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사망 사건이 벌어지면 현장에선 기싸움이 다반사다. 진실을 알고 싶은 유가족과 절차와 규정을 앞세워 무엇이든 ‘제한된다’는 군 관계자. 이들이 벌이는 차마 못 볼 줄다리기다.
군인권센터에는 군에서 나온 수사관들이 망자의 유서며 일기장을 보여줄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유가족의 문의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물론 보여줄 수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원본은 수사자료니 제공할 수 없다지만, 사본은 제공 가능하다. 망자의 기록을 보는 건 유가족의 당연한 권리다. 한번은 유가족에게 사본을 요구해보시라 했더니 사본과 함께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유서를 달라고만 하셨지 사본을 달라고 한 적은 없으시잖아요.’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 사이에선 “부모가 아는 만큼 죽음의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아픈 말이 돈다. 군은 늘 알아서 잘 수사해서 결과를 알려줄 테니 잠자코 기다리란 식이다. 기관에 민원을 넣고 수사관에게 자주 전화하며 귀찮게 하지 않으면 감감무소식일 때도 많다. 그렇게 기다려 받아든 수사 결과를 수긍하는 유가족을 본 일도 드물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것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인데, 진실을 알기 위해 공부까지 해야 한다니. 이보다 더 잔인하고 혹독한 일이 또 있을까.
비단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그리고 다시 폭우 속의 오송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참사 현장의 곳곳에선 늘 똑같은 불만이 터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설명이 하나도 없다’, ‘수습하기 바쁘다’, ‘정보를 요구해도 알려주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죽음의 모든 시작점에 유가족의 불신부터 쌓인다. 공권력이 유가족을 진상 규명의 주체이자 당사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진실을 갈망하는 이들을 객체로 취급하는 제도와 관행이 뿌리 깊다. 하나같이 수사·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유가족이 너무 많은 걸 알게 되면 불필요한 논란만 커지고 감당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논란은 앎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무언가 알아야만 하는 이가 풀지 못하는 물음표에서 발아할 뿐이다. 애초에 수사와 조사가 사고를 설명하고, 죽음을 이해시키기 위한 과정인데 왜 감추고 통제하는가. 사회적 참사의 수사·조사의 전 단계에 유가족이 입회하고, 참여하고, 물어보고, 의견도 제시할 수 있는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배려다.
우리 사회에서 ‘참사’의 다른 말이 ‘투쟁’이 된 지 오래다. 그 모든 유가족이 누군가의 부추김으로 선동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걸 알 수가 없으니 싸울 뿐이다. 영문도 모르고 세상을 떠난 가족을 그냥 가슴에 묻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공무원은 ‘탓’을 주고받고, 유가족은 답답한 마음에 통곡 한번 제대로 못 하는 장례식장 풍경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