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자료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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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국정감사, 자료와의 전쟁

가을이 완연해졌다. 가을을 느끼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날씨에 민감한 사람들은 옷장에서 외투를 꺼내면서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자연을 즐겨 찾는 사람들은 단풍에서 가을을 느낀다. 어떤 이는 저녁 무렵 해가 기울면 짧아진 해로 가을을 느끼기도 한다.

여의도 국회는 다른 방식으로 가을을 느끼게 된다. 가을 초입에 들어서면 국회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부쩍 늘게 된다. 국정감사의 대상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다. 봄여름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다가 이 기간이 되면 이들의 출입이 잦아진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국회 앞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숫자만으로도 눈치챌 수 있다.

사실 국회 보좌진들은 여름휴가를 마치자마자 국정감사 준비에 들어간다. 해당 상임위마다 수십 개에 이르는 산하기관이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국정감사 기간에 매일 닥치는 산하기관 감사를 할 수 없다. 의원실에서는 주요 부처는 물론이거니와 산하기관의 주요 업무에 대한 분석에 들어가고, 올해 국감의 주요 포인트를 선정한다. 그리고 난 뒤 주요 포인트에 맞게 해당 기관에 자료를 요구한다.

해당 기관에서는 예민한 자료 같은 경우 의원실에 제출하기를 꺼린다. 나중에 국감에서 비판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과 의원실 간의 자료 신경전이 벌어진다. 말단공무원과 의원실 비서 간의 싸움이 나중에는 해당 부처 국장과 보좌관의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장관과 의원 간의 싸움으로 커지기도 한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보좌진들은 해당 기관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자료를 요구해 집요하게 해당 사안을 파헤친다. 반면 무능한 보좌진들의 경우 아무 의미도 없는 방만한 자료를 요구해 해당 기관에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또한 물어봐야 뻔한, 그리고 매년 의례적으로 똑같은 자료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료가 하나둘 의원실에 도착하게 되면 바야흐로 국정감사 시즌이 시작된다. 각 의원실마다 자료를 배부하는 해당 기관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국감은 의원들의 질의와 해당 기관장의 답변에서 끝나지만, 실제로는 제출된 자료에서 승부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자료 전쟁’에서 승리한 의원실이 국감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최근 가짜뉴스 때문에 우리 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어떠하더라’ 식의 가짜뉴스가 유포되고 있다. 이런 미확인 소문들을 국정감사장에서 질문으로 던지는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국정감사장을 파행으로 이끄는 주범들이다. 미리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정확한 자료를 요구하고, 그 제출받은 자료로 해당 기관을 비판하는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의 우수의원이다. 자료만큼 중요한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국정감사 기간 내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는 국감 자료들을 보게 된다. 궁금했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었던, 의혹이었지만 자료로 드러난 뉴스들이 눈에 팍 띈다. 가짜뉴스가 아닌, 진짜뉴스는 바로 이런 것이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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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