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에 관해 알게 되었을 때 흥미로웠던 것은 ‘모략’이라는 독특한 전도방식이었다. 모략은 그들의 세계에서 승인된 일종의 ‘착한 거짓말’이다. 신천지 신도들은 모략이라는 교리 덕분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상대를 속이며 포교를 하고 조직을 보호할 수 있었다.
![[오늘을 생각한다]추미애의 모략](https://img.khan.co.kr/newsmaker/1372/1372_82.jpg)
지난해 말 신천지의 모략에 속아 가입했던 3명의 피해자가 그동안 허비한 세월과 돈을 보상해달라며 ‘청춘 반환 소송’에 나섰다. 법원은 올해 1월 신천지의 ‘모략포교’에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위법성이 있다고 판결했다. 피해자들은 잃어버렸던 청춘을 일부나마 보상받았다. 종교 사기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근거를 만들어낸 판결이었고, 종교적 신념이 보편의 도덕률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상식을 확인한 귀중한 판결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아들의 휴가 의혹과 관련해 자신의 보좌관이 부대에 전화한 사실이 없다며 국회에서 27차례 거짓말을 했다. 그는 단순히 국민을 속인 것에 그치지 않고, 비판자들에게 거세게 날을 세웠다. MB 이후 이렇게 얼굴이 두꺼운 정치인은 처음 본다. 거짓말은 금세 탄로 났다. 검찰은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아들 소속 부대의 지원장교 이름과 전화번호가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런 사실이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던 장관은 이제 와서 기억이 안 난다며 말을 바꿨지만, 끝내 본인의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장관의 거짓말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지만, 더 비극적인 것은 이 거짓말에 모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두둔하거나 애써 눈을 감는다. 정파적 감각에 시민의 감각을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추 장관의 거짓말에 모욕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 거짓말이 자신을 향해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관의 거짓말은 착한 거짓말이다. 신천지 식으로 말하자면 ‘모략’이다. 장관의 거짓말은 검찰개혁을 가로막는 사악한 세력을 향해 있으므로 나는 거짓말의 피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은 피해를 본 일이 없으므로 모욕을 느낄 일도 없다. 모욕은 오로지 시민의 감각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보좌관이 왜 장관의 사적 지시를 받아야 하는지, 정치가가 어떻게 시민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따위의 문제는 종교적 이분법 속에서 증발했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말을 하기 위해 법원의 판결을 끌어올 필요는 없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사람이 말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도덕률이다. 신천지가 보편의 도덕률을 뛰어넘는 교리를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은 지지자들의 종교적 신념 때문이었다. 추미애의 거짓말에 눈감은 사람들의 ‘신념’은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거짓말에 모욕을 느끼지 못하는 다수가 확인됐을 때 정치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신천지의 모략은 법원으로부터 단죄받았지만, 장관의 거짓말은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법의 처벌을 피해나갔다. 종교의 영역에서조차 허락되지 않는 거짓이 정치인에게 허락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