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으면 문제가 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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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편집장

홍진수 편집장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기생충>(2019)은 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는 반지하 방에 걸린 빨래(양말)를 비추며 시작합니다. 그 너머로는 ‘지상의 바닥’과 같은 높이에 창문이 있습니다. 밖에서 소독차가 내뿜는 연기는 창문으로 바로 들어오고 가끔은 취객이 창가에 오줌을 쌉니다. 그나마 날씨가 맑을 때는 괜찮습니다. 영화 중반을 넘어 호우가 내릴 때 반지하 집은 속절없이 물에 잠깁니다. 변기는 역류하고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던 주인공 가족은 참담한 현실을 다시 마주합니다.

반지하란 주거환경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잘 압니다. 2022년 8월 수도권에 폭우가 내렸을 때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주택에서도 시민이 사망했습니다. 반지하 등 지하 주거지는 침수 등 자연재해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환기도 어렵습니다. 햇볕이 잘 들지 않고 결로 발생이 쉬워 곰팡이와 세균이 번성합니다.

2022년 여름에 벌어진 참사 직후 정부는 부랴부랴 반지하 대책을 내놨습니다. 서울시는 반지하 가구를 차례대로 없애기 위해 향후 20년간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23만호 이상 확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지하 거주 가구가 지상층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매달 20만원씩 월세를 보조하는 특정 바우처도 신설했습니다.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반지하에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만들어졌습니다.

주거지와 달리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지하화’를 추진하는 시설이 있습니다. 주거지만큼 사람이 오래 머무는 곳인데도 많은 사람이 지하화에 찬성합니다. 바로 쓰레기 처리장입니다. 지하 쓰레기 처리장의 환경도 반지하 주택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아 잘 마르지 않고, 습기가 많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 표지 이야기는 ‘혐오를 피해 지하로 간 쓰레기 처리장’의 실태를 다룹니다. 우선 지난 5월 가스 폭발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친 전북 전주의 쓰레기 처리장 ‘전주리싸이클링타운’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의 쓰레기 처리장 건설 계획 현황도 살펴봤습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수도권은 2026년부터, 그 외 지역은 2030년부터 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됩니다. 땅에 묻던 쓰레기를 앞으로는 소각장 등 시설에서 처리해야 합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자체들은 처리장이 들어설 지역의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지하화’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하 처리장 건설을 논의하면서 ‘노동환경’ 문제는 잘 고려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 문제가 사라질까요. 언젠가는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게 참혹한 사고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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