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 걸려 있던 봉황기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인용 이후 대통령실 관계자들에 의해 내려지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서여의도에서 ‘버거킹’이 사라졌다.” 지난 4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대로길 용산빌딩 1층에 자리 잡았던 버거킹의 공간엔 사무실 집기를 넣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인부들도 어떤 용도의 사무실이 들어올지는 모른다고 했다. 건물 입구에서 관리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건장한 체격의 검은 정장 차림의 청년에게 물어봤다. “이재명 후원회 사무실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캠프는… 어차피 다 알려질 일인데 2층에 있고요.” 서여의도에서 버거킹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 청년의 말이다.
여의도공원을 기점으로 여의도는 동과 서로 나뉜다. 아파트 등 주거시설은 대부분 여의도공원 건너편 동여의도에 있다. 반면 서여의도에는 증권가와 은행, 국회의사당이 있다. 서여의도는 다시 국회를 기준으로 나뉜다. 국회 정문 앞에 서서 바라보면 쭉 뻗어 있는 의사당대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뉜다. 국회 원내 정당들 대부분이 의사당대로 왼쪽, 국회대로 68길에서 74길 사이에 있다(원내 정당 중에는 진보당만 예외적으로 청와대가 보이는 사직동에 당사가 있다). 중앙선관위원회에 등록된 원외 정당 상당수도 여기에 있다. 정당만이 아니다. 정치 관련 싱크탱크, 명멸하는 유력 대선주자 관련 사무실도 대부분 의사당대로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대선 시기에 들어서는 각 유력 대선주자 캠프도 예외가 아니다. 68길에 자리 잡은 더불어민주당과 74길에 자리 잡은 국민의힘 당사에서 멀지 않은 건물에 입주해 3~4개월 운영되다 사라진다.
국회 앞 좌측의 여의도 정치
용산빌딩 바로 옆 대하빌딩. 4층엔 국민의힘 경선 후보 홍준표 캠프가 입주했고, 9층에는 역시 국민의힘 후보 한동훈 캠프가 들어섰다. 기자가 방문한 4월 9일엔 양쪽 모두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한참 공사 중이었다. 하지만 찾기 어렵진 않았다. 한동훈 팬클럽 측에서 보낸 화환이 대하빌딩 입구에 전시돼 있었다. 9층 선거사무실 앞에도 화환들이 놓여 있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이곳 901호에 한동훈 캠프가 들어선다는 것은 팬들 사이에서 이미 널리 공유된 정보인 모양이었다. 4층 홍준표 캠프가 약 5~6개 사무실을 계약한 데 비해 한동훈 캠프는 대하빌딩에서 하나의 사무실만 쓰고 있었다. 대선전이 본격 시작되면 감당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정치 경력 부족 문제일까.
“사무실 안쪽은 상당히 넓어요.” 캠프 앞에 놓여 있던 화환과 꽃바구니 사진을 찍고 있던 여성이 말했다. 한동훈 팬클럽 ‘위드후니’ 멤버라고 했다. 문 안쪽에도 꽃바구니가 복도를 따라 진열돼 있는데 이 여성 팬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자 안에서 정장을 한 청년이 나와 삭제를 요구했다. “아직 출마 선언 전인데 사진이 나가면 곤란하다”는 취지였다. 출마 선언은 이튿날인 4월 10일 국회 본관 앞에서 있었다.

지난 4월 9일 국회 인근 대하빌딩 앞에 대선 경선후보로 출마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를 지지하는 팬들이 보낸 화환이 늘어서 있다. /정용인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자 정세는 급변했다. 조기 대선 국면으로 넘어갔다. 작은 사고가 있었다. 조기 대선과 동시에 개헌을 추진하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기자회견이다. 윤 전 대통령 탄핵인용 이틀만이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바탕 폭풍이 몰아쳤다. 중요한 것은 내란 종식인데 개헌은 내란 세력에게 숨 쉴 명분을 준다는 주장이었다. 우 의장에게는 ‘개헌 수괴’라는 별명이 붙었다. 비난에도 우 의장은 “국회 양 교섭단체 대표가 대선 동시 투표 개헌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영한다”는 게시물을 지난 4월 7일 SNS에 올렸다.
