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3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헬기가 계류돼 있다. 정효진 기자
주한미군(USFK)은 70년 이상 한·미안보동맹의 핵심이자 상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가치 공동체’ 성격이 강했던 한·미동맹에 대해 이제는 미국의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거래 수단’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주한미군의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역할 확대 전망과 맞물려 6월 4일 출범한 한국의 새 정부에 부담을 주고 있다.
주한미군의 병력 조정은 6·25전쟁 직후 최고 32만6863명에서 현재 2만8500명에 이르기까지 한국 입장보다는 미국 내 정치적 고려나 예산 상황, 글로벌 전략 변화 등에 따른 미국의 일방적 주도로 이뤄져 왔다. 닉슨 독트린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 부시 행정부의 해외주둔군 재검토(GPR)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중국의 패권 제어, 대만 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주한미군 지상군의 한반도 밖 이동과 같은 전략적 재배치로 이어질 전망이다. 미군은 최근 북한 미사일 요격용으로 칠곡 캠프 캐럴에 배치한 주한미군 패트리엇 포대를 500여명 대대급 병력과 함께 한국 국방부와 구체적 협의 없이 중동으로 옮기기도 했다.
‘몸통’ 드러낸 전략적 유연성
미군이 군산비행장에 F-35 20대를 배치하고 추가로 20대를 순환배치하겠다는 것은 중국을 상대로 한 견제와 타격 및 압박용이다. F-35를 군산비행장에 배치할 경우 중간급유 없이 중국의 상하이를 포함한 인근 해안지역은 모두 작전반경에 들어간다. 베이징 인근까지도 작전이 가능하다.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한 군사적 행위다. 만약 한국이 추가로 도입하는 F-35를 군산비행장에 배치할 경우 이는 한국 공군이 대중국 작전에 동원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정부는 2006년 1월 미국 정부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고 했고, 미국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공통적 이해 형식이었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합의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을 약화시킬 소지가 많았으나 지난 19년간은 빙산의 일각 정도로만 보였다. 그러던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수면 아래 있던 대중국 기동군으로서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신임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달 13일과 15일 이틀에 걸친 언론과의 인터뷰 및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은 일본·중국 사이에 고정된 항공모함 같다”고 말한 것은 어찌 보면 동맹국을 모독하는 충격적 표현이다. 한국을 대만해협 유사시 중국 본토 공격을 위한 미국의 군사전략적 수단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남한을 섬으로 표현하면서 중국을 향해 군사력을 투사하는 항공모함으로 비유한 것은 한국이 미국의 대리전을 치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주한미군이 중국과의 전쟁에 이용되면 한국은 사실상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브런슨 사령관은 “주한미군은 북한 격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고 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한 발언이다.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북한 위협 대비 외에도 “중국 견제를 위해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발언한 것은 브런슨 사령관이 처음이다. 한마디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성격이 변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지난 5월 23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인근 식당에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정효진 기자
한국 정부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본질은 한반도 방위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지만 무시할 수 있다는 구도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특히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은 남북 간 전쟁이 벌어져도 지상전은 한국군에 전담시키겠다는 의도다. 또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주일미군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인·태 전략상 하위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다. 이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라는 기둥이 균열을 보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주한미군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밝히는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이다. 한국군 장군들조차 한반도 전쟁 발발 시 69만명의 증원 병력과 5개 항모전단, 3000대 전투기가 지원하기로 돼 있는 미 증원군의 한반도 전개계획인 ‘시차별부대전개목록(TPFDL)’을 믿지 않는다. 이 시차별부대전개목록은 국방부가 발간하는 국방백서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다.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
미국은 군사적 사안에 관한 결정을 사전에 흘리는 통로로 활용해온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지난달 22일 주한미군 4500명 철수를 시사했다. 4500명은 현재 2만8500명 안팎인 주한미군의 약 16%에 해당하는 병력이다. 미국은 통상 이런 식으로 한국 정부에 불편한 사항을 미 정부 당국을 인용한 뉴스로 사전에 흘려왔다.
주한미군 4500명 철수라면 지상군이 될 가능성이 거의 100%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지상군을 사실상 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군사 전문가들은 4500명이란 숫자를 미국이 한국에 순환 배치하고 있는 스트라이커 여단 병력으로 보고 있다. 지상군 병력이 부족한 미국이 주한미군 지상군 병력을 괌 등의 후방에 배치하고 중국 견제에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평택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지상군이 북한의 300㎜ 방사포인 KN-09의 사정권에 있는 것도 큰 부담으로 여겨왔다.
미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계획에는 대북 협상용 카드가 숨겨져 있다. 미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을 북한과의 빅딜 카드로 쓸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지상군을 한반도에서 빼내 중국 견제 병력으로 돌리면서 북한에 주는 ‘당근’으로 활용하면 된다.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 지상군은 중국 억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북한에는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한·미 연합작계상으로 볼 때 주한미군 지상군이 한반도 유사시 방어보다는 북한 지역을 공격할 때 투입되는 공세 전력임을 감안하면 지상군 감축은 북한에 큰 선물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하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나아가 미국 주도의 한반도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으로선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중국 견제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 이는 한·미동맹의 ‘재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밝힌 본토 방어와 중국의 대만 침공 억제를 최우선시하고 러시아, 북한, 이란 등 다른 위협은 해당 지역의 동맹에 최대한 맡긴다는 내용의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과도 맥이 닿아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 역할을 북한 위협에 대한 대비보다는 중국 견제를 위한 전력으로 전환을 하기 시작하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무거운 국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 요구에 따른 한국군의 전시 작전권 환수를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 정책차관은 지난 3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사실상 전작권 전환을 원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정보자산 등 미국이 제공하는 연계 전력 지원에 대한 청구서를 들이밀 것으로 보인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