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휴먼 시대의 디지털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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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죽음은 더 이상 한 인간의 종언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을 넘어 방대한 디지털 잔재의 발생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생전에 사용하던 소셜미디어 계정, e메일, 클라우드 저장소, 암호화폐 지갑 등을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으로 남긴다.

이 유산은 물리적 유산과 달리 소멸하지 않고 사이버 공간에 영구히 남아서 새로운 윤리적·법적·사회적 쟁점을 야기한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불멸성을 획득한 디지털 정보는 사후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와 추가적인 관리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 사후 세계는 종교적 맥락에서 다뤄졌다. 천국과 지옥, 윤회사상 등은 인간의 사후 존재에 관한 형이상학적 탐구의 결과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이러한 초월적 담론을 현실적인 데이터 관리 문제로 치환했다. 이제 우리는 영혼의 안식뿐만 아니라 테라바이트 단위의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개인의 프라이버시, 데이터 소유권, 디지털 기억의 사회적 기억으로의 전환 등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디지털 유산은 단순한 데이터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고인의 삶의 궤적, 사상, 관계, 정체성의 파편을 담고 있는 디지털 화석이다. 소셜미디어 게시물은 한 사람의 일상과 감정의 기록이며 사회적 관계망을 보여주는 지도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은 소중한 추억의 저장고이자, 때로는 법적 효력을 지닌 증거 자료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처럼 디지털 유산은 개인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유족에게는 심리적 위안과 사회적 기억의 계승을 위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디지털 유산은 개인정보 유출 및 악용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고인의 사적인 정보, 금융 거래내역, 의료기록 등이 유출될 경우, 유족에게 커다란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줄 수 있다. 더욱이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은 디지털 유산을 활용해 고인의 페르소나를 복제하고, 가상공간에서 부활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기술은 슬픔에 잠긴 유족에게 위로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고인의 존엄성 훼손, 정체성 도용 등의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생명 창조의 경계를 넘어섰듯, 우리는 디지털 부활 기술의 윤리적 경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디지털 유산의 관리는 법적·기술적·윤리적 차원의 다각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디지털 유산의 상속, 관리, 접근 권한 등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의 마련이 필요하다. 현행법은 물리적 재산 상속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디지털 유산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이 생전에 자신의 디지털 유산 처리 방식을 미리 설정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 관리’ 서비스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사후 분쟁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디지털 유산은 고인의 인격과 존엄성의 연장선에서 더욱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고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동시에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균형 잡힌 지혜를 모색해야 한다.

<류한석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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