관심은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밝힐 입장이 무엇일지에 쏠렸다. 이튿날인 4월 8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전 대표는 “지금은 내란 극복이 훨씬 더 중요한 과제”라며 4년 중임제 등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매우 논쟁의 여지가 커서 실제로 결과는 못 내면서 논쟁만 격화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우 의장이 꺼낸 “대선과 동시 개헌론”을 거부한 것이다.
‘조기 대선 동시 개헌 국민투표’ 철회 막전막후
“우 의장은 원내대표를 한 5선 의원으로 중량급 정치인이다. 이 정도로 비중 있는 어젠다를 던지면서 사전 정지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4월 8일 접촉한 우 의장 측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우 의장이 밝힌 것처럼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면 초기에 하고 싶은 일들이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개헌논의가 시작되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 초기엔 꺼내기 어렵다는 것이 그동안 우리가 알아 온 경험이지 않았나. 또 중후반으로 넘어가면 레임덕이기 때문에 추진 동력은 상실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치면 이제 60여 일, 58일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걸 버리거나 허비하기엔 너무나 소중한 기간이지 않나. 그래서 할 수 있다면 그동안 헌법 개정 논의는 숙성됐고 논의 결과도 많이 나왔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자는 것이 입법기관 수장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제안이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조기 대선 동시 개헌 국민투표’는 이미 구 여야 지도부와 논의를 거쳐 입장을 확인한 후 제안을 했는데, 기자회견 뒤 특정 진영, 구체적으로는 민주당 지지층의 반발이 크니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측이 입장을 바꿨다는 뜻이 된다. ‘우 의장이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우리가 답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만 했다.
개헌 논란은 바로 다음 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퇴임이 예정된 두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를 지명하는 또 다른 ‘폭탄’이 터지면서 묻혔다. 4월 9일 우 의장은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 개헌 국민투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한다”라며 사실상 제안을 철회했다. 그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함으로써 국회를 무시하고,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라며 “안정적 개헌 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어찌 됐든 섣불렀다. 계엄 국면에서 상의할 시간이 언제 있었겠나. 탄핵인용 직전까지 살얼음판 같은 상황이라 어떤 논의도 중단되어 있었다. 조기 대선과 함께 개헌하자는 논의가 구체적으로 됐겠는가. 개헌에 대한 생각도 결국은 자기 정파의 이익에 따라 유불리를 계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왜 의장 측은 몰랐는지 의문이다.” 10년 가까이 민주당 성향의 한 싱크탱크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인사의 평가다. 이 인사는 ‘민주당의 입장에서’ 아직 조기 대선의 결과도 낙관하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어느 한쪽이든 삐끗하면 아웃된다. 이재명도 마찬가지다. 갤럽 여론조사 등을 종합하면 이재명을 순수하게 지지하는 37~38%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가변적이라고 봐야 한다. 그게 최대치다. 나머지 60% 전후를 차지하는 사람이 어디를 지지할지 누가 알겠는가. 아직 다 된 것처럼 이야기해선 안 된다.” 이 인사는 “이재명이 걸어온 길만 놓고 보면 진짜 천운이 따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보통 대통령선거에서 이긴 쪽이 진 상대 후보에게 법적 시비를 거는 경우가 없다. 대통령은 경쟁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마음도 얻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후유증이 오래가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남달랐다. 자신만이 옳다는 확신에 빠져 이재명만 제거하면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 거로 봤다. 강공을 이어가다 뜻대로 안 되니 쿠데타를 일으킨 거고… 자중지란으로 오늘의 대선이 만들어진 것 아닌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4월 6일 국회에서 개헌 관련 특별담화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정당 지지율의 변화추이만 보면 이 인사의 주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것으로 보인다. 쿠키뉴스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탄핵 이후인 4월 5일부터 7일까지 전국 거주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는 49.8%, 국민의힘으로 정권 유지는 38.2%로 집계됐다. 지지정당 여부에 관한 질문에서 민주당 지지는 37.5%, 국민의힘 35.1%로 두 정당에 대한 지지율 차이는 오차범위 내에 있다(유선전화면접(8.7%)과 무선ARS(91.3%)를 병행한 RDD조사로,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 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와 한길리서치 홈페이지 참조).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탄핵 직후인 지난 4월 4~5일 조사한 결과가 있고, 이번에는 5~7일 조사를 했는데 두 조사의 특징을 꼽자면 두 가지”라고 말했다. “한 달 전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은 1%포인트 앞섰는데 탄핵 직후는 8%포인트, 주말을 낀 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지만 2.4%포인트 앞선 거로 나왔다. 정치환경이 민주당에는 최고로 좋고, 국민의힘으로선 최고로 나쁜 상황에서 나온 결과다. 두 번째, 탄핵에도 불구하고 외연 확장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쪽만 훅 빠진 것이다. 국민의힘 결집력이 무너졌지만 그렇다고 중도층에서 민주당 지지가 크게 늘어난 결과도 아니다.” 그 역시 이번에 치러지게 될 조기 대선은 어느 한쪽, 구체적으로 민주당의 일방적인 승리라기보다 ‘51 대 49’의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로서는 국민의힘의 외연 확장성은 없지만, 전략을 창의적으로 짠다면 하루이틀 사이에도 얼마든지 판이 뒤집힐 가능성이 없지 않다. 만에 하나 이준석까지 연대가 이뤄지면 5 대 5의 싸움도 가능할 수 있다. 그게 안 된다면 민주당이 여유 있게 승리하게 될 것이다.”
