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만난 링컨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제가 처음 완독을 한 정치인의 책은 <노무현이 만난 링컨>입니다. 대선을 앞둔 2002년, 정치부 초년 기자 때였습니다. 기자실에서 굴러다니던 이 책을 봤을 때 처음에는 위대한 대통령, 링컨의 이름 빌려 적당히 자신과 버무린, 그렇고 그런 정치인 책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장 넘겨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서문 10여쪽을 제외하고는 전부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편집실에서]노무현이 만난 링컨

링컨의 일생을 따라가 보면서 정치인 노무현이 가고 싶은 길을 투사시켜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당대 수많은 공격을 당하고 계속된 실패를 겪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뚜렷한 가치기준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 링컨에 노 후보는 매료가 됐다고 서문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를 추구한 사람이었다고 링컨을 평가했습니다. 돌아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라크파병, 항만노조 개혁, 방폐장 부지선정 등의 난제와 맞닥뜨렸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에는 링컨이 많은 영향을 미쳤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정치인이 쓴 책에는 그가 누구인지 엿볼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살아온 길, 가족관계, 정치철학, 미래비전 등이 긴 글 속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제는 있습니다. 제대로 쓴 책이어야 합니다. 출마를 위해 자신을 과도하게 미화했거나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논객들이 책을 팔기 위해 쓴 평전이라면 안 읽어보느니만 못할 수 있습니다. 올해 정치인들이 쓴 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내 계보는 옅어졌고,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절대강자가 없는 선거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알려야 합니다. 게다가 검찰개혁 과정에서 조국백서와 조국흑서가 이슈가 되면서 정치서적시장은 예열이 된 상태였습니다.

주간경향 1438호는 최근 뜨거운 정치인들의 책에 주목했습니다. 유튜브,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영상물에 밀려났던 책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체가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책은 언론매체와 달리 정치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유권자에게 맘껏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 때문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습니다. 과거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에서 언급했던 돼지흥분제 얘기가 뒤늦게 논란이 돼 낭패를 겪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성공과 좌절> 등 많은 책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매 여름휴가를 앞두고는 추천도서를 공개하면서 독서바람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저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멋진 대통령이었습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편집실에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