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를 위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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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부터 강화된 거리 두기가 적용되면서 11월 1일 시작된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일시 중단됐습니다. 47일간의 실험결과는 참담해보입니다. 일일확진자 수는 7000명을 넘어섰고, 위중증환자 수도 900명을 넘어섰습니다. 한때는 하루 사망자 수가 90명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편집실에서]다수를 위한 희생

언제까지나 강화된 거리 두기를 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간 방역에 협조적이었던 국민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도 정부는 고려했을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가 빗장을 풀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한국사회는 위기에 빠지면 힘을 합쳐 극복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수를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외환위기 당시 직장을 잃었던 많은 가장이 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번 팬데믹에서는 소상공인들이 ‘희생하는 소수’가 됐습니다. 팬데믹 초기 소상공인들은 적극적으로 방역에 협조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오롯이 그들의 책임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조건을 붙였고, 결국 손에 쥐는 것은 쥐꼬리에 불과했습니다. 막대한 지원금을 퍼부으며 소상공인 살리기에 나섰던 미국, 일본 등 주요국가들과 달랐습니다.

위드 코로나로 소상공인은 달랬지만 또 다른 ‘희생하는 소수’가 생겼습니다. 코로나19 사망자들입니다. 위중증환자가 급증하면서 하루평균 20~30명에 불과하던 사망자 수가 100명에 육박했습니다. 방역을 강화했더라면 죽지 않아도 될 시민들일지도 모릅니다. 사망자 1명은 숫자로는 1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담겨 있는 눈물은 계량하기 힘듭니다. 제대로 된 장례조차 지낼 수 없는 코로나19 사망은 유가족들에게 형언하기 힘든 고통과 아픔을 남깁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내가 당선되면’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50조원에서 100조원을 쓰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집권당은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곳간을 열지 못했고, 거대야당은 ‘나라 거덜낸다’며 재정지출 확대를 맹비난해왔습니다. 지금도 하지 못하는 정책을 무슨 묘수가 있어 당선되면 하겠다는 것일까요. 사실 소상공인 지원은 여야가 뜻만 모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

대형 산불이 났는데, 물 쓰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 산언저리에 있는 집을 홀라당 태울 수 있습니다. 소방당국이 소방수를 아낀 만큼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될지 모릅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그 피해자는 소상공인이거나 코로나19 사망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수를 위한 ‘당연한 희생’이란 없습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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