정지 처분을 내렸다. 법원의 판결은 이 행정명령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고, 행정명령의 내용이 모호하게 서술돼 있어 법 집행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따라서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종 판결은 연방 대법원이 내릴 것이다.
수천 명의 연방 직원에 대한 해고 또는 정직 조치가 기존 법률 및 규정을 위반하는지 또는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연방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행정부는 연방 재정 약 3조달러를 동결하려 했지만, 적어도 두 건의 사례에서 중단됐다. 미국 국제개발처를 해체하려는 시도도 부분적으로 보류됐고, 국립보건원을 통해 자금이 지원되는 연구실의 ‘간접비’를 삭감하라는 명령도 보류됐다.
트럼프 2기의 대표작이라 할 조직인 DOGE(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는 더욱 논란이 많다. 조직의 영어 이름을 직역하면 ‘정부효율부’인데, 이름과 달리 DOGE는 정부의 공식 부서가 아니다. DOGE의 행정부 내 위상은 대통령실 소속의 임시조직이다. 2024년 11월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일론 머스크를 DOGE 수장으로 지명했는데, 머스크는 정부 지출 중 2조달러를 당장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DOGE 수장은 상원의 인준이 필요하지 않고 대통령이 지명하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론 머스크가 DOGE의 적법한 수장인지, 그리고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뇌부들조차 모두 DOGE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했다. 문제는 이러한 성격의 조직이 비용을 절감하고 정부를 재편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는 데 있다. 머스크의 DOGE는 재무부의 정부 재정 데이터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가가 현재 쟁점이다. 뉴욕 연방지방법원은 정보 유출과 시스템의 취약성을 초래할 수 있고, 따라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의 위험이 있다며 임시 금지 명령을 내렸다.
상대방 희생 요구하는 ‘겁박의 정치’
취임 초기에 쏟아내는 행정명령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무엇을 하려고 할까? 지난번 칼럼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카드가 정치적 의제임을 밝혔다. 대외적으로 표적을 둔 관세 카드와 대내적으로 쏟아내는 많은 행정명령은 공통점이 있다. 상대방을 ‘겁박하는 것’이다. 겁박은 강자가 약자에 대해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강요하는 행위다. 위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국제관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겁박은 이미 여럿이다. 취임 전 당선인 시절에 그는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적 행동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파괴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이 지역을 미국이 장악해 재건하겠다는 ‘가자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요르단, 이집트 등 아랍 8국 정상은 사우디 리야드에서 회담을 열고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반대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내 계획을 강요하지는 않겠다”며 가자 구상에서 한발 물러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협상에서는 그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재정 지원 약 5000억달러에 대한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천연자원 개발권을 독점하는 경제협력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겁박 정치는 무엇을 지향할까? 트럼프 진영은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표어로 내세웠다. ‘미국 우선주의’는 이 표어를 실행할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데 기본 원칙이 됐다. 지금까지 쏟아낸 행정명령과 주요 정책은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지만, 상대방을 배제하거나 상대방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겁박의 정치는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데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사안은 다음 칼럼에서 더 다룰 것이다. 질문을 먼저 던져보자. 세계 질서에 트럼프식의 겁박 정치는 어떤 파문을 불러올까? 트럼프 대통령 임기에 국한된 일시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시대적 전환의 한 단면이 드러난 것인가?
<서중해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