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 미국 대통령선거가 열렸고 다음 날인 11월 6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됐다. 미국 대통령선거는 항상 전 세계 주목을 끌지만, 이번 트럼프 당선은 많은 이들에게 앞으로의 세계가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트럼프가 당선되는 과정에서 조세재정정책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는 대대적인 감세정책과 보호무역주의를 핵심 경제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유효하게 작용한 것은 반이민 정책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누적된 물가 상승이 서민에게 주는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은 향후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급속한 증가를 통해 미국과 세계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줄 개연성이 크다.
감세안의 내용은 사회보장세 면제, 팁과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비과세, 자동차 대출이자 공제 등 중산층을 겨냥한 것이다. 사회보장세 면제는 현재 사회보장 급여에 대해 세금을 내는 노인층(전체 수혜자의 약 40%)의 세금을 면제하자는 것인데, 향후 10년간 1조달러의 세수 감소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팁과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비과세, 그리고 자동차 대출이자에 대한 공제를 통해서도 추가적으로 10년간 1조달러의 세수 감소가 예측된다. 기업에 대해서는 연구개발(R&D) 비용공제제도 연장과 법인세율 인하(21→15%)를 제시했는데, 이를 통해 10년간 2000억달러의 추가 세수 감소가 추산된다.
트럼프 재집권 세계 경제에 부담
트럼프는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로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도모하고,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소비재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미국 경제 구조상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보호무역정책은 무역 상대국들의 보복 관세를 촉발할 수 있다. 글로벌 무역 질서 혼란과 함께 미국 수출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개인 사업가로서도 개인의 부채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했다. 2017년에서 2021년까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집권 1기에 미국 국가부채는 20조달러에서 30조달러로 50%가량 증가했다. 트럼프 이후, 바이든 집권기에 미국의 국가부채는 35조달러에 이르게 됐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20%에 해당한다. 조 바이든도 트럼프 못지않게 재정지출을 늘려왔고, 2023년 한 해의 재정적자가 GDP의 6.3%에 달했다. 유럽연합(EU)에서 가장 국가부채가 많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정도가 이 수준을 넘어선다. 미국 경제와 고용이 매우 좋은 상황에서 이러한 규모의 재정적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더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당선 이후 트럼프의 국가부채에 대한 태도가 바뀔 것인지에 대해선 경제학자들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들은 회의적이다. 오히려 트럼프 집권 2기에 미국의 국가부채가 GDP의 130%에 도달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줄이고 관세로 세입을 보완하며 재정지출을 줄이겠다는 것 외에 별다른 언급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집권기를 통해 GDP의 10%포인트가량 부채가 늘어난다고 보는 것은 조심스러운 전망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어느 연구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국가부채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정책당국자들이 기준으로 사용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세계통화로서 달러의 위상과 세계에서 높이 평가받는 안전자산으로서의 미국 국채는 수출을 통해 많은 외환을 보유하는 나라들이 소유하고자 하는 투자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미 높은 국가부채 수준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 원하는 만큼 새롭게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은 순식간에 뒤집힌다. 미국 국채는 세계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안전자산이기 때문에 미국 국채에 대한 금융시장의 신뢰가 흔들리는 경우 금융시장에서 커다란 위기가 만들어질 개연성이 높다. 최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국채 이자율은 오히려 올랐다. 이자율을 올려주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원하는 만큼의 국채물량이 시장에서 인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좋은 신호가 아니다.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서 견조한 국가재정에 관해 관심을 표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를 자문하는 사람들은 연준의 독립성을 위협해 이자율을 낮추고 이를 통해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보인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의 인플레이션이 트럼프 당선을 도왔지만, 따지고 보면 바이든 시기의 인플레이션이 만들어지는 원인의 상당 부분은 트럼프 집권 1기에서 조성됐다. 이제 트럼프 2기에서 낮은 이자율과 높은 재정지출, 세계를 상대로 하는 관세전쟁 등은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현재 미국의 경기는 좋은 상황이니 더 위험하다. 트럼프 2기 집권 시기에 세계가 재정위기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입 확보가 지속가능한 정책 방향
집권 1기 동안 트럼프가 보여준 모습 중에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는 코로나19 위기에 거의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세계 최고 부유국 미국에서 120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권 1기에 트럼프 진용이 미처 채비를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적절한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은 진용에 구애받지 않고 예산을 마련하고 연방과 주정부의 수많은 기구와 전문가들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기저층의 생명에 대한 경시적 태도가 드러났을 뿐이다. 트럼프의 이러한 태도가 향후 어떤 다른 모습으로 발현될지 세계는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향후 정책 운용에서 세입예산 확보가 제일 중요한 관건이라는 점이다. 통화정책을 통한 유동성 공급과 이자율 인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강력한 벽을 돌파할 수 없다. 잊혔던 인플레이션의 유령이 복귀한 이상 이를 경계하지 않는 통화정책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가 직면한 기후위기와 자산 양극화 위기에서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대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에 대한 세 부담을 늘려 세입을 확보하는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숙의적 과정을 통해 세입 확보안을 마련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정책 방향이다. 실패하면 권위주의 국가들과 경제성과를 겨루는 경쟁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이 뒤처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여겨졌던 미국의 대통령으로 권위주의 국가들의 수장을 닮아가는 트럼프가 당선됐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이제 퇴락하는 것일까.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