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을 많이 알지는 못한다. 그래도 래퍼 매드클라운의 노래만큼은 즐겨 듣는 편이다. 다른 국내 래퍼들에 비해 한결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그의 랩은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와 듣기에 좋다. 베테랑급 래퍼임에도 이따금 무대에서 가사를 까먹고 동공이 흔들린 채 허둥대지만 그런 실수조차 인간적 매력으로 느껴진다. 일반적인 힙합 문화와는 결이 다른 반듯한 모습으로 오롯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는 참 괜찮은 뮤지션이다. 이쯤에서 고백한다. 나, 매드클라운의 광팬 맞다.
![[민경배의 눈]알면서도 속아준다. 래퍼 마미손](https://img.khan.co.kr/newsmaker/1274/1274_82.jpg)
매드클라운이 최근 새로 시작한 <쇼미더머니>에 프로듀서로 나왔다. 당분간 TV에서 매주 그를 만날 수 있으니 팬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작년에 붉은 복면을 쓰고 지원자로 출연했던 마미손은 올해 <쇼미더머니>에 안 나왔다. 가사를 까먹고 동공이 흔들린 채 허둥대다가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 초반 탈락하는 치욕을 당했지만 시청자들 사이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마미손이었기에 그의 결장은 많이 아쉽다.
방송 이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노래 <소년점프>는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란 유행어까지 만들며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던가? 절치부심 칼을 갈고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다시 <쇼미더머니>에 도전해 주길 기대했건만 안타깝게도 래퍼 마미손은 당분간 TV에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매드클라운이 프로듀서로 나온 이번 시즌 <쇼미더머니>에 마미손이 못 나온 이유를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안다. 이쯤에서 고백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속아주는 것 맞다.
한국 힙합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붉은 복면 속 마미손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마미손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굳이 폭로하려 드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 속아주는 즐거운 전국민 공모극이다. 주식회사 마미손이 재치를 발휘해 매드클라운 집으로 고무장갑 10박스를 선물로 배달했다는 뉴스를 접해도 사람들은 시치미 떼고 속으로만 키득거리며 웃을 뿐이다. 이쯤되면 그동안 한국 힙합에 조금도 관심이 없던 독자들조차 마미손의 정체를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마미손의 정체처럼 모른 척 속아주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주 드문 경우다. 오히려 모두가 다 아는데 저 혼자 아닌 척하는 바람에 온 국민을 분노케 만드는 상황이 훨씬 더 많다. 누가 봐도 뇌물인데 청탁은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채용비리가 분명한데 자기 자식은 실력으로 공정하게 들어갔다고 강변하거나, 틀림없이 성접대 영상에 나왔는데 자기 얼굴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정치인들이 그렇다.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 속에서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이 부쩍 늘었다. 명백한 친일 발언, 친일 행보인데 저 혼자 국익을 위한 것이라 우기는 위장 애국자들 말이다. 이런 공모극에 즐겁게 참여할 국민은 별로 없다. 이쯤에서 고백해라. 당신들의 속마음을 마미손의 노래 <소년점프>가 낳은 유행어를 패러디해서라도 말이다. “OK, 계획대로 안 되고 있어.”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