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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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우리 안의 이방인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아마도 1960~70년대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대부분 기억하고 있는 구호일 겁니다.

그때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반공’이라는 말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반공 웅변대회’ ‘반공 포스터 그리기’는 연례행사였고, ‘반공 표어’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숙제도 심심치 않게 있었죠. 나중엔 반공을 넘어 아예 ‘공산당을 없애자’는 ‘멸공’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안방극장에서는 <113 수사본부> <전우>와 같은 반공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간첩은 독침과 특수장비를 가지고 파괴와 살인을 일삼는 범죄자였고, 인민군은 무조건 쓰러뜨려야 하는 적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담뱃값을 묻는다거나 군부대의 위치를 물어보는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파출소나 군부대에 신고하라는 교육도 받았습니다. 그때는 ‘북한’이 아니라 ‘북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뇌’를 당하다보니 북쪽에 사는 사람들을 ‘뿔 달린 괴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귀순용사’의 기자회견도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였습니다. 거기에는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규탄하고 체제 우위를 선전하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었습니다. 내부 단합을 꾀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던 셈이죠. 1983년 미그기를 몰고 남쪽으로 넘어온 북한군 이웅평 대위에게는 거액의 포상금과 함께 대대적인 환영행사까지 열어줬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냉전체제 해체 이후 북한을 이탈하는 주민의 숫자가 늘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이 이뤄지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차츰 변했습니다. 북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말을 쓰는 동포이고, 언젠가는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이들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통일부 자료를 보면 분단 이후 1998년까지 947명이던 탈북주민의 숫자는 2000년대 들어 해마다 1000명 이상씩 늘어 지금은 3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지만 아주 적은 숫자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체류 등록된 미국인(2만4602명, 2018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보다 많습니다.

편집실에서는 이번 호에서 탈북민 문제를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탈북한 모자가 자신들이 살던 서울 봉천동 임대아파트에서 아사한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며 목숨을 건 탈출을 했지만 한국 사회는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곤란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다수가 공동체에 녹아들지 못한 채 좌절을 겪고 있습니다. 차별과 멸시를 이유로 한국을 떠나 미국이나 유럽으로 난민신청을 통해 떠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나 사연은 다양하고 생각 또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 팍팍하고 주변을 돌볼 여유를 찾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탈북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이방인’으로 겉돌지 않고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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