사실 주간경향이 포스트 탄핵 국면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은 탄핵 이후 치러질 조기 대선이 사실상 6공화국 헌법 아래 치러질 87년 체제의 마지막 대선이 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1987년 6월항쟁의 마지막 국면인 1987년 6·26 국민대행진엔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DJ(김대중)와 YS(김영삼)도 직접 나서 대열의 선두에 섰다. 그러나 그 6월항쟁의 결실은 사흘 뒤 직선제 수용을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내놓은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가 가져간다. 9월 개헌이 87년 체제의 헌법적 체제를 만들었다면 이듬해 4·26 총선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 국면과 1990년 1월 20일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구도가 1987년 후 38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대표적 야도(野都)였던 부산은 3당 합당을 계기로 여도(與都)로 변한다. 부산 지역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차기 정부, 7공화국 과도 정부 될 수 있을까
1990년의 3당 합당이 보수 대연합을 지향했지만, 실제 추진한 것은 TK 군부 세력을 중심으로 특정 지역, 구체적으로는 호남을 배제한 지역 패권 연합이었다. 보수 대연합이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탄생한 민주자유당과 현재의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후신 정당은 한 번도 전국정당을 완성한 적이 없다. 3당 합당이 특정 지역 배제로 만들어진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까지 60일의 정치적 시간은 평상시의 하루하루와 다르다. 윤석열 탄핵 이후 만들어질 포스트 탄핵 체제를 만들어낼 ‘여의도의 시간’을 주목하는 이유였다. 홍형식 소장은 결국 한때의 해프닝처럼 묻혔지만 ‘87년 체제를 극복할 개헌’이 수구와 혁신을 나눌 기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은 87년 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 나갈 과도기다. 결국 개헌하자는 쪽과 거부하는 쪽으로 나뉠 텐데 거부하는 쪽이 정치적 이념을 떠나 수구 세력이 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87년 체제의 최대 수혜 세력은 3김과 그의 정치적 자손들이다. 87년 체제 헌법에서 합의한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역설적으로 3김이 한 번씩 돌아가며 대통령을 하겠다고 만든 법이다. 이 체제가 정치적으로 수십 년 지속하다 보니 기성 정치권 중심 세력이 수구가 된 것이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현재의 포스트 탄핵 국면을 7공화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규정하려면 개헌은 필수적인데 현재 이 문제를 보는 다수의 논리는 내란 주도 정당이나 내란을 일으킨 사람들과 개헌 논의는 같이할 수 없으며, 내란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7공화국을 여는 과제는 또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기 대선과 동시 개헌 국민투표가 물 건너간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2026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된다면 현재 조기 대선으로 만들어질 정부를 7공화국으로 넘어갈 과도정부로 규정할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될 거로 거의 확실한 사람, 구체적으로 이재명은 과도 정부가 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과도 정부가 아닌 이재명 정부가 되길 원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새로운 시대에 앞서 구정치의 막내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재명 후보가 개헌에 대한 입장이 없는 건 아닌 것으로 안다. 탄핵을 끌어낸 ‘빛의 혁명’을 만들어낸 국민이 그리는 7공화국 개헌, 그리고 사회 대개혁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조기 대선이 본격화되면 꺼낼 것으로 기대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