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말 4만650원에서 2024년 11월 22일 37만9500원으로 3년 만에 9배 넘게 수직 상승. 주식시장에서 ‘만루홈런’에 해당하는 ‘텐배거’(수익률 10배 이상 종목)가 코앞이다. 방산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 얘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를 밀어 올리는 주요 상품은 K-9 자주포(이하 K-9)다. K-9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수출 상품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에만 1700여대 이상을 생산했고, 현재 전 세계 155㎜ 자주포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이후 ‘궤도형 자주포’ 세계 시장에서 수출 물량 기준으로 1위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는 세계 자주포 시장의 향후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을 약 4.8%로 예상한다. 시장 규모는 2024년 57억달러에서 2034년 92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유럽이 자주포 시장의 49.5%를 차지해 가장 비중이 크고 아시아·태평양(35.3%), 북미(7.2%), 중동(3.7%), 아프리카(2.9%), 중남미(1.4%) 순이다.
포탑 자동화
K-9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군내에서는 K-9이 대공사격까지 할 수 있게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차와 자주포를 파괴하는 드론의 위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K-9 도입 국가 모임인 ‘K-9 사용자 클럽’에서도 유럽 국가들 중심으로 드론 대응 방안을 요구했다.
군과 방산업체는 대포병 탐지레이더로 적 드론을 탐지·추적하면 K-9이 대공사격이나 공중확산탄으로 드론을 격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이는 북한군의 장사정포 포탄에 대한 대공 방어도 겸하게 된다.
K-9 진화의 핵심은 무인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을 무인 자동장전 기능을 갖춘 A2, 유·무인 복합운영이 가능한 A3로 개량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재래식 포가 아니라 세계 최초로 첨단 기술이 집약된 자주포로 변신하게 된다.
K-9의 2차 성능개량 버전인 K-9A2는 2027년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K-9A2는 포탑 자동화 자주포다. 송탄과 장전 등 기존에 병력이 직접 수행해야 했던 임무가 자동화된다. 이에 따라 기존 자주포 탑승 병력이 5명(포반장·사수·부사수·1번 포수·조종수)에서 3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는 한국군 자주포의 운용률 급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2024년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현재 한국군은 병력 부족으로 자주포 조종수 보직률이 72.9%대에 머물러 있다. 필요한 조종수가 100명이라면 73명만 충원한 셈이다. 유사시 육군에 배치된 K-9 자주포 1100여대 중 300대가량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포의 무인화는 ‘한 줄기 빛’이다. 분당 발사수도 자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6발에서 9발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A2의 후속 버전으로 2030년대를 겨냥해 K-9A3 연구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K-9의 3차 성능개량 버전인 K-9A3는 유·무인 복합운용체계로 작동하게 된다. 원격주행과 다른 차량을 따라가는 종속주행은 물론 자율주행 및 자율배치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사격 진지에 도착하면 자주포들은 자동으로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배치된다. 이를 위해 K-9A3 차체 전면에는 라이다(LiDAR·자율주행 보조장치)와 주행카메라, 측면엔 주행보조카메라, 포탑 상부엔 원격통신장치를 탑재한다.
K-9A3는 지휘장갑차(FDCV) 2대가 수㎞ 떨어진 거리에서 무인 K-9A3 자주포 6대를 지휘할 수 있도록 설계될 예정이다. 사격통제차량인 지휘장갑차 1대에 탑승한 지휘관 1명과 운용병 3명이 무인 자주포 3대를 원격으로 조종하며 이동, 사격 명령을 내린다. 다른 인원들은 경계 및 사격 준비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구경장도 52구경장에서 58구경장으로 늘어나 최대 사거리는 현재 40㎞에서 80㎞로 2배 늘어날 전망이다. 구경장은 구경을 1단위로 해 포신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다. 52구경장은 포신의 길이가 구경의 52배란 의미다. 분당 발사 속도는 10발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륜형’ K-9
세계 자주포 시장은 ‘궤도형’과 ‘차륜형’으로 양분돼 있다. 궤도형 자주포는 바퀴보다 튼튼하고 접지력이 높아 험준한 산지나 야지 기동성이 좋다. 험지에서 기동하기에 유리하다. 포 발사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스페이드를 별도로 장착하지 않아도 바로 발사할 수 있다. 대신 차륜형에 비해 운용 유지비용이 많이 들고 정비에 필요한 인력도 많다. 평상시 작전지역으로 장거리 이동 시에는 별도의 수송 트레일러로 이동해야 한다. 차륜형 자주포는 스스로 수백㎞를 주행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빠르게 전장에 투입할 수 있으며, 전장을 빠져나오기도 쉽다. 수송기 탑재도 상대적으로 편리하다.
방산업계에서는 향후 10년간 궤도형 플랫폼이 시장의 54%, 차륜형 플랫폼은 3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상대적 기동성이 좋은 차륜형 자주포 시장 점유율이 높아져 가고 있다.
평야 지대에서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궤도형 52구경장 자주포의 파손율은 27.77%였지만, 차륜형 52구경장 자주포는 8.77%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K-9 자주포를 차륜형으로 개조해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무인 포탑을 탑재한 155㎜ 차기 차륜형 자주포 모형은 K-9A2의 완전 자동화 포탑을 천무 다연장로켓 발사차량에 얹어 결합한 형태다. 프로토타입(시제품이 나오기 전 디자인)이 2024년 KADEX 방산전시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발사차량은 사막 및 산지 환경에서도 우수한 기동성을 이미 검증받았다.
포신을 제외한 포탑 크기는 4.2m(길이)×2.9m(폭)×2.0m(높이)다. 주 무장은 155㎜ 52구경장 포신이다. 분당 8발 발사할 수 있다. 전투중량은 38t 이하, 사거리는 40㎞(표준탄 기준)로 계획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현재 K-9A3용으로 개발 중인 58구경장 포신도 탑재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유도포탄으로 70㎞ 이상 떨어진 적 표적까지 정밀타격할 수 있게 된다. K-9A2의 기능을 계승한 만큼 2인 혹은 3인으로 운영할 수 있다. 항속거리는 700㎞, 최고속도는 시속 100㎞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차륜형 자주포는 KNDS(독일과 프랑스 합작회사)의 RCH-155가 꼽힌다. RCH-155는 독일의 복서 장갑차에 KNDS가 개발한 무인 포탑을 얹었다. 독일의 라인메탈이 개발 중인 HX-3(시그마 155)는 포탑이 RCH-155보다 커서 탄약 40발을 탑재할 수 있다. RCH-155는 30발 정도 가능하고, 신형 한화 자주포는 40발 정도 탑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차륜형 K-9이 전력화되면 세계 차륜형 자주포 시장은 3파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