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에 정치적 완패…탄핵은 사실상 시간문제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자정을 넘긴 4일 한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무장군인들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자 국회 직원 등이 격렬히 막아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자정을 넘긴 4일 한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무장군인들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자 국회 직원 등이 격렬히 막아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정치평론가들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압승을 사실상 확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 장면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4월 1일 의료개혁 대국민 담화를 꼽았다. 윤 대통령은 52분간의 담화 내내 모든 사람이, 심지어 대통령실 쪽에서도 기대하던 전향적 조치 없이 2000명 증원을 고집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입장 없음”이라는 논평을 냈다. 당시 기자를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 A씨는 “대통령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답답하다”라고 토로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다음날인 지난 12월 4일 다시 A씨와 통화했다. 그는 최근 대통령실을 나왔다. A씨는 격앙돼 있었다. “법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을 풀어내라고 정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완패 선언이다. 정치적으로 민주당을 못 이기겠으니 대통령이 법적인 권한을 써보겠다, 이거 아닌가. 사실 이게 딱 검사 마인드다. 법에만 함몰돼 법으로만 해결했던 사람이 정치라는 영역에 대한 몰이해로 일관하니, 결론적으로 이런 예견된 파국을 맞은 게 아닌가.” 그 역시 지금 시점에선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거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 문제를 법으로 반박” 되풀이하는 윤 대통령

대통령실 주변을 취재하면서 전해 들은 윤 대통령 부부의 말이나 행동 중에는 믿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다시 A씨의 말이다. “예측 불가능한 의사결정은 사실 몇 차례 있었다. 그 이유가 다 법이다. 상대가 정치적으로 풀려고 하는 것을 법으로 반박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야당과의 관계가 문제라면 그걸 풀어야지, 너희가 국회 권한으로 나한테 이렇게 도전하면 나도 내 권한을 쓸 수 있다, 이거잖나.” 그는 그것을 ‘검사 마인드’라고 불렀다. “예전부터 사석에서 한 말인데 검사는 다시 안 보고 싶다. 나는 결과적으로 이건 보수가 집단으로 오판한 거라고 본다. 검사 용병이라도 써서 재집권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더 참담한 것이 뭔지 아는가. 그러면 윤 대통령을 끌어내리면 대안이 있냐는 거다.”

지난 12월 4일 새벽 2시 30분, 민주당 원내대표실 송현석 선임보좌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제 5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국회 최고참 경력 보좌진이다. 이날 새벽 1시, 국회에서 의원 190명의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다. 3시간 넘도록 대통령실의 응답이 없었다. 혹시 새로 들어온 정보가 없냐는 문의였다.

날이 밝고 그날 오후 다시 그와 통화했다. 심야 비상계엄이 발표되던 지난 12월 3일, 조금 일찍 퇴근해 집에 있던 그는 뉴스를 보고 다시 국회로 향했다. “일촉즉발 상황이라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밤 11시 조금 넘어 담장을 넘어 국회에 들어왔는데 내가 들어올 때는 거기까지 경찰이 막지는 않았다. 실질적으로 동원된 경찰도 많지는 않아 보였다. 예전에 우리가 경험했던 폭동진압 경찰복도 아니잖나. 그런데 헬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게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비상계엄 이유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민주당이 예산 농단을 했다고 하는데 재해 대책 예비비나 아이 돌봄 지원수당을 우리가 왜 날리나. 아마 확인해보면 자신들이 삭감한 예산에 들어 있을 것이다. 매년 예산안 논의할 때 지출구조조정이라고 불필요한 돈을 빼는데 어떻게 하는지 그 내용은 밖에서 알 수 없으니 둘러대는 것이다. 확인되는 것은 지역사랑 상품권 0원, 1조원 규모였던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 등이다. 이것은 민주당이 만든 예산이니까. 윤 대통령은 주변 몇몇 사람이 거짓 보고를 하니까 그걸 믿고 무턱대고 막말을 쏟아낸 거로 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계엄령 명분 야당 예산 농단? 거짓말”

