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작업, AI의 노동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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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한국은행은 ‘AI와 한국경제’라는 제목으로, 인공지능(AI) 플랫폼 앤트로픽은 ‘인공지능과 더불어 수행되는 경제적 작업’이라는 타이틀로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보고서 모두 AI에 의한 노동 대체 가능성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결론과 전망은 엇갈렸다. 한국은행은 AI에 의한 노동 대체 가능성과 위험에 방점을 찍었지만 앤트로픽은 대체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두 보고서의 결정적 차이는 분석 대상으로 삼은 데이터와 분석 단위였다. 한국은행은 한 사람이 수행하는 직업(일자리) 그 자체를 두고 AI에 의한 대체성을 봤다. 거시 지표를 바탕으로 AI 기술 노출도와 보완성을 모델링해 직종과 연령, 교육 수준에 따라 그 영향을 측정했다. AI 기술에 많이 노출되지만, 기술에 의한 보완 정도가 낮으면 대체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했다. 이를 토대로 한국은행은 국내 일자리의 27%가 AI로 인해 대체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했다.

앤트로픽은 직업과 작업을 구분하고 세분화했다. 일반적으로 한 명의 노동자는 적게는 수개, 많게는 수십개의 작업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외과의사라고 해서 수술만 하는 게 아니다. 외래 상담도 하고 세미나를 열어 동료 의사들과 지식과 정보를 나누며, 다양한 부가 작업도 도맡아야 한다. 앤트로픽은 노동의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자사의 실제 AI 활용 데이터를 작업 단위로 들여다봤다. 결론은 노동자 한 명의 모든 작업을 AI가 대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는 것. 그들의 데이터를 인용하자면 단일 직업 안에 존재하는 작업들의 75% 이상에 AI가 사용되는 경우는 4%에 불과했다고 했다. 평균적으로는 대략 25% 내외 수준에서 AI가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AI의 추론 능력이 높아지고 세계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물리적 작업까지 침범하는 AI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할수록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지속적으로 제기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인간의 적응성과 통합 지능이다. 앤트로픽의 보고서에서도 관찰되지만, 인간은 AI를 자신의 역량 보완과 작업 자동화를 통합해서 이용하려는 경향을 나타냈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됐을 때 이를 자신만의 통합적 지능 체계로 내재화하려는 적응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직장의 이전을 통한 전환 노력을 시도한다고도 했다.

간과하지 않아야 할 요소는 또 있다. 국가의 역할이다. 여러 이론이 존재하지만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인 1800년대 초, 러다이트 운동의 등장은 기술 혁신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영국 내 극심한 불황도 한몫을 했다. 그만큼 기술에 의한 노동 대체와 실업률 상승은 기술 하나의 요소만을 떼어내 파악하기가 어렵다. 경기순환 사이클, 법체계와 정책 방향, 지정학적 특성과 전쟁의 유무 등 복합적인 영향의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 바로 국가의 역할이 존재한다. 노동 구조의 변화는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해야 하며,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차원도 두루 살펴야 한다. 오로지 기술 혁신 중심으로만 노동 대체 전망을 판단하는 건 때론 성급할 수도 있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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