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5년 후 기후위기를 바꾸어주세요. 집이랑 갔가우면 걸어가고, 바닸가애 쓰레기도 못버리개 해주세요. 언재간은 우리나라도 잠기잔아요.”(-오다윤 목포유달초등학교 1학년)
2년 전 1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초등학교 1학년 오다윤양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 보낸 편지다. 오양의 편지는 1만5000통 가까이 되는 다른 학생들의 편지와 함께 유력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사무실에 전해졌다. 편지를 받아본 모든 후보는 답장을 썼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며 꼭 노력해 보겠다고.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이제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코앞이다. 답변을 보내온 대통령선거 후보 중 일부는 올해 국회의원선거를 치른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오다윤양을 대신해 정치권에 묻고자 한다. “여러분은 기후위기 대응에 어떤 비전을 갖고 있습니까?”
불공정한 탄소예산, 절박한 기후 유권자들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은 지난 3월 4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다음날인 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직접 찾아가 ‘기후 편지’를 전했다. 이들은 2030년 이후를 살아갈 청년과 아동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의 짐을 떠넘기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며 미래세대에 가혹하고 불공정한 탄소예산의 재분배를 요구했다. 두 정치인 모두 청년의 절박함이 묻은 기후 편지를 받았고,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월 20일 발표한 기후공약에서 탄소예산 기준으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린피스가 문제를 제기한 탄소예산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내로 붙잡아두기 위해 인류에게 제한된 탄소 배출 총량’을 뜻한다. 그린피스가 유엔(UN) IPCC 보고서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의 탄소예산은 2023년 기준으로 45억t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 계획대로라면 6년 뒤인 2030년까지 전체의 90%에 달하는 41억t을 소진하게 된다. 가까운 미래에 탄소예산을 펑펑 써버린 후, 탄소중립에 도달해야 하는 2050년까지는 단 4억t의 탄소예산으로 버티겠다는 계획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탄소예산을 펑펑 써버리면 결국 현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이들의 삶까지 모두 저당 잡게 될 것이다. 지금의 청년세대도,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들도 ‘탄소의 빚’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탄소예산 문제는 미래로 그 책임을 미루는 ‘폭탄 돌리기’처럼 다뤄지고 있다. 때로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떠넘길 수 있는 문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탄소 감축, 목표는 높이고 예산은 늘려야
먼저 한국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자.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그리기에 매우 부족하지만, 그 방향성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2023년, 정부는 탄소 감축을 위한 5년간의 국가예산으로 89조9000억원을 상정했다. 연간 17조9000억원 규모다. 이는 2023년 전체 예산의 3%에도 미치지 않는다. 탄소 배출에 따른 지구 온도 상승이 초래할 악영향을 국가예산의 3%로 막아보겠다는 주장은 누가 보아도 충분치 않아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탄소중립 기본계획에서 산업 부문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2018년 계획이었던 14.5%에서 11.4%로 줄였다. 언제 상용화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탄소포집기술(CCUS)과 실효성이 부족한 국제 감축 사업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금보다 곱절, 아니 그보다 많이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산업 부문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하향하고, 불확실한 미래 기술에 운을 맡겼다.
정부는 ‘현실성’을 결정의 이유로 꼽았다. 2018년 산업 부문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가 애초부터 현실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2030년 이후부터 2050년까지 20년 동안 남은 탄소예산은 단 4억t에 불과하다. 2022년 한 해에만 6억t가량의 탄소를 배출한 한국이 어떻게 갑자기 4억t으로 20년을 살아 낼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적인 결정이 조만간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기후 대응에 핑계 대지 않는 해외 국가들
한정된 탄소예산을 어떻게 잘 운용할 수 있을지는 많은 나라의 고민으로 남아 있다. 현실이 아주 밝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과 독일이 있다. 영국은 아예 법적으로 기후변화위원회를 만든 나라다. 이 위원회는 정부에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의회에 정부가 기후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 보고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영국은 탄소예산을 점검하고 준수하는 것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수립의 첫 목표로 설정할 수 있었다.
독일의 경우 최초, 2030년 탄소 배출 40% 감축을 목표로 삼았지만 2021년 이를 55%로 상향했다. 이후 기후변화 대응법의 목표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자 기존 목표를 다시 65%로 상향했다. 산업의 부담과 현실적 어려움 등은 이들 국가에도 결코 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국가들은 현실적인 이유를 핑계로 지금의 짐을 미래로 떠넘기지 않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기후위기는 그 위험을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의 문제와 연결된다. 정치가 기후위기 대응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24년 총선은 중대한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탄소예산을 펑펑 쓰며 예견된 비극을 마주할 것인지, 아니면 그 비극을 예측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인지의 갈림길 말이다. 4년의 운명을 결정할 총선은 반드시 지구 온도 1.5도를 지켜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중요한 시기, 모두의 신중한 선택을 빈다.
<신민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