주간경향은 지난 11월 28일 유·무죄가 번갈아 나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심 재판 기사를 게재했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재판 결과를 기점으로 상황은 민주당이 아니라 윤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제 윤 대통령에게 남은 카드는 거국내각밖에 없다”고 정국진단을 내렸다. 그 카드를 내놓을 시점은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10% 초반으로 급락할 때”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패착’으로 그 시점이 앞당겨진 셈이다. “몰리고 몰리다 저지른 거라고 본다. 자폭 쿠데타다. 시발점이 된 것이 이재명 위증교사죄 1심 무죄다. 1심 결과가 유죄가 났으면 상황이 이렇게 안 왔다.” 그는 정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이 거국내각 구성을 선언하고 임기 단축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거국내각에 정권을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탄핵 공방전이 벌어지면 여권도 친한·친윤으로 나뉘어 망가지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상처를 입는다고 본다. 물론 윤 대통령이 과연 그걸 할 수 있느냐의 가능성은 적다. 지금 거국내각과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은 윤석열이라는 ‘돌연변이’ 괴물의 문제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의 고질적 병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역대 대통령이 전부 다 돌연변이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그런 대통령이 다시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않나. 모두가 사는 길로 움직여야 한다.”

“탄핵은 시간문제다. 설혹 이번엔 버틴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여론이 악화하고 국민 분노가 강하게 표출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계속 갈 수 있겠느냐.”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전면적인 인적 쇄신은 대통령실 실장·수석 비서관과 국무위원 전원이 사표를 냈으니 할 수밖에 없고, 쌍특검이건 개헌이건 전면 수용해야 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활로다. 시간을 지연하는 것도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이미 늦었다.”

그는 탄핵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 3~4개월간 헌법재판소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내란 행위인 비상계엄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단순해 결론이 날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국회 몫 헌재 재판관 3명이 더 임명돼야 하는데 그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도하면 된다. 헌재 심판 후 두 달 이내에 선거해야 하니 늦어도 내년 6월에서 7월경 대선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그는 임기 단축 조기 대선 개헌으로 차기 대통령 재임기부터 ‘7공화국이 열릴 가능성은 작을 거로 전망했다. “일단 윤 대통령은 극단적인 자기 확증편향에 걸려 있다. 본인은 애국주의라고 생각하겠지만, 대통령 본인이 극단정치를 끝내고 7공화국을 열겠다는 소명 의식이 없다. 이재명 대표도 사법 위험성을 안고 있고, 국민의힘도 개헌에 힘을 합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오른쪽부터)가 12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오른쪽부터)가 12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탄핵은 시간문제, 임기 단축 조기 대선 가능성은

공희준 정치평론가는 “조기 대선으로 가야 할 시간을 벌어야 하므로 보수는 탄핵을 어떻게든 막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국민의힘의 노력에 윤 대통령이 찬물을 끼얹었다. 비유하자면 수류탄 정도가 아니라 미사일을 발사한 셈이다. 밖으로 보면 윤석열이 김건희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인지만, 안에서 보면 김건희가 그런 감정적 기복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는데 여사의 역할이 사라지니 감정적으로 무너진 상태에서 권력과 오기만 남은 것이다.”

그는 윤 대통령의 현재 처지가 <몰락>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다운폴>(2004)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히틀러의 마지막 모습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금 윤 대통령은 영남과 서울 강남만 보고 있다. 야당의 탄핵 발의는 계속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대응 전략은 문자 그대로 홧김에 군대나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홧김에 계엄령을 발동하는 대통령인 셈인데 경제·외교·안보뿐 아니라 친위 쿠데타에 실패하면서 그나마 그가 가진 군 인맥도 날아가게 된 상황이다. 국군통수권도 사실상 잃은 셈이다. =<다운폴>을 보면 히틀러는 궁지에 몰려 존재하지 않은 군대에 명령을 내리는데, 앞으로는 윤석열도 존재하지 않는 계엄군에게 계엄령만 발동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 상황이 되면 지금의 군도 군복 입은 공무원인데 과연 윤석열의 명령을 들을까. 계엄령 해제결의안에 국민의힘 TK 지역구 의원들은 거의 불참했다. 과거 새누리당 의석에서 정확히 수도권 의석만 줄어든 것이 국민의힘이다. 다시 말해 수도권 스윙보터 지역구가 다 날아간 정당이다. 전국적으로는 탄핵 여론이 우세하지만, 영남의 국민의힘 지역구에서는 팽팽하다. 탄핵만 안 당했을 뿐 용산이 지하벙커 방공호처럼 돼버렸다. 수도권만 보면 용산 대통령실에 고립된 죄수 아닌 죄수의 상황이다.”

