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최전선 지휘할 ‘ MB정권 한명회’
![[인물연구]최시중 초대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https://img.khan.co.kr/newsmaker/765/24_a.jpg)
신설되는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내정된 최시중(71)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핵심 측근’이란 표현은 약하고 부족하다. 수십 명에 달하는 핵심 측근들 중 1인이 아니라 5~6인의 ‘최종 이너서클’의 좌장이란 말이 적확하다. 역사적 인물에 빗대어 말하면 세조 곁의 한명회 같은 인물이다. 정치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그에 대한 이 대통령의 믿음은 두텁고 견고하다.
대선 승리 직후부터 그는 최고 요직의 하마평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인수위원장, 국무총리, 대통령실장, 국정원장 등의 자리에 이름이 거론되면서 그의 비중과 파워는 많은 사람에게 각인됐다. 그가 정부의 방송, 통신, 미디어정책을 총괄하는 방통위의 책임자로 발탁된 배경에는 이 대통령의 통치술, 그 심모원려의 전략이 숨어 있다.
대선 캠프 원로회의 6인회 좌장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최측근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는 방송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형성된 방송가의 풍향계가 다소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아니냐는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방송통신 관련 이슈와 현안이 산적해 있는 것도 그가 임명된 배경이다. 신문·방송 겸영 규제 완화, 신문법 폐지, 공영방송 민영화 등 새 정부의 미디어 정책들은 벌써부터 언론계 안팎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의 언론관을 전략적으로 과감히 실행해줄 인사가 필요했고, 그런 측면에서 최 내정자가 ‘적임’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최 내정자는 이 대통령의 포항(고향) 인맥 중 실질적인 좌장이다. 그는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맡았으며 이명박 후보 캠프 원로회의인 6인회의 멤버로 활동했다. 이 6인회 멤버의 좌장이 바로 그였으니 그는 이명박 정권 탄생의 주역 중 주역이라 할 만하다.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포항 인맥의 구심점이다. 그렇다고 이 부의장이 새 정부에서 요직에 앉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공천 심사에서 그를 배제해야 한다는 당내 기류가 심상치 않다. 이 부의장은 전면에 나서기보다 정치권 전반에 걸쳐 인적 자원을 관리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 부의장의 공백을 대체할 사람으로는 최 내정자가 적합하다. 이 대통령의 대선 후보시절 모든 정보는 최 내정자의 망(網) 속으로 흘러들었다. 젊은 참모들은 당내 대책이나 선거전략을 짤 때 최종 보고자로 최 내정자를 꼽았고, 그의 수첩에는 풍부하고 새로운 정보가 빼곡이 들어찼다.
그는 방대한 정보를 토대로 정보 해석과 관리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8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당 안팎에선 이명박 당시 예비후보의 무난한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최 내정자는 자신이 관리했던 여론조사 결과가 ‘초박빙’으로 나타나자 경선 하루 전까지 이 대통령, 이재오 의원과 함께 지지 전화를 돌렸다. 2400여 표 차의 신승을 끌어낸 이후 캠프 내에서는 그의 분석력과 정보관리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정몽준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과 지지선언을 이끌어낸 것도, 호남 출신인 김덕룡 의원을 6인회의 멤버로 영입한 것도 그의 영향력하에서 이뤄졌다. 강현욱 전 전북지사의 이 대통령 지지선언도 최 내정자의 작품이다.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서울시장 출마를 결정적으로 권유한 사람도 그다.
최 내정자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언어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도 일조했다. 당시 이 후보가 쇳소리 섞인 투박한 말투로 고민하자 “투박한 말투로 투박하게 살아온 인생을 전달하라”는 조언으로 이 후보의 걱정을 씻어줬다는 것이다. 선거 전략에서 이미지 메이킹까지 그의 힘이 닿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었다.
기자 출신으로 한국갤럽 회장 역임
이 대통령과의 관계는 서울대 정치학과 시절 대학 동기(57학번)인 이상득 부의장과 친분을 쌓으면서 시작됐다. 대학 시절 친구의 동생이었으니 최 내정자는 이 대통령을 ‘명박아’라고 불렀던 거의 유일한 참모라고 볼 수 있다. 최 내정자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낸 뒤 1994년부터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회장을 맡으면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험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는 정서적 코드가 일치한다. 포항의 항구마을 구룡포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때까지 낮에는 어머니를 도와 선창가에서 고구마나 호박을 구워 팔고 밤에는 인근 공장에서 통조림을 담는 나무박스를 만드는 소년 가장 역할을 했다. 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불 때마다 눈에 들어오던 연기와 또래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당시 그의 얼굴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최 회장은 그 시절 날마다 동해안이 내려다보이는 구룡포공원에 올라 한 시간씩 줄넘기를 했다. “맨발로 줄넘기 줄을 넘을 때마다 자신의 발 밑에서 다져지는 땅을 느꼈다”라는 것이 그의 회고다. 그 땅처럼 자신의 의지와 건강을 다져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최 내정자의 전도가 양양한 것만은 아니다. 이제 막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가 갖가지 진통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업무능력과 조정능력이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방송위 노조는 직제 불만으로 최근 파업을 벌인 적도 있으며 업무영역을 놓고 부처 간 힘 겨루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을 놓고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을 개연성도 높아 어려운 자리가 될 것이란 관측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가 직면한 정책 현안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그의 자질과 성향을 둘러싼 언론단체의 반발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이 방통위원장이 되는 것은 결사 반대”한다는 것이 각종 언론단체의 격앙된 목소리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통신 장악음모’가 최 내정자의 임명을 통해 가시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수현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방송과 통신 어느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아닌 최 내정자를 대통령 행정 감독권의 영향이 미치는 방통위의 초대 위원장으로 낙점한 것은, 결국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명박 정부의 언론관에 근거한 언론정책을 펼쳐달라는 의미 아니겠느냐”라고 비판했다.
48개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단체들로 구성된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론연대)는 2월 28일 오전 10시 청와대 입구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적격 인사 최시중씨의 방통위원장 임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언론연대는 기자회견문에서 “방통위원장 선임을 당장 철회하고 방송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정책이 수행되지 않을 경우 노조는 파업을 결의하고, 시민사회단체는 낙선운동을 비롯한 정권퇴진운동에 즉각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성제 언론노조 MBC본부장도 “30여 년 전인 1960~70년대 신문사 기자 경력 정도가 전부인 최 내정자는 변화하는 방통융합 환경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으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며 “대선 기간에도 이명박 후보 진영의 ‘6인회’ 멤버로 정권의 방송통신 장악을 실현하기 위한 정략적 인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방송위는 방송위대로, 정통부 등 공무원들은 공무원대로 직제와 직급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야당 쪽에서는 벌써부터 “수십 억대 재산가로 알려진 최시중씨를 철저하게 검증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멘토를 초장부터 시련에 직면하게 만든 이 대통령의 숨은 의중은 과연 무엇일까. 방송과 통신의 우호적 도움 없이는 정권 운용이 불가능하다는 이 대통령의 전략적 밑그림이 작용하고 있다는 설이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해석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