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폭정은 어떻게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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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기뻐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기뻐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 48.56%의 득표율로 당선돼 2022년 5월 10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후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국회의원 204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임기 5년 중 2년 7개월을 채우고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것이다. 스스로 공작한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국민 대부분의 반대에 직면했다. 세계 민주주의 지형에서 한국은 상위 그룹에 속한다.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이런 나라에서 비상계엄이 발동됐다. 비상계엄은 좌절됐지만, 비상계엄을 위한 모의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도 뒤따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행위는 독재자의 딜레마를 상기시킨다. 국민의 진정한 요구와 당면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체제의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것이 독재자 딜레마의 한 모습이다. 지난 칼럼(‘타인의 진심을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에서 다루었듯,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의 선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초래되는 파국이다. 그런데 국민의 선호를 매번 반드시 투표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시로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는 매우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취임 초 50%를 넘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은 계엄 사태 직전인 지난 11월 4주차 한국갤럽조사에서 19%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독재자 딜레마에 빠진 대통령

대략 600만명의 유대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인종 학살로 목숨을 잃었다. 전쟁 전 유럽에 살았던 유대인 인구의 67%에 해당한다. 폴란드에서는 90% 이상의 유대인이 나치가 만든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인종 학살을 주도한 나치주의의 본질은 무엇일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생각 없는 대중과 정치 엘리트의 동맹이 나치주의나 스탈린주의 같은 전체주의의 길을 열었다고 설파했다.

아렌트는 1933년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파리로 이주했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51년 출판된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전체주의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역사적으로 조망한다. 이 책은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과 같은 20세기 초 전체주의 체제를 설명하며 근원과 메커니즘을 탐구한다. 그 메커니즘의 하나가 ‘대중사회와 소외’의 문제다. 전체주의는 대중사회의 등장에 따른 대중의 소외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통적 공동체가 붕괴하면서 사람들은 고립되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소외된 대중은 자신을 대표하는 집단적 정체성을 찾으며, 전체주의 운동에 쉽게 동원된다. 전체주의는 대중의 고립감을 악용해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율성을 말살하고 복종을 요구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궁극적 목적이 개인의 말살과 인간 존엄성의 파괴라고 결론짓는다. 전체주의는 정치적 자유와 다원주의를 부정하고, 하나의 절대적 이념과 체제에 모든 것을 종속시킨다. 전체주의는 단순히 특정 독재자나 정치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대중의 불안, 이데올로기의 폐쇄성에서 비롯된다.

생각이 없는 대중은 현실에서 도피한다. 대신 권위에 충성한다. 생각 없는 대중과 이들을 악용하는 정치 엘리트의 결합은 전체주의의 길을 열게 된다. 이 지점에서 아렌트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아래 인용에서 ‘생각 없는 대중’은 원문의 mass 또는 mob을 의역한 것이다.

“생각 없는 대중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근본적인 ‘정신적 유랑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현실이 우연적이고 현실이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동시에 그들은 허구를 갈망한다. 생각 없는 대중의 현실 도피는 그들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심판이다.”

“전체주의 운동에서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무조건적인 충성과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생각 없는 대중의 지지보다 더 불안한 것은, 이러한 운동이 대중뿐만 아니라 엘리트들에게도 의심의 여지 없이 매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생각 없는 대중과 엘리트 간의 불안한 동맹 그리고 그들의 열망이 기묘하게 일치하는 현상은 이 두 계층이 국가와 사회에서 가장 먼저 배제된 데서 기인했다. 이들은 일시적이라도 서로를 쉽게 알아보았다. 이유는 그들 모두가 자신들이 시대의 운명을 대표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이 자신들을 따르고 있으며, 유럽 민중의 대다수도 머지않아 그들이 일으킨 혁명을 함께할 것으로 생각했다.”

시민들이 전체주의 망령 막아

계엄령이 선포됐다가 철회된 직후인 12월 4일부터 탄핵이 국회에서 결정된 12월 14일까지 거리에는 두 그룹의 시위대가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일반 시민들과 계엄을 지지하는 극우세력이다. 극우세력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들의 주장이 오래된 냉전 시기를 연상시키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안정과 균형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보수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집단으로 판단된다.

극우 지지자들과 여기에 동조하는 정치 엘리트들의 동맹이 계엄이라는 폭정을 불러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국민의힘의 비극은 이들 집단이 지지자들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이 지지자들이 우위를 점하기도 한다. “지금 반대해도 1년 뒤면 국민이 다 찍어주더라”는 윤상현 의원의 말은 같은 당 의원들로부터 “입단속 좀 시켜요”라는 반응을 불렀다. 보수 정당을 표방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스펙트럼이 넓다.

한국은 지표로 보면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극복할 과제가 많다.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언론의 독립성이 미흡하다고 평가받는다. 근저에는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사회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사회 주류에서 소외된 소수집단의 불만이 누적되면 극단의 정치가 출현한다. 이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창구 중 하나가 유튜브이다. 전체주의의 망령은 일상 속에 잠복해 있다가 호시탐탐 정권 탈취를 노린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전체주의 망령의 등장을 막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희망이 있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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