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그린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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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벌건 민둥산이 많았습니다. 일제의 수탈로 목재가 남벌된데다 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땔감 마련을 위해 나무를 많이 베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산은 푸름을 잃었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서서히 파괴되어 갔습니다.

[편집실에서]힘내라 그린벨트

그래서인지 70년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봄철만 되면 ‘나무 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던 기억이 납니다. 식목일인 4월 5일 즈음이면 교내 식수행사를 했고, 음악시간에는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동요 ‘메아리’)”라는 노래를 힘껏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 홍수와 산사태 예방, 공기 정화 등 나무와 숲이 가져다주는 혜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얘기를 지겹도록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산에서 함부로 나무를 베면 처벌하는 등 강력한 단속이 이뤄졌습니다.

산림 파괴를 막기 위한 정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그린벨트’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개발제한구역’을 뜻하는 그린벨트는 도시 주변의 녹지공간을 보존해 개발을 제한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자는 취지로 1971년 도입했습니다. 그린벨트 안에서는 건축물의 신축이나 증축, 용도 변경, 토지의 형질 변경 등이 제한됩니다. ‘사유재산 침해’ 논란이 적지 않았지만 헐벗은 산이 울창한 삼림으로 바뀌는 데 그린벨트가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하긴 힘듭니다.

최근 정치권이 그린벨트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습니다. 지난 7월 초 문재인 대통령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긴급 보고를 받은 뒤 주택 공급 물량을 확대하라고 지시한 게 발단이 됐습니다. 문 대통령은 김 장관에게 “정부가 상당한 주택 물량을 공급했지만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으니 ‘발굴’을 해서라도 공급 물량을 늘리라”고 지시했습니다. ‘발굴’이란 표현이 등장하자 급부상한 것이 바로 ‘그린벨트 해제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신규 분양을 중심으로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아파트를 짓는 데 대한 반대가 거셌습니다.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안 된다”(정세균 총리), “그린벨트 훼손을 통한 공급확대 방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이재명 경기지사)는 의견이 힘을 얻었습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20일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해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호 표지 이야기로는 최근 불거진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이슈들을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해제론이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부터 백지화될 때까지 여권 내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으며,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취재했습니다. 이와 함께 그동안 그린벨트가 어떻게 운용되고 해제됐는지, 과연 그린벨트 해제가 부동산 공급을 늘리기 위한 최선책인지 등을 점검했습니다.

대거 풀릴 뻔했던 그린벨트는 ‘기사회생’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가까스로 봉합되면서 일단락된 것이지, 논란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린벨트 해제 대신 검토되는 다른 대안들은 또 다른 불씨를 안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벽장 속에 숨겨둔 곶감처럼 하나하나 빼먹듯 요긴하게 쓰여온 그린벨트, 이젠 더 이상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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