공 평론가에 따르면 그나마 윤 대통령이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버티게 하는 것은 탄핵에 반대하는 영남 일부 노인층 민심과 소위 ‘틀튜브’라고 불리는 극우 유튜브 방송의 선동이다. “계엄령 후 극우 유튜브 방송의 주장을 살펴보면 ‘제2, 제3의 계엄령이 필요하다. 윤석열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라는 이야기인데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선거 부정론 같은 음모론이다. 그러한 음모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보수는 비전이 없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명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보니 지난 총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포하자 갑자기 황교안 전 총리가 지지하고 나선 까닭이다. 지금의 윤 대통령과 황교안 전 총리는 이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대통령이 된 황교안이 윤석열이고, 대통령이 되지 못한 윤석열이 황교안이다. 포고령 발포 후 계엄군이 투입된 곳 중 가장 이상한 곳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극우 유튜버들의 부정선거 주장에 따른 것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이 쿠데타는 창피한 사건이다. 부도덕한 데다 수준도 낮았다. ‘틀튜브 세계관’에 갇혀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선관위를 혼내주자는 것이다. 동서고금에 역대로 이렇게 지질한 쿠데타는 없었던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의 심야 기습 비상계엄 선포에 시민들이 12월 4일 한밤 국회 앞에서 ‘계엄철폐’ 팻말 등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심야 기습 비상계엄 선포에 시민들이 12월 4일 한밤 국회 앞에서 ‘계엄철폐’ 팻말 등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상황과 다른 점은 한동훈 대표를 중심으로 여당이 상당히 발 빠르게 움직인 점”이라며 “야당 상황도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이재명 대표에게 그리 유리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계엄령 후 상황이 폭력적으로 재편됐다면 그에 대한 반감으로 이재명 대표에게 힘이 실릴 텐데 평온하게 해프닝 내지는 코미디처럼 마무리됐기 때문에 강 대 강으로 탄핵이냐 계엄이냐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 포용적인 중도층이 나서 대화 타협으로 의회 민주제를 지키자는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될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이 대표는 2016년과 2017년 문재인 당시 대표처럼 반사이익을 다 가져가기는 어렵다. 지금 상황에서는 한동훈 대표도 살아 있기 때문에 보수 역시 완전히 궤멸할 거로 볼 수 없다.”

비상계엄 시민 대응 성숙한 민주주의 평가해야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권이 통치와 정당성 위기라는 이중 위기가 구조화돼 있던 상황에서 비상계엄이라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터지면서 정치적 정당성을 결정적으로 훼손시킨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계엄령 이후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갔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탄핵 열차’는 출발했다. 탄핵 프로세스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이후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사실상 권력의 중심은 없다고 본다. 현재 권력은 말 그대로 용산과 집권당, 야당, 시민사회로 분산된 상태다.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흐름을 끌어갈 수 없다.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이 커진 상황인데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의지가 있다고 일방적으로 관철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그런데도 ‘12·3 비상계엄 사태’ 대응 과정에서 국회와 시민들이 보여줬던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한 모습은 좀더 높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비상계엄은 20세기에나 가능했던 낡은 정치다. 근거도 명분도 없이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다. 12월 3일, 대한민국은 정부의 그릇된 결정에 대해서 정당과 시민사회, 다시 말하면 국회와 시민사회가 협력해 오만한 권력 행사에 대해 신속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물론 양극화나 반다원주의의 위협과 같은 위기 징후도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로만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성숙한 모습도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정말 원심력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후 어떤 관계가 만들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