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농업 분야 탄소세’ 도입…연말 의회 통과시 주변국 확산 가능성
지구촌이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덴마크가 세계 최초로 ‘농업 분야’에 탄소세를 도입해 눈길을 끌고 있다. 가축이 트림·방귀 등으로 배출하는 ‘메탄’에 세금을 부과해 농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메탄은 대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보다 대기에 머무는 기간은 짧지만, 열을 가둬두는 온실효과가 80배 이상 크다. 이번 법안이 연말 의회를 통과하면 덴마크는 농업 분야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된다. 앞서 유사한 법안을 준비했다가 농민들의 반발에 부딪힌 다른 국가들이 다시 입법에 나설지 주목된다.
CNN과 AP 등 외신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는 2030년부터 소와 양, 돼지 등을 키우는 농가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1t당 300크로네(약 6만원)의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지난 6월 26일 발표했다. 농업, 산업, 환경단체 등과 협상해 합의에 이르렀고 2035년부터는 부과 세금을 1t당 750크로네(약 15만원)로 인상할 예정이다.
다만 실제로는 60%가량의 세금 공제 혜택이 적용돼 2030년 기준 이산화탄소 1t당 120크로네(약 2만4000원), 2035년 기준 300크로네의 세금이 부과될 전망이다. 덴마크 정부는 세금 협상안을 통해 2030년에 메탄 배출량을 이산화탄소환산량으로 180만t가량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1990년 수준보다 70%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 “역사적인 세금 협상, 국제 입법 확산 촉각”
예페 브루우스 세무 장관은 “덴마크는 농업에 실질적인 탄소세를 도입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며 “다른 국가들도 이를 따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덴마크에서 가장 큰 환경단체인 덴마크 자연 보호 협회도 이번 세금 협상에 대해 “역사적인 타협”이라며 “향후 국가 전체 식품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덴마크 정부는 세금 부과 방안과 별도로 농업 분야를 친환경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400억크로네(약 8조원) 상당의 보조금 지원 방안도 도입한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탄소세만 부과하면 농가 부담만 늘 수 있는데 정부에 내는 (농민) 소득세를 60% 감면해 주는 세수 중립적 세제 개편안을 도입해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탄소 배출량은 줄이고 경제 주체들이 경제 활동에 적극 나설 유인을 만들었다”며 “그간 선진국에서도 농업은 보호해야 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농업부문에 탄소세를 도입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라고 말했다.
덴마크는 국토의 60%가 농지이고 소고기와 우유 주요 생산국이라 북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덴마크 정부가 위촉한 자문그룹은 현 상태를 유지된다면 2030년 덴마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5%가 농업에서 나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가축 분뇨·소화 과정에서 생기는 트림, 방귀 등을 통해 나오는 메탄은 지구 온실가스의 11%가량을 차지한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등 기후 전문기관에 따르면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양은 적지만,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80배를 웃돈다. 가축이 먹는 풀의 합성 질소 비료도 온실가스를 만들어 낸다. 소 한 마리가 하루에 방출하는 메탄은 약 280ℓ로 자동차와 비슷하다는 국제 연구 결과도 있다.
농민들의 반발은 덴마크 정부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덴마크는 낙농업 생산품의 70% 이상을 수출하는 농업 강국이지만 탄소세가 생기면 유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덴마크 농민 협동조합 디엘지(DLG) 측은 “농민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이 정책은 유럽연합(EU)의 법안과 함께 가야 한다”며 “덴마크가 혼자 행동에 나선다고 해서 기후나 농업, 또는 관련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U는 지난 6월 의회 선거를 앞두고 농민들의 반대를 의식해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도입안을 폐기했다. 앞서 뉴질랜드와 아일랜드 등도 탄소세 도입을 검토했지만 농민들의 반발로 막판에 무산됐다. 탄소세 도입 법안이 연말 덴마크 의회를 통과하면, EU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다시 농업 탄소세 부과를 검토할 것이라고 외신은 전망했다.
■ “각국, 육류세 부과·저메탄 사료 개발 고민”
축산물 소비가 꾸준히 늘고 있는 한국에서도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세계적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1월 발표한 ‘축산 분야 2030 온실가스 감축 및 녹색성장 전략’에서 저탄소 사양 관리와 축종별 생산성 향상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940만t)보다 18% 적은 770만t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농림부는 분뇨의 퇴·액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농가에 저감 설비를 56%까지 확대 보급하고,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도 촉진키로 했다. 또 저메탄·저단백 사료 농가에 사료비를 지원하는 저탄소 프로그램도 도입한다.
다만 앞선 국가들과 달리 식량 자급률이 높지 않은 한국의 경우 현실에 맞는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논농사가 발달한 한국은 농업 경쟁력과 식량 안보 문제 등을 감안해 온실가스 감축만 목표로 삼기보다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탄소 중립 사회로 가는 것이 세계적 흐름인 만큼 세금 등의 환경 규제를 했을 때 시장 가격이 올라가는 것에 따른 사회적 비용 분담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기후학자들 사이에서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는 만큼 과도한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를 위해 영국과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붉은 고기에 세금을 부과하는 ‘육류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국제 투자사 네트워크인 ‘가축 투자 위험과 수익(FAIRR)’ 측은 “파리기후협약이 정한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세계 정부가 그들의 육류산업에 중대한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고기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많은 가축을 사육하는 것이 과도한 육식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장기적으로는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