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신천지라고?’
몇 년 전 ‘새누리가 신천지’라던가 하는 소리를 들어본 것 같은데, 코로나19에 뜬금없이 신천지라니. 신천지 관련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이거 영화야, 실화야’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분노로 이어지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하나님의 새 나라의 제사장’이 될 터인데 학업·취업·가족·연애 그리고 코로나19가 무슨 대수냐? 수십만 명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여전히 화가 안 난다.
![[장하나의 눈]신천지라 쓰고 신자유주의라 읽는다](https://img.khan.co.kr/newsmaker/1357/1357_82.jpg)
신천지 교도의 60%가 20대 청년이라는 기사를 보았을 때 뇌가 흔들리는 충격을 받았다. ‘대체 20대가 왜?’ 수천 명의 신천지 청년 교도들이 일제히 교리 시험을 보는 동영상을 눈으로 보고서야 ‘이게 진짜구나’ 싶었다. 눈 앞에 펼쳐진 그 광경이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신천지, 청년’으로 검색을 해보니 신천지를 탈퇴한 청년들의 인터뷰나 이와 관련한 기사들이 꽤 있었다. 신천지가 왜 청년을 노리는지, 청년은 왜 신천지에 빠지는지 그리고 청년들을 포섭하는 신천지의 구체적인 수법들이 나열돼 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다지만, 한국사회와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진단만 난무할 뿐 처방이 없다. 신천지를 제거하면 우리 사회는 치유될 것인가? 신천지는 사이비 종교인 동시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다. 신천지가 암적 존재일지라도 악성 종양처럼 도려낼 수는 없다. 그들은 건강해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이고, 그들 역시 우리다.
그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새 나라를 원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먹고살 만한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특별한 사람을 만나 특별한 관계가 되어도 보고, 멋진 차를 사거나, 작더라도 나만의 공간을 구해 멋진 인테리어를 해보고 싶고, 맛있는 것 먹고, 좋은 옷 입고 싶고…. 말도 안 되지만 그걸 하나님의 새 나라가 대체했다. 사이비 교주의 말대로 선택받은 14만4000명에 들어 영생을 얻는 게 더 현실적인 목표로 느껴질 만큼 청년들에게 꿈은 감히 꾸어선 안 되는 금기의 영역이 됐다.
수능을 보고 나서,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고민은 늘어가는데 고민을 나눌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고민을 들어주고 심리테스트를 해주고,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때 신천지 교도였다는 청년의 인터뷰를 보고 너무도 허망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꿈을 꾸어야 한다. 주 40시간 땀 흘리면 먹고살 만한 사회가 되는 꿈, 상시 지속적인 업무에는 비정규 노동자를 쓸 수 없는 사회가 되는 꿈 말이다. 청년들에게 꿈을 꾸라고 하지 말고 나부터 꿈을 꿔야 한다. 택시 운전으로 4인 가족을 부양하고 저축해서 집을 살 수 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고한다. 나 때는 더 힘들었다며 청년들 속이지 말고, 근거 없이 무조건 노력하라고 충고하지 말고, 내 자식만 살아남길 바라지 마라(그런 건 불가능하니까). 특히 전태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청년에게서 꿈꿀 자유마저 앗아간 신자유주의와 양심껏 좀 싸우자.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