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은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충격을 주며 인공지능(AI)이 몰고 올 4차 산업혁명의 서막을 알렸다. 지난 5월 13일 GPT 개발사 OpenAI는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 ‘GPT-4o(GPT-포오)’를 공개하며, 인공지능 발전의 또 다른 도약을 보였다. 새 모델명의 ‘o’는 모든 것을 뜻하는 라틴어 ‘옴니(omni)’를 뜻한다. 텍스트를 통해 대화할 수 있었던 기존 모델과 달리 이용자와 실시간 음성 대화를 통해 질문하고 답변을 요청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다.
알파고를 필두로 인공지능은 사람 곁으로 바짝 다가와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람이 풀기 어려운 문제들에 답변을 제공한다. 학생, 회사원, 연구원의 일상 숙제와 보고서 작성에 도움을 준다. 친절한 선생님으로, 유능한 직장 동료, 학자로 대화 상대가 되어 문제를 풀어준다. 기존의 인공지능은 혁신적이고 인간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부족한 부분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인간의 표현 방식과 차이가 있어 기계와의 대화를 인지할 수 있었다.
이번 새 인공지능 시연을 보면서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다. GPT-4o와의 대화는 사람과 대화하듯 자연스레 이어진다. 말하는 와중에 끼어들 수 있고, 여러 명의 목소리도 동시에 인식한다. 응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대화하는 이와 다양한 목소리, 감정, 톤을 바꿔가며 복잡한 상호작용도 가능하다.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 <그녀(Her)>(2013)에서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AI 운영체제 ‘사만다’가 현실이 됐다-실제로 시연회 인공지능의 목소리는 영화 속 그녀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어느 순간 인격체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 인공지능은 누구인가? 그것은 인간의 삶에 약인가, 독인가? 인류가 접하는 기후위기 속에 인공지능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 만큼이나 지구 온도 상승도 거침이 없다. 지난 4월까지 11개월 연속 ‘역대 가장 더운 달’ 기록을 경신 중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는 더 많은 수분을 보유하고 지구 물순환 사이클에 영향을 미친다. 따뜻한 대기는 대지 표면을 건조해 산불의 위험을 높인다. 증발하는 물의 양과 다시 비의 형태로 대지에 돌아오는 물의 양이 증가해 극한 폭우의 가능성을 높인다. 건조한 대지는 단단해지고 폭우와 함께 홍수의 위험을 키운다. 최근 브라질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로 2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피해를 본 원인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위기로 발생할 극한 폭우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날씨 예보와 폭우 예측은 물리적 수치 모델링에 기반하고 많은 가정과 조건-예를 들어 초기조건, 경계조건, 모델 단순화-이 포함된 어려운 시뮬레이션이다. 데이터가 풍부하고 컴퓨터 성능이 강력할수록 정확도와 계산속도는 높아지지만 100% 정확한 예보를 기대하긴 어렵다. 특히 지구온난화가 시작되고 대기가 더 많은 수분을 보유하면서 마치 ‘물 폭탄’을 다루듯, 더 민감해지고 더 복잡해진 문제가 됐다.
날씨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은 이런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데 도움을 준다. 기후 모델을 개선하고, 장기적인 기후변화 예측, 홍수 예보 등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날씨 예측 방법이 논문으로 실렸다. ‘인공지능을 적용한 일기예보 시스템 그래프캐스트(GraphCast)’가 그것인데,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를 개발했던 구글 딥마인드 팀이 개발했다. 그래프캐스트 역시 알파고와 마찬가지로 딥러닝으로 1979년부터 2017년까지 38년에 걸친 기상관측 데이터를 학습한 뒤 이를 토대로 최근 기상관측 데이터의 패턴을 분석해 날씨를 예측한다.
그래프캐스트의 주간예보는 최고의 수치 모델을 사용하는 유럽중기기상예측센터(ECMWF)의 예측값보다 더 정확했다. 1380개 항목 가운데 90%에서 실제에 더 가까운 값을 내놓았다. 그래프캐스트는 노트북에서 단 몇 분 만에 결과를 내놓았다. 유럽중기기상예측센터 수치 모델은 100만개의 프로세서가 장착된 슈퍼컴퓨터가 몇 시간 동안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날씨는 본질적으로 100% 예측이 불가능하고, 알파고처럼 그래프캐스트의 결과를 개발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이런 이유로 딥러닝 방식의 예측을 블랙박스라고도 부른다. 특히 인공지능은 과거의 데이터에 의존해 미래를 예측하기에 과거에 없었던 이상 기후 현상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극한 기후의 결과가 나왔고, 그것이 많은 인명에 영향을 미치고 많은 예산이 필요한 결정이라면, 이를 얼마만큼 신뢰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알파고처럼 한 번 틀려도 되는 바둑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중기기상예측센터는 기존 수치 모델을 완전히 대체하는 대신 그래프캐스트를 보완적으로 이용한다. 기존 방식으로는 계산하기 어려운 특정 유형의 날씨 예측, 가까운 시간의 강우량 등을 예측하는데, 그래프캐스트의 빠른 계산 결과를 보완적으로 이용한다. 추후 그래프캐스트의 기여도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프캐스트가 기상 결과를 계속 학습하면서 기상 예측 정확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마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한 번 경기에 패배한 후 약점을 찾아내 학습하고 더 이상 인간에게 패배한 적이 없는 것처럼.
전기 먹는 하마 인공지능
인공지능 발전의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은 개발·운영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한 연구에 따르면 구글 검색에 평균 0.3Wh의 전력이 쓰일 때 생성형 AI 챗GPT는 그보다 10배에 가까운 2.9Wh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1개의 AI 모델 훈련에 필요한 전기는 일반 가정 100가구의 연간 전기 사용량을 초과한다는 추산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 개발과 유지에 필수인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6년 최대 1050TWh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022년 전력 사용량이 460TWh였는데 4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뛰는 셈이다. 인공지능 발전이 당장 화석연료 발전의 의존도를 올리며, 기후변화 대응에 독이 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은 표절과 가짜뉴스 위험이 있고, 내재된 오류와 편견의 문제도 수반한다. 인공지능이 바꿀 산업 지형, 일자리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지구 평균 지표면 온도는 1850~1900년 평균보다 1.45도 높다. 지구 기온 상승폭 1.5도라는 임계점이 이제 바로 앞에 있다. 인공지능도 계속 진화하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임계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 인공지능이 기후위기로 위협받는 우리의 삶에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2개의 판도라 상자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