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자수성가형 + 도련님형](https://img.khan.co.kr/newsmaker/1297/20181008_06.jpg)
도지사를 역임했던 한 전직 국회의원이 사석에서 “국회의원만큼 대한민국에서 좋은 직업이 없더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여의도에서 한때 나돌았다. 도지사는 도정을 책임져야 하고 또 도 의회에서 꼼꼼히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책임질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에 딱히 비판받을 일도 거의 없다.
부장 판·검사를 했던 분들도, 심지어 총리·장관까지 했던 분들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노력하니 의원이 대한민국 최고의 직업인 것만은 분명한 듯 보인다. 매년 가을 국정감사만큼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의 가치가 높이 드러나는 시기가 없을 것이다. 각 부처 산하기관장들은 물론이거니와 각 부처 장관들도 국회의원 개개인의 날카로운 질문에 쩔쩔매게 된다.
국회의원이 되면 동문회나 모임에서 ‘성공한 인물’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로서 의원들을 만나다보니 이들 ‘성공한 인물’의 유형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민주당은 이 유형이 꽤 복잡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이 유형이 의외로 간단하다. 딱 두 갈래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하나는 어릴 때부터 귀한 집에서 태어난 ‘도련님’ 출신이다. 이들의 특징은 대부분 유학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부류는 어릴 적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랐지만 고시에 합격하거나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그룹이다. 국회의원까지 됐으니, 개천에서 용이 된 부류이기도 하다. 흔히 자수성가형이라고 부른다.
특이하게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친이와 친박이 다툴 때 친이에는 자수성가형이 많았다. 이들의 중심인물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수성가형이었고, 이상득·이재오 같은 정치인도 이 부류에 속했다. 반면 친박의 중심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도련님형이었고, 친박쪽 중심인물인 김무성·유승민 같은 정치인은 이 부류에 속했다.
자수성가형이든 도련님형이든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이들 두 부류의 생각은 비슷하다. 경제분야에서는 대기업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생각이다. 도련님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수성가형이 저임금 노동자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은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몰라주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특유의 언사로 대기업이 먼저 잘돼야 저임금 노동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담론을 펼친다. 이 담론은 199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들어맞았지만 웬일인지 그 이후 기업은 배부르고 노동자들은 배고픈 상황이 계속됐다.
한때 자유한국당의 전신은 집권여당으로 대다수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자주 ‘웰빙 정당’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거친 들판의 야당 생활로 웰빙도 더 이상 힘들게 됐다. 급기야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전원책 조직강화특위 위원에게 칼을 넘겨주는 상황에 이르렀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해 외부의 칼을 빌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도련님형이든 자수성가형이든 ‘웰빙’이라는 누명 또는 오명을 벗기를 기대해본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