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화면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백인 경찰이 우악스러운 무릎으로 한 흑인 남성의 목을 짓누르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밑에 깔린 남성은 미동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겁에 질린 그의 눈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발, 제발… 숨을 쉴 수 없어요.”
몰려든 행인들이 ‘목을 누르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경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흑인 남성이 의식을 잃자 그때야 구급차가 도착했습니다.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이 남성은 10분 가까이 옴짝달싹도 못 한 채 목이 눌려 엎드려 있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는 숨을 거뒀습니다. 얼마나 괴롭고 무서웠을까요.
지난 5월 25일 미국에서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의 가혹행위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사건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습니다. 사인은 질식사. 그는 식료품 가게에서 위조지폐로 담배를 산 혐의로 붙잡혔다고 합니다. 플로이드가 숨진 이후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확산되고, 세계 곳곳에서도 인종 및 소수자 차별, 인권 탄압에 항의하는 연대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단체모임 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시위 참여자는 물론 스포츠 선수들까지 나서 ‘무릎꿇기’ 제스처를 통해 인종차별에 항의했습니다.
이런 유(類)의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살해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시민 사이에서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외침이 터져나오지만 그때뿐입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미국 흑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단면인 셈이죠.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사건 후 연설을 통해 이런 현실을 ‘미국 백인들의 인종주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질타하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게 할 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이런 상황이 몇 년 안에 멈춰질 수 있을까요. 아마도 어려울 겁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바로 ‘인종주의’가 미국의 법과 제도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대응·가혹행위는 물론이고, 사법제도의 불평등,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적 격차 등 구조적인 문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묘하게 투영됐습니다. 꼼짝할 수 없는 플로이드의 상황이 마치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불평등과 차별, 편견에 희생되는 그들의 처지가 목이 짓눌린 흑인 남성과 그리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로이드가 겪은 것과 같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나가는 이들이 주변엔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은 사회를 향해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옵니다.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처